
일본은 ‘수입차 무덤’으로 불릴 만큼 외국 브랜드가 뿌리내리기 힘든 시장이다. 현대자동차가 전기차를 앞세워 13년 만에 재진출했지만 판매 성적은 여전히 기대에 못 미친다. 반대로 일본차는 한국 시장에서 ‘노(NO)재팬’의 후폭풍을 털어내며 빠르게 점유율을 회복하고 있다.
일본 불매 정서 옅어지며, 일본 車 회복2019년 ‘노재팬’ 운동은 일본차의 국내 입지를 크게 흔들었다. 2000년대 초반 혼다는 연간 1만대 이상을 판매하며 존재감을 과시했으나 불매운동과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2023년 판매량이 1385대에 그쳤다. 닛산은 결국 2020년 한국 철수를 선언했고, 일본차 전반의 위상도 흔들렸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새 반전이 일어났다. 렉서스와 토요타가 하이브리드 라인업을 앞세워 소비자 신뢰를 회복한 것이다. 렉서스는 2022년 7592대에서 2023년 9857대로 회복한 뒤 지난해에는 1만대를 돌파했다. 토요타 역시 2020년 6154대에서 2023년 8495대, 지난해 9700대 수준으로 성장했다. 일본 차가 다시 수입차 시장 점유율 약 10%를 회복하며 꾸준히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한 일본 완성차 관계자는 “노재팬으로 판매량이 급감했을 때 본사 차원에서 철수 논의가 있었다”며 “어떻게든 시장을 유지하고자 했고, 그 결과 지금은 성과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차의 회복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다. 불매 정서가 시간이 지나며 옅어진 가운데, 고유가와 전기차 충전 인프라 부족으로 하이브리드 수요가 급증했다. 하이브리드 기술에 강점을 지닌 렉서스·토요타가 강점을 발휘했다. 또 브랜드 이미지와 A/S 네트워크 강화도 소비자 신뢰 회복에 기여하며, 일본차가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다시 점유율을 넓히는 배경이 됐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소비자들이 정치적 감정과 상품 구매를 분리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정치적인 반감보다는 최근 온라인을 통해 상품 정보와 사용 후기를 접하면서 실질적 요인을 더 중시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내 수입차 시장은 최근 급격히 확대됐다. 1995년 신규 등록 대수가 6921대에 불과했지만, 2024년에는 26만3288대로 늘어나며 약 38배 성장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같은 기간 수입차 점유율도 0.6%에서 18.3%로 확대돼, 이제 전체 자동차 시장의 5분의 1 가까이 차지한다. 일본 차의 경우 2019년 15%였던 점유율이 '노재팬' 여파로 2020년 7.5%, 2021년 7.4%까지 추락했지만, 2024년에는 2만6190대를 판매하며 9.9%까지 끌어올렸다.
한국 車 중 유일하게 진출, 현대차조차 막막한 일본 시장
반대로 한국차의 일본 도전은 쉽지 않다. 현대차는 2009년 판매 부진으로 일본 시장에서 철수했으나, 13년 뒤인 2022년 전기차를 앞세워 재진출했다.
아이오닉 5와 넥쏘 수소전기차를 내세우며 친환경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려 했고, 딜러망 대신 온라인 직영 판매, 실시간 상담 서비스 같은 새로운 방식도 도입했다. 그러나 판매량은 2022년 526대, 2023년 492대에 그쳤다.
일본 수입차 시장의 경쟁은 치열하다. 일본 수입차 시장에서 메르세데스-벤츠와 BMW가 매월 수천 대를 판매하는 가운데, 현대차는 같은 신흥 전동화 브랜드인 중국 BYD에도 뒤처졌다. 중국 전기차 제조사 BYD는 올해 1~8월 2175대를 판매해 현대차의 세 배 이상 실적을 기록했다. 일본의 좁은 도로와 주차 환경, 경차·소형차 선호, 보수적 소비문화가 겹치며 한국 자동차의 안착은 여전히 난관이다.

이 같은 이유로 기아, KG모빌리티, 르노코리아 등 다른 국내 완성차 업체들도 일본 승용차 시장에는 진출하지 않았다. 내연기관차 시절부터 경쟁력이 부족하다는 판단과 시장 진입 비용 대비 효과가 크지 않다는 공통된 평가에서다.
다만 변화의 조짐도 보인다. 현대차가 올해 일본에 출시한 경형 전기차 인스터(국내명 캐스퍼 일렉트릭)의 경우 1~8월 판매량이 648대로 이미 지난해 연간 실적을 넘어섰다. 현대차는 쇼룸 확충, 화상 상담 등 오프라인·온라인을 아우르는 유통망을 강화하며 소비자 접점 확대에 나서고 있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과 교수는 “(인스터가) 일정 부분 점유율 확보는 가능하겠지만, 시장 판도를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이미 1500만원 미만 가격대에 사륜구동과 다양한 옵션을 갖춘 경쟁 모델을 내놓은 만큼, 대규모 생산 체제를 갖춘 현지 업체와의 정면 승부는 쉽지 않다”고 전망했다.
이어 “(현대차는) 반한 감정, 문화적 차이, 자국 브랜드의 성능과 마케팅력 때문에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며 “장기적으로는 일본 브랜드와 경쟁할 수 있는 프리미엄급 차종을 개발하고, 일본 소비자들이 중시하는 승차감 같은 사용자 경험을 충족시키는 차종 개발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