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과학] 북극 땅속에 숨어 있는 기후변화 단서 찾다

[쿠키과학] 북극 땅속에 숨어 있는 기후변화 단서 찾다

KBSI-극지연, 지구온난화에 따라 달라지는 땅속 유기물질 비밀 밝혀

기사승인 2025-07-22 10:56:22
북극 툰드라 토양에서 온난화에 따른 깊이별 수용성 유기물(WEOM)의 반응 차이를 보여주는 모식도. KBSI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이 지구온난화로 가장 빠르게 뜨거워지고 있는 북극 땅속에서 기후변화의 미래 경로를 가늠할 수 있는 ‘분자 단서’를 발견했다.

KBSI 디지털오믹스연구부 장경순 박사와 극지연구소 정지영 박사 공동연구팀은 캐나다 툰드라지역에서 7년에 걸쳐 현장기반 온난화 시뮬레이션 실험을 수행, 토양 깊이에 따른 유기물 조성과 미생물 반응 변화를 분자 수준에서 규명했다.

공동연구팀은 개방형 온도상승챔버(OTC)를 북극 툰드라 현장에 설치해 여름철 기온을 자연스럽게 상승시키는 방식으로 7년간 온실효과를 모사했다. OTC는 온실효과를 내면서도 자연적 기상조건을 크게 변화시키지 않고 기온을 높이는 방법으로, 전력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극지 연구에 적합하다. 

이 같은 현장기반 장기 온난화실험은 향후 실제 기후변화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으로 예측하고, 생태계 탄소순환이나 토양 생물군집 변화 등을 정량화하는 데 매우 중요한 기준점으로 작용한다.

북극 툰드라 지역에 설치된 Open-Top Chamber (OTC) 기반 수동 온난화 실험 장치. 육각형 아크릴 또는 폴리카보네이트 소재로 제작된 OTC는 태양 복사를 포획하여 챔버 내부의 기온을 주변보다 평균 1–2°C 높이는 방식으로, 장기간 온난화 효과를 모의하는 데 사용됨. 본 장 치는 국제 툰드라 실험(ITEX) 프로토콜에 따라 설치되었으며, 챔버 내부에는 온도 및 습도 센서가 함께 장착되어 실시간 환경 모니터링이 가능하다. 이 실험은 기후변화가 북극 생태계의 식생, 미생물 활동 및 토양 유기물 조성에 미치는 장기적 영향을 분석한다. KBSI

일반적으로 토양 유기물 분석은 총 유기탄소와 질소 농도 측정, 적외선 분광법, 원소분석기 등으로 이뤄졌다.

이런 방법은 유기물의 전체적인 양적 변화나 기능성 그룹 수준까지만 파악할 수 있어, 생태계 변화의 정밀한 메커니즘을 밝히는 데 한계가 있다. 

반면에 이번 연구는 KBSI 오창바이오·환경연구소에 구축한 ‘15T 초고분해능 퓨리에변환 이온사이클로트론 공명 질량분석기(FT-ICR MS)’를 활용해  ‘토양 내 수용성 유기물질(WEOM)’의 조성과 반응성을 분자단위로 정밀하게 분석, 기존 방법으로 포착이 어려운 땅속 생태계 변화 메커니즘을 정량적으로 규명했다. 

 15T FT-ICR MS는 세계 최고 수준의 질량분해능과 정확도를 자랑하는 초고성능 분석장비로, 복잡한 혼합물 속에서 수만 종의 유기분자를 구분해 분자식을 정확히 확인할 수 있어 기존 장비로 확인할 수 없었던 미량 화합물이나 미세한 구조 차이까지 식별할 수 있다.

이처럼 분자 조성과 전환 경로를 함께 정밀 분석한 사례는 북극토양 생태계 연구에서 국내 최초이며, 국제적으로도 드문 사례다.

특히 WEOM 분자 간 질량 차 분석을 기반으로 ‘산화’, ‘탈아민화’, ‘메틸화’와 같은 생화학적 전환 경로를 유추하는 기법을 도입함으로써, 온난화에 따라 토양 미생물이 어떤 유기물을 어떻게 이용하고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분석 결과 유기물 함량이 풍부한 0~5㎝ 지표층에서는 온난화에 따른 유기물 조성 변화가 거의 감지되지 않았지만, 상대적으로 유기물이 부족한 5~10㎝ 하부 토양층에서는 온난화 조건에서 질소농도 증가, 미생물 변환 증가, 페놀계 화합물 및 펩타이드류 등 특정 유기물질 비율 변화가 나타나 분자 수준에서 의미 있는 변화를 확인했다.

아울러 온난화 조건에서 무기층 WEOM 분자 수가 급격히 증가했고, 특히 고불포화 페놀계 화합물(HUP) 및 펩타이드 유사 화합물 비율이 높아져 미생물의 유기물 분해 및 질소 순환이 촉진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북극 땅속에서 발견된 온난화의 분자 단서, 미생물 활성화와 질소 순환 촉진에 대한 근거. KBSI

연구팀은 이런 변화가 장기간 온실효과로 식물 지상부 및 뿌리 생장 촉진으로 인해 근권이 확장하면서 일부 미생물 군집이 하부 토양층에서 활성화되고 미생물과 식물의 상호작용이 활발해진 결과로 추정했다. 

실제 식물 유래 물질에 의한 국지적 유기물 증가와 이에 따른 미생물 반응이 관찰됐고, 이런 추론을 검증하기 위한 후속 연구도 진행 중이다.

극지연 정 박사는 “지금까지는 북극 표면 생태계에 초점이 맞춘 것에서 벗어나 이번 연구는 유기물이 부족한 지하토양 환경이 기후변화에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음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KBSI 장경순 박사는 “이번 연구결과는 북극 탄소 순환모델이나 생태계 변화 시뮬레이션의 정밀도를 높이는 데 중요한 과학적 단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번 연구는 KBSI 김민성 박사가 제1저자로, 극지연 정지영 박사와 KBSI 장경순 박사가 공동 교신저자로 참여했고,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Environmental Research’ 지난 8일 온라인에 게재됐다.
(논문명 : Molecular insights into the warming-induced alterations of water-extractable organic matter in soil: Depth-dependent responses in Arctic terrestrial ecosystem)
이재형 기자
jh@kukinews.com
이재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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