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한 줄에 숨은 변화 [곽인옥 교수의 평양 시장경제 리포트]

전기 한 줄에 숨은 변화 [곽인옥 교수의 평양 시장경제 리포트]

평성시 전력의 시장화와 북한 체제의 균열

기사승인 2025-08-29 13:00:04
북한은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고난의 행군 시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는 처참한 상황에 처했다. 죽음의 공포에 휩싸인 주민들은 국가 주도의 계획 경제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이어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북한에 자생적인 시장 경제가 싹트기 시작했다. 장마당과 상점, 고급 식당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돈을 굴리는 돈주(錢主)는 부를 축적하고, 새로운 형태의 뇌물 구조가 뿌리내렸다. 국제사회의 엄격한 경제제재를 받는 북한 경제를 움직이는 것은 사회주의 사상도 계획 경제도 아니고, 자생적인 시장경제다. 그러나 대다수 북한 주민은 여전히 살벌한 독재 체제의 굴레와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다. 필자는 북한의 심장으로 불리는 평양의 경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10년간 조사를 해왔다. 탈북자 100여명을 상대로 장기간 심층면접을 하고, 각종 자료 수집을 통해 평양의 시장경제 작동 시스템을 분석했다. 폐쇄적인 북한 내부를 자세히 연구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북한의 통계자료와 탈북자들의 증언 역시 어느 정도 신뢰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조사한 북한 사회와 경제의 현실을 공유함으로써 북한 주민들이 처한 현실과 고통을 함께 느끼고 새롭게 다가올 한반도의 미래를 고민해 보자는 취지에서 연재한다.

1. 평성시 주민의 전기의 시장화

북한 평성시를 포함한 여러 지역에서는 여전히 전력 공급이 극도로 제한적이고 불안정한 상태다. 주민들은 국가가 제공하는 기본적 전력조차 충분히 공급받지 못한다. 따라서 삶의 질과 경제 활동에 심각한 제약을 받는다. 이러한 극한의 전력 부족 현상 속에서, 주민들은 단순히 무단으로 전기를 사용하는 수준을 넘어 일정한 비용을 지급하며 ‘전기를 돈 주고 구매하는’ 자본주의식 거래 행태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 현상은 표면적으로는 ‘생활을 위한 생존 전략’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북한의 경직된 계획경제 체제에 균열이 생기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가가 모든 생산과 유통을 통제하던 과거 체제와 달리, 주민들은 전력이라는 필수적인 자원을 놓고 비공식적 시장경제 원리를 도입하며 새로운 형태의 경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이것은 단지 전기 사용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북한 사회와 경제 전반에 깊고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2. 평성시 각 동별 비공식적 유로 전기 거래

평안남도 중부에 위치하고, 동쪽은 은산군·강동군, 서쪽은 평원군·평양시 순안구역, 남쪽은 평양시 은정구역, 북쪽은 순천시와 접해 있다. 인구와 면적: 2008년 기준 인구는 약 284,000명이며, 면적은 약 381㎢이다. 평성시는 20개의 동(洞)과 14~15개의 리(里)로 구성되어 있다. 최근까지 공식적으로 20동 14리 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주요 동(洞)에는 역전동, 중덕동, 봉학동, 구월동, 두무동, 랭천동, 문화동, 보덕동, 옥전동 등 평성의 대표 지역이 포함되어 있다.

높은 도시화율(80% 이상)을 보이는 도시로, 과학원 등 과학·산업 기관이 집중되어 ‘북한의 실리콘밸리’라 불리기도 한다. 평성시는 도 인민위원회(도청)와 시 인민위원회가 자리하고 있으며, 각각 여러 부서와 조직으로 지역 행정을 담당한다.

평성시 출신의 무역 일군과 인터뷰를 통해 분석해 보면, 평성시 각 동별로 전기를 사용하는 현실은 매우 구체적이고 차별화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민들은 직접 전력 공급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관공서나 군사 기관의 전기를 비공식적으로 끌어다 사용하며, 여기에 일정 금액의 북한 돈(3만 5천 원, 2014년 기준)을 지급하는 거래 관행이 자리 잡았다.

● 역전동

평성시 역전동은 평성역 앞에 있어서 접근성이 매우 좋다. 따라서 상설시장과 숙박업이 많다. 여기에서 거주하는 주민의 약 30%가 군사학교, 평성역, 군사동원부 등의 전기를 불법으로 끌어다 사용하고 있으며, 이들은 사용한 기관 기업소에 매월 3만 5천 원가량을 지불한다.

다음은 평성시 역전동에 있는 주요시설과 전기의 사적 거래에 대해서 살펴보자.

