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조 지하화 사업......도공 ‘설계·안전평가 셀프’ 국토부 ‘검토만’

4조 지하화 사업......도공 ‘설계·안전평가 셀프’ 국토부 ‘검토만’

사업자·평가자 동일한 도로공사, 독립성·객관성 논란
국토부 “초안 작성일 뿐, 실제 검토는 외부 전문기관”

기사승인 2025-08-04 06:00:04
경부고속도로. 쿠키뉴스DB

경부고속도로 양재~기흥 구간 지하화 사업을 두고 ‘셀프 안전평가’ 논란이 불거졌다. 약 4조원 규모의 국가사업인데도 설계와 안전평가 모두 사업주체인 한국도로공사가 맡고 있어서다. 사업자와 평가자가 동일한 구조가 법 취지에 어긋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국토교통부는 도로공사가 설계에 기반한 안전평가서 초안을 작성할 뿐, 국토안전관리원과 지방국토관리청이 실제 검토를 수행한다는 입장이다.

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토부는 해당 구간에 대한 민자적격성 조사를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의뢰한 결과, ‘민간이 추진할 만한 사업이 아니다’라는 판단을 최근 받았다. 이에 따라 해당 구간은 국가 예산을 투입하는 재정사업으로 최종 결정됐다. 개발사업자도 한국도로공사로 확정됐다. 

도로공사는 현재 기본계획을 수립 중이며, 2028년 상반기까지 설계를 마치고 하반기 착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도로공사는 지하안전평가서를 국토부에 제출해야 한다. 지하안전평가서는 개발사업자가 지하안전평가 전문기관에 의뢰해 작성한 뒤, 국토부에 제출하도록 돼 있다. 

문제는 지하안전평가 전문기관이 사업자와 동일한 도로공사라는 점이다. 이해충돌 소지가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국토부 관계자는 “설계 주체가 설계를 기반으로 (안전)평가서를 작성하는 것은 시스템상 당연하다”면서 “제출된 평가서는 서울지방국토관리청에서 접수받아 검토하며, 전문적인 사항은 국토안전관리원에 의뢰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도로공사는 초기 설계에 따라 평가서 초안을 작성할 뿐, 평가의 승인 권한은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사업자와 평가자가 동일한 현재 구조가 법의 취지에 어긋난다고 우려한다. 해당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A씨는 “지금은 도로 밑에 어떤 시설이 들어가는지를 도로공사가 직접 안전평가하는 방식”이라며 “도로공사가 설계와 평가를 동시에 수행하는 구조는 법의 취지에 배치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 ‘지하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지하안전법) 제24조 제1항은 ‘지하개발사업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지하안전영향평가 전문기관에 그 평가의 전부 또는 일부를 대행하게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같은 조 제2항 제4호는 ‘지하안전영향평가 전문기관과의 계약은 해당 사업의 수립·시행과 관련되는 계약과 분리해 체결할 것’이라고 명시한다. 평가기관이 사업자와 이해관계가 있는 경우 해당 업무를 회피해야 한다는 취지다. 

현재 법상 ‘지하안전영향평가 전문기관’으로는 도로공사와 국토안전관리원이 지정돼 있다. 다만 동일 기관이 사업과 평가를 동시에 수행하는 것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조항은 없다. 이른바 ‘셀프 평가’ 구조가 가능한 법적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셈이다. 실제로 도로공사는 중부 지역, 국토안전관리원은 남부 지역 사업의 지하안전평가를 담당하는 것이 관행으로 알려져 있다.

도로공사 관계자는 “현재 경부고속도로 양재~기흥 구간 지하화 사업은 (국가)재정사업으로 추진되며, 착공 직전에 지하안전평가를 실시하게 된다”며 “아직은 설계 단계이며, 평가를 누가 수행해야 할지를 논의하기에는 이른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향후 국토부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국토안전관리원 등 제3기관에 평가를 맡길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토부 또한 “평가 내용의 객관성은 국토안전관리원의 재검토 절차를 통해 담보할 수 있다”며 “논란의 여지가 있는 대규모 사업은 국토안전관리원에 직접 평가를 의뢰하는 방식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구조를 제도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A씨는 “지하공간은 사고 발생 시 복구 비용과 인명 피해가 막대한 만큼, ‘사후 검토’보다 ‘사전 독립성 확보’가 핵심”이라며 “지하 시설물 사고와 기상이변 등 위험이 겹치는 상황에서 제도의 근본적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세종=김태구 기자
김태구 기자
ktae9@kukinews.com
김태구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추천해요
    0
  • 슬퍼요
    슬퍼요
    0
  • 화나요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