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내기 싫어도 실손 보험료 올려야 하는 이유 [기자수첩]

더 내기 싫어도 실손 보험료 올려야 하는 이유 [기자수첩]

기사승인 2025-06-06 11:42:58
실손의료보험 적자를 해결할 방법은 보험료 인상과 비급여 가격 관리다. 프리픽

“실손 보험료를 인상해야 합니다”

대선 기간 취재 과정에서 들은 김종명 내가만드는복지국가(이하 내만복) 공동대표의 말이다. 지난 2008년부터 실손의료보험 개혁을 이야기해 온 그에게 누수를 해결할 방법을 묻자 “가격을 시장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현재 실손보험은 가입자가 낸 돈보다 많이 받는 구조다. 금융감독원은 실손보험이 지난해 한 해 동안 1조6226억원 적자를 냈다고 밝혔다.  보험료 대비 예상 손해액을 산정한 위험손해율은 지난해 상반기 118.5%였다. 미래 지급액이 받은 금액을 18% 이상 웃돈 것이다. 금액으로 따지면 가입자가 무조건 유리한 셈이다.

특히 초기(1~2세대) 실손 가입자는 비급여 진료를 받더라도 자기부담금을 내지 않거나 20% 이하 금액만 부담한다. 자비가 아닌 보험금으로 대부분 진료비를 납부하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의료공급자가 얼마를 부르든 환자가 더 싼 병원을 찾아 발품을 팔 이유가 없다.

소비자가 유리하면 좋은 것 아닐까. 문제는 소비자 수요가 가격의 영향을 받지 않아 공급가가 치솟는다는 데 있다. 지난 1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발표에 따르면 도수치료 진료비는 병원에 따라 60배 이상 차이가 났다. 같은 치료에 대한 값이 8000원에서 49만원까지 분포한 것이다.

그 결과 불필요한 의료에 실손보험 재정 대부분이 소모되고 있다. 지난해 지급 보험금 중 비급여 주사제와 도수치료 등 근골격계 질환 관련 지급금은 약 36%에 달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비급여 주사제와 도수치료는 영양주사나 마사지 수준인 경우도 많다”며 “중증 환자를 위한 치료가 아니므로 비보험으로 해도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를 해결할 방법은 2가지다. 하나는 보험료를 올려 소비자가 스스로 과잉진료를 포기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보험료 대비 지금까지 발생한 보험금 비율을 뜻하는 경과손해율은 지난해(99.3%) 전년 대비 4% 이상 떨어졌다.  초기 실손 보험료 인상 효과다. 다만 반대 여론이 거셀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비급여 가격을 정부가 관리하는 방법이다. 가격에 상한이 생기면 의료공급자가 불필요한 비급여 치료를 제공할 유인이 줄어든다.

임기를 시작한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 공약집을 통해 초기 실손 세대가 일부 보장을 포기하면 보험료를 할인해 주는 선택형 특약 도입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과잉진료가 일부 줄어드는 효과가 있겠지만 소비자 재량에 맡겨야 해 한계가 있다. 실손보험 누수를 해결하려면 추가 대안이 필요하다는 게 취재 과정에서 만난 전문가들의 평가였다.

지난 1월 보건복지부가 낸 실손보험 개혁안이 보완책이 될 수 있다. 비급여 가운데 남용 우려가 큰 항목을 관리급여로 지정해 진료 기준과 가격을 정부가 정하는 내용이다. 관리급여로 지정하지 않은 항목에서 풍선효과가 날 수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관리급여를 확대하면 된다. 꼭 필요한 중증 비급여와 비중증 비급여를 나눠 자기부담률을 달리하는 안도 포함됐다.

새 정부는 공약에 더해 많은 논의를 거쳐 만들어진 기존 개혁안을 참고해 누수를 해결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반발에 부딪히더라도 여론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실손보험의 취지는 더 많은 이들이 필수 의료 서비스를 부담 없이 받도록 하는 공익성이다. 정상화된 실손보험이 그 역할을 다하는 의료 현장을 보고 싶다.

박동주 기자
park@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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