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 업체의 기술자료를 빼돌려 경쟁업체에 건넨 후 제품 단가를 낮춘 혐의로 전동 물걸레청소기를 제조·판매하는 ㈜아너스에 대해 시정명령과 과징금 5억원이 부과됐다. 또 아너스 법인과 임원 3명이 검찰에 고발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청소기 부품의 납품단가를 낮출 목적으로 하도급 업체의 기술자료를 다른 업체에 전달해 유사 부품을 개발하도록 하고, 이 과정에서 제공받은 견적가격 및 유사 부품 샘플을 이용 기존 납품단가를 대폭 인하하도록 한 아너스에 ‘기술자료 유용행위’ 관련 제제를 내렸다고 24일 밝혔다.
아너스는 ‘아너스 전동 물걸레청소기’를 판매하는 기업으로 해당 제품은 주로 홈쇼핑(현대홈쇼핑, 홈앤쇼핑, 롯데홈쇼핑 등), 인터넷(옥션, G마켓, 11번가 등)을 통해 지난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110만대(1000억원 상당)가 판매됐다.
이번 조사는 지난해 9월 공정위가 발표한 ‘기술유용 근절 대책’에 따르면 것으로, 지난해 11월 구성된 ‘기술유용사건 TF’에 피해자로부터 신고가 접수된 후 현장조사와 외부전문가 기술심사를 거쳐 아너스의 기술유용 행위를 적발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아너스는 청소기 주요부품 ‘전원제어장치’를 제조해 납품하는 하도급 업체가 납품단가 인하요구를 수용하지 않자 2016년 11월부터 2017년 6월까지 하도급 업체의 ‘전자회로의 회로도’ 등 기술자료 7건을 하도급 업체의 경쟁업체 8곳에 제공했다. 이를 활용해 유사 부품을 제조·납품할 것을 요구했다.
아너스가 빼돌린 기술자료는 ‘전원제어장치’를 제조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거의 모든 정보를 담고 있었다. 전원제어장치는 청소기 스위치 신호 및 과전류, 과열 등 제품에 발생하는 문제상황을 스스로 분석해 청소기에 전원을 공급하거나 차단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부품으로 청소기의 ‘뇌’에 해당한다.
공정위는 이를 제공받은 경쟁업체는 기술 개발에 소요되는 시간·비용을 대폭 절약할 수 있고, 기존업체보다 낮은 단가에 납품할 가능성 있다고 판단했다. 해당 경쟁업체 6곳은 아너스에게 견적서를 제출하고, 이 중 1곳은 유사 부품의 샘플까지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경쟁업체가 제출한 견적서에는 희망 납품단가와 함께 부품을 구성하는 회로소자별 매입원가, 회로소자 삽입방식별 제조원가 등 세부 원가내역이 포함돼 있었고 유사 부품은 기존 부품과 기술상 거의 동일한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해당 부품은 양산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아너스는 유사부품의 샘플을 하도급 업체에 전달하고, 경쟁업체의 견적가격 및 세부 원가내역을 이용해 2016년 12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3차례에 걸쳐 하도급 업체에게 납품단가를 총 20% 인하하도록 했다. 그 결과 납품단가는 경쟁업체가 제출한 견적가격 중 최저가격과 일치하게 됐다.
이로 인해 연간 영업이익률 2%대로 유지하던 하도급 업체는 7개월 동안 납품단가가 약 20% 인하됨에 따라 지난해 8월 영업 손실을 우려해 납품을 중단했다. 하도급 업체의 매출은 대부분 해당 부품 납품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하도급 업체의 경영상황은 현저히 악화됐다.
공정위는 “아너스가 2015년 5월부터 2017년 6월 기간 동안 총 19회에 걸쳐 하도급 업체가 전원제어장치를 제조하기 위해 작성한 총 18건의 기술자료를 요구해 제출받았다. 이 중 7건이 유용됐다”며 이는 정당한 사유가 없는 기술자료 요구행위라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아너스는 공정위의 사건 조사와 심의 과정에서 하도급 업체에 기술자료를 제출하도록 요구한 목적을 ▲가격 적정성 검토 ▲제품 검수 등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어느 것도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원사업자가 하도급 업체의 납품단가 인하를 위한 근거자료로 활용키 위해 기술자료를 요구하는 것은 그 자체로 정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 아너스는 제품 검수 과정에서 실제로 기술자료를 활용했음을 입증하지 못했고고, 공정위 조사 결과 아너스는 제품의 작동 여부만을 판단했을 뿐 기술적 검수는 모두 하도급 업체에서 실행했다.
공정위는 아너스에 하도급 업체를 대상으로 정당한 사유없이 기술자료를 요구하거나 하도급 업체의 기술자료를 유용하는 행위를 앞으로 다시는 하여서는 안 된다고 시정명령 조치했으며, 아너스의 행위가 매우 중대한 법 위반행위라고 판단 5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와 함께 아너스 회사와 대표이사를 포함, 하도급 업체의 기술자료 유용 행위에 관여한 임원 3명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피해 업체는 기술유용 결과 입은 손해에 대해 3배 배상소송을 진행할 예정이며, 공정위는 사실관계 입증에 필요한 자료를 법원에 제공하는 등 피해 업체의 민사소송 과정에 협조할 예정이다.
공정위는 “기술유용은 대·중소기업 관계뿐만 아니라, 중소기업간 관계에까지도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 중소기업이 본인보다 거래상 지위가 열악한 중소기업을 상대로 벌이는 기술유용에 대해서도 엄중 제재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며 “자신의 높은 영업이익률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이익만을 얻고 있는 하도급 업체의 납품단가를 인하하기 위해 기술자료를 유용한 행위를 엄중 제재함으로써 유사 사례 재발 방지에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최근 기술유용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기 위해 정액 과징금 상한을 기존 5억원에서 10억원으로 상향조정하는 내용의 ‘하도급법 시행령’이 지난 18일부터 시행됐다. 또 공정위는 기술유용을 행한 사업자의 배상 책임 범위를 현행 손해액의 3배에서 10배까지 확대하기 위한 법 개정도 올해 정기국회에서 추진할 계획이다.
송병기 기자 songb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