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이 탄소배출권 거래제도의 강화를 언급하고, 김성환 신임 환경부 장관 역시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를 거듭 강조하면서 제조업의 배출권거래제 유상할당 비중 확대가 기정사실화돼 가고 있다.
불확실한 통상환경, 중국산 공급 과잉 등에 따라 장기간 불황을 겪고 있는 철강·석유화학업계 등 제조업의 재정 부담이 가중될 전망인 가운데, 유상할당 비중뿐만 아니라 제도 자체의 보완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9일 에너지업계에 따르면, 김성환 신임 장관은 앞서 인사청문회 등을 통해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를 언급하면서 그 방법 중 하나로 배출권거래제 유상할당 비중 확대를 강조해 왔다. 그는 “석탄발전소나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의 경우 다른 나라는 사실상 100% 유상할당을 한다”며 “석탄발전을 하면서 대기 중에 나오는 이산화탄소의 총량을 탄소세로 매겨서 발전 비용이 비싸다”고 말했다. 배출권 유상할당을 늘려 화력발전 등의 비용을 높이면 상대적으로 재생에너지를 확대할 수 있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 역시 지난달 국무회의에서 환경부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나중에 재설계할지 확대 강화할지는 더 검토해야 하겠지만, 지금은 최소한 확대·강화해야 할 것 같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배출권거래제는 일정량 이상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사업장이 온실가스를 배출할 권리를 시장을 통해 거래할 수 있도록 한 제도로, 유상 또는 무상으로 할당한다. 할당량 이상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려면 배출권을 구매하고, 여유분은 시장에 판매하는 방식이다.
2015년부터 해당 제도를 도입한 우리나라는 제도 시행 초기(1·2차 기본계획)엔 업계 부담을 고려해 유상할당 비율을 3%로 제한했으며, 올해 종료되는 3차 기본계획(2021~2025년)에선 평균 10%를 적용했다. 내년부터 적용될 예정인 4차 기본계획(2026~2030년)에선 30% 이상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며, 새 정부와 김 장관의 정책 의지에 따라 최대 50%까지 상향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이미 배출권 유상할당 비중 확대 방향으로 기본계획을 확정한 정부당국은, 새 정부 기조를 반영해 세부 할당비율 등 구체적인 내용을 이르면 다음 달쯤 공개할 예정이다.

유상할당 확대 필요하지만, 업계 “지금은 어렵다”…신뢰도 제고 지적도
정부와 환경단체는 무상할당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 배출권 거래가격이 평균을 밑돌고, 이로 인해 제도의 본래 취지가 퇴색됐다는 점을 지적해왔다. 따라서 기업이 정부로부터 직접 구매해야 하는 유상할당 비중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2023년 기준 배출권 최종할당량 5억7910만 톤 중 무상할당 비중은 무려 99%에 달했다. 과도한 무상할당으로 인해 배출권이 시장에 저가로 풀렸고, 이에 따라 기업들은 탄소 감축 비용을 들이기보다는 일단 온실가스를 배출한 후 저렴한 배출권을 구매하는 방식에 집중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반면 업계에서는 유상할당 비중 상향이 필요하다는 데는 공감하면서도, 현재로서는 점진적인 조정이 바람직하다는 목소리를 낸다. 익명을 요청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현재 철강뿐만 아니라 제조업 전반의 업황이 매우 좋지 않아 적자를 이어가고 있는 데다, 산업용 전기요금도 지속 상승하고 있어 부담이 매우 크다”며 “특히 많은 제조기업들이 탄소저감을 위한 투자를 점차 늘려가고 있는 만큼, 기업의 탄소저감 노력에 대해서도 알아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에너지경제연구원에 의뢰해 지난 4월 발표한 ‘배출권거래제의 전기요금 인상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가 돈을 받고 판매하는 배출권의 유상할당 비율을 현행 10%에서 50%로 올릴 경우 전자·통신, 자동차, 화학, 철강 등 제조업 전체 전기요금이 연간 약 5조원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배출권거래제 자체의 신뢰도 제고를 위한 보완도 동반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환경단체 플랜 1.5와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환경부로부터 입수한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설명자료’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가 2016~2022년 민간 석탄발전사의 석탄소비량을 온실가스 집계에서 누락하면서 환경부가 발전부문 기업에 총 2520만톤의 탄소배출권을 무상 과다할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과소 측정된 배출량에 따라 발전부문의 연평균 온실가스 배출 허용량이 실제보다 적은 6억970만톤으로 설정돼 제3차 기본계획(2021∼2025년)에 반영됐고, 2520만톤 규모의 배출권 대부분이 발전공기업 5사에 배정된 것이다. 해당 제도를 운영하는 양 국책기관의 시스템과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업계 관계자는 “약 7년 동안이나 관련 데이터를 누락한 사실을 인지하고 못했고, 이것이 업계 전반에 과다 배분되면서 정말 복잡한 상황에 놓였다”며 “배출권거래제 유상할당 비중을 확대해 제도 실효성을 높이려면, 먼저 소비량·집계 등 데이터 측면에서 신뢰도를 쌓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올해 초 해당 사실을 확인하고 업계와 논의 중이지만, 발전5사 입장에선 일방적인 회수가 경영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입장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정부 방침이 아직 정해지지 않아 관계부처들과 내부 논의를 이어가고 있고, 방침이 정해지는 대로 업계와 대화를 지속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