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 통과…택배 노동자, ‘원청 직교섭’ 숙원 풀리나

노란봉투법 통과…택배 노동자, ‘원청 직교섭’ 숙원 풀리나

‘본사-대리점-택배기사’ 고용구조…구조적 문제 해결 기대감
노조 “‘권한이 있는 곳에 책임이 있다’는 상식을 법화한 것”
택배사 “가이드라인 등 정부 후속 조치 모니터링 중”

기사승인 2025-08-25 17:20:20 업데이트 2025-08-25 17:29:41
노란봉투법 통과로 택배업계 노사관계가 전환점을 맞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다빈 기자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며 택배업계 노사관계가 중대한 전환점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대리점과 기사 간 위탁계약에 기반해온 특수한 구조 속에서 원청의 사용자성이 법적으로 명문화되면서, 그간 불분명했던 원청의 책임과 교섭 창구가 제도적으로 정리될 가능성이 커졌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전날 여당 주도로 노란봉투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본회의 표결에는 재석 의원 186명 중 183명이 찬성하고 3명이 반대했다.

현재 CJ대한통운, 한진, 롯데글로벌로지스 등 주요 택배사 본사는 기사들을 직접 고용하지 않고 대리점과 계약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대리점은 다시 택배기사들과 개인사업자 형태로 위탁계약을 맺어 운영하며, 이에 택배 기사들은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돼 왔다.

이 같은 이중 계약 구조는 2000년대 이후 급성장한 택배시장에서 본사들이 전국 물류망과 거점을 빠르게 확충하고 비용과 인력을 효율화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 본사의 노동 처우, 산재 등에 대한 사용자 책임이 약화되면서, 교섭 대상은 대리점에 한정되고 노조와의 갈등이 반복되는 구조적 문제가 이어져 왔다.

올해 초 법원은 CJ대한통운이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낸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 판정 취소 소송에서 1심과 마찬가지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과거 전국택배노조가 CJ대한통운에 단체교섭을 요구했지만 본사가 “대리점과 직접 계약했을 뿐 사용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거부한 사건에 대해, 중노위가 CJ대한통운을 사용자로 인정하고 교섭 거부를 부당노동행위로 본 것을 재확인한 것이다.

이 판결은 원청 사용자성을 확장 적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며, 이번 노란봉투법 통과와 맞물려 원청의 실질적 사용자성을 법률에 명문화하는 과정적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전날 국회를 통과한 노동조합법 개정안은 기존 사용자 정의를 확대해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를 사용자로 본다고 규정했다. 이에 따라 택배기사들의 원청 교섭이 한층 원활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에 전국택배노조는 이날 성명을 통해 “노조법 개정안은 ‘권한이 있는 곳에 책임이 있다’는 상식 중의 상식을 법화한 것”이라며 “그간 택배사들은 진짜 사장으로서 택배노동자들의 노동을 통해 이익을 향유하면서도, ‘계약 당사자가 아니다’라는 핑계로 교섭을 거부, 택배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박탈해왔다”고 말했다. 또 “그간 진짜 사장 원청 택배사들은 이 과정에 간접적으로 참여해왔으나 이제 원청이 공식적으로 직접 교섭에 참여하고, 일부 의제를 추가하면 별다른 혼란 없이 교섭 틀이 완성될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한선범 전국택배노조 정책국장은 “배송 터미널도 원청 소유이고 주요 결정도 원청이 내려왔지만, 정작 책임 소재는 불분명했다”며 “그동안은 시설 문제나 각종 요구사항을 원청에 제기하면 ‘우리 소관이 아니다’라는 답변을 듣곤 했다”고 말했다. 

한 국장은 이어 “수수료 역시 대리점 몫은 협의할 수 있었지만, 원청에서 일방적으로 책정하는 부분은 논의할 여지가 없었다”며 “이번 법 통과로 이런 사안들을 직접 논의할 수 있는 창구가 열린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향후 시행령에서 실질적 지배력의 범위를 정할 때는 택배사마다 계약 구조나 운영 방식이 다른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해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번 개정안을 두고 경영계와 보수 진영에서는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여전하다. 원청이 교섭 주체로 인정되면 노조가 인력 배치나 인프라 투자 등 경영권 사안까지 교섭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교섭 범위가 근로시간·복지 등 근로조건에 한정돼 있었던 만큼, 전국 단위로 촘촘히 연결된 택배망 특성상 각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인 교섭 요구가 제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실질적 지배력의 구체적 기준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고용노동부는 노동위와 법원 판례를 토대로 지침과 매뉴얼을 준비하겠다고 밝혔으며 6개월 유예 기간 동안 노사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TF를 꾸릴 계획이다. 

택배업계 한 관계자는 “택배사의 노사관계는 그간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논의와 대화의 과정을 밟아왔고 이번 법 개정도 사실상 예견된 수순이었다”며 “현재로서는 정부가 마련할 가이드라인 등 후속 조치를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다빈 기자
dabin132@kukinews.com
이다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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