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편한 조리법과 얼큰함으로 60년 넘게 한국인의 식사를 책임진 라면이 ‘매운맛 돌풍’을 일으키며 전 세계의 입맛을 잡고 있다. 특히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이 매운 맛을 앞세워 글로벌 메가히트 상품으로 자리잡으며, 농심·오뚜기 등 기존 라면 강자들의 해외 진출에도 탄력이 붙었다.
6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농식품 수출액은 51억6000만달러(약 7조36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8.4% 증가했다. 수출 증가를 이끈 대표 품목이 바로 ‘라면’이다. 라면 수출액은 같은 기간 7억3170만달러(약 1조원)를 넘어서며 전년 대비 24% 증가했다.
수출국별로는 중국이 최대 시장이었다. 상반기 중국에 수출한 라면 규모는 1억6130만달러(약 22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41.7% 늘었다. 미국은 1억4100만달러(40.8%↑)로 뒤를 이었다. 이어 △아세안 1억700만달러(12.2↑) △러시아 등 독립국가연합(CIS) 3900만달러(54.5↑) △중동 걸프협력회의(GCC) 243만달러(39.5↑) 등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한국 라면의 인기가 치솟는 데는 불닭볶음면의 글로벌 진출이 결정적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미국의 유명 래퍼인 ‘카디 비(Cardi B)’가 불닭볶음면을 맛보는 영상을 틱톡에 올리는 등 인플루언서들의 활동으로 불닭볶음면의 해외 인지도는 급격히 상승했다. 실제로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삼양식품의 지난해 연결기준 해외 매출은 전년 대비 65% 증가한 1조3359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77%가 해외에서 나왔다. 전체 매출액은 1조728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5% 성장했고, 영업이익은 3446억원으로 133% 급증했다.
삼양식품은 해외 생산기지도 본격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지난 3일 중국 저장성 자싱시에 2,014억 원을 투자해 첫 해외 공장 건설에 착공했다. 오는 2027년부터는 중국 내에서 6개 생산라인을 통해 자체 생산하며 물량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지난달 준공을 마친 밀양 제2공장도 가동되면서 해외 물량 확보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식품업계에서는 삼양식품의 성장이 국내 라면업계의 글로벌 진출에도 긍정적인 파급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한다. 해외 시장에 안착한 대표 상품의 인기가 다른 제품들의 인지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라면업계 관계자는 “해외 시장은 생각보다 넓어 농식품 수출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어도 여전히 개척할 곳이 많다”며 “국내에서는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하지만, 해외에서는 불닭볶음면 같은 브랜드가 자리잡으면 K-푸드 전반과 기업 인지도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농심과 오뚜기도 해외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농심은 국물이 없는 볶음면 종류인 ‘신라면 툼바’ 등으로 글로벌 캠페인을 준비하고 있다. 오뚜기도 진라면의 수출량을 늘리기 위해 글로벌 아티스트인 BTS의 멤버 진을 모델로 기용해 해외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실제로 K-팝과 드라마, ‘먹방’ 등 한류 콘텐츠의 영향으로 한국 식품 인지도가 해외에서도 크게 높아졌다. 미국과 중국은 물론 말레이시아, 칠레, 에콰도르 등에서도 한류 확산과 함께 라면 수출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는 K-콘텐츠에 대한 친밀감이 높아지며 라면 소비도 꾸준히 늘고 있다.
정담원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쿠알라룸푸르지사 담당자는 “말레이시아의 현지 Z세대들은 K-POP 음악과 퍼포먼스뿐 아니라 아이돌 출연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 등 다양한 콘텐츠를 소비하며, 한국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통적으로는 솔로 가수 중심의 말레이시아 음악 시장과 다른 한국 그룹 아이돌 문화의 신선함과 예능 프로그램의 독창성이 현지 시장에서 호응을 얻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한국 라면의 인기는 품질과 맛을 넘어 K-콘텐츠와 긴밀한 연관성이 있다. 드라마와 예능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라면 먹방’ 장면은 말레이시아 소비자들 사이에서 한국식 식문화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했다”며 “특히 ‘불닭볶음면 챌린지’와 같은 온라인 트렌드는 SNS와 유튜브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며 라면을 하나의 유행 아이템으로 안착됐다”고 설명했다.
업계는 K-라면이 일시적인 유행에 그치지 않도록 현지화 작업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식품은 건강과 직결되기 때문에 패키지에 익숙치 않은 언어나 그림이 있으면 거부감이 생긴다”며 “한 국가의 식품이 타국에 녹아들려면 먼저 문화적으로 익숙해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불닭볶음면의 해외 전파나 두바이초콜릿의 수입 과정 등에서 보듯이, SNS를 통한 인지도 확대나 현지인 입맛에 맞는 상품 개발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