 ▶교육기관
  - 중덕초등학교
  - 석탄공업대학교
  - 군사학교 : 400~500세대 전기 공급
  - 평성의학대학

 ▶의료기관
  - 평성의학대학병원
  - 동의병원(고려의학)

 ▶군사 및 치안
  - 군사학교 : 700~800세대 전기 공급
  - 군사 동원부
  - 경무부(헌병)
  - 평성철도보안서

 ▶무역/경제/상업 
  - 대동강 무역회사
  - 평성백화점
  - 평성역 시장(상설시장)

 ▶교통/인프라
  - 평성역 : 400~500세대 전기 공급
  - 평성주차장(버스정류장)

 ▶사회 및 편의
  - 편의봉사망
  - 주택건물관리소
  - 합의제 식당(5~6개)

 ▶ 조사·관측·관리
  - 기상관측설계사업소
  - 광물단(광물조사단)

● 중덕동

중덕동은 평성에서 가장 잘 사는 지역으로 평성시당위원회가 자리 잡고 있고, 시보안서, 시당 위원회, 편직 공장, 수출 피복 공장에서 중덕동 주민들에게 30% 전기를 공급하고 있다. 

 ▶교육기관
  - 평성경제대학
  - 평성공업대학
  - 시교시관(박물관)

 ▶행정 및 치안
  - 평성시 당위원회 : 500~600세대 전기 공급
  - 시보안서 : 500~600세대 전기 공급

 ▶무역/경제/상업
  - 편직공장 : 500~600세대 전기 공급
  - 수출피복공장 : 500~600세대 전기 공급

 ▶교통/인프라
  - 평성경기장 (시외버스터미널)

 ▶사회 및 편의
  - 외화상점 : 600세대 전기 공급
  - 평성면옥 
  - 합의제 식장(5개)

● 양지동, 은덕동, 덕성동

양지동은 주로 도매를 하는 상인들이 모여 살고 있으며 전기는 30% 사용하고 있다. 이 지역의 주민들은 시안 전부, 시인민위원회에서 전력망을 끌어다가 사용하고 전기세를 내고 있다. 은덕동은 가공품, 공(축구공, 배구공, 농구공)을 만드는 지역이다. 은덕동 주민의 30%가 기동순찰대, 보안서(통신소)에서 전기를 공급받고 있다. 덕성동은 가공품을 만드는 지역으로 큰 물주와 돈주들이 살고 있는 지역이다. 이 지역에서는 도보안서, 도인민위원회, 연합기업소(건설부문)에서 전기를 가져다가 30% 사용하고 있다.

● 옥전동, 오리동, 문화동

옥전동은 현재 평성시장 및 새벽 도매시장이 위치한 곳으로 유통 및 숙박업을 주로 하는 지역이다. 약 20%의 주민들이 옥전 보안서와 57군부대 전력망에서 전기를 공급받고 있다. 오리동은 국경사령부, 압록강사령부에서, 문화동은 도당, 도보안서, 도인민위원회에서 전기를 가져다가 20% 사용하고 있다.

● 하차동, 삼마동, 주례동

하차동은 주민들이 가공품(80%)을 만드는 일에 종사하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군수공장에서 전기를 끌어다가 사용하고 있다. 삼마동은 평성 장마당의 판매원 역할을 하는 주민들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 군부대에서 전기를 끌어다가 사용하고 있다. 주례동은 신발 가공업으로 유명한 곳으로 주민들의 80%가 이 일에 종사하고 있다. 이 지역에 사는 주민들 10%가 전기를 사용하고 있다. 

● 냉천동, 보덕동, 봉학동

냉천동과 보덕동은 껌, 술을 만드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 지역은 동 보안분주소에서 전기를 가져다가 5% 사용하고 있다. 봉학동은 엿, 술(봉학맥주)을 만들어 전국적으로 도매를 하는 지역이다. 봉학맥주 공장에서 전기를 가져다가 주민들의 20%가 사용하고 있다.

더불어 이러한 거래는 군부대와 관공서로서도 중요한 수익 사업이 되고 있다. 한 세대당 월 3만 5천 원씩 전기세를 거두는 이 비공식 전기 유료 거래는 단순한 비용 회수를 넘어 제한된 전력 자원의 통제와 함께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로 자리 잡았다. 이를 통해 군사 기관과 관공서들은 자체 재정 확보에 이바지하고, 주민들의 전력 수요를 관리하는 기능도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북한 내 전력 공급과 경제 활동의 새로운 동학이 형성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3. 평성시 전력거래 시장화의 파급효과

대부분의 동에서 주민 5~30%가 관공서 및 군부대 전기를 몰래 끌어다 사용하는 점은 전기 공급의 심각한 부족과 불균형을 드러낸다. 또한 주민들이 전기를 사용하는 대가로 일정 비용을 내는 ‘유료 거래’가 자리 잡았다는 점은 북한 사회에 자본주의적 경제 행위가 점차 스며들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다.

평성시 주민들이 국가 전기를 돈 주고 구매하는 현실은 북한 내부 체제 변화의 가장 전형적이면서도 심오한 신호다. 전기는 단순한 생활 필수품을 넘어 국가 경제 전체를 움직이는 핵심 인프라다. 그러나 전력 공급의 구조적 한계와 정부의 통제력 약화 속에서 주민들이 비공식적 시장을 형성하며 ‘자본주의식’ 거래 방식을 도입하는 현상은 그동안 절대 불변으로 여겨졌던 북한의 계획경제 모델이 흔들리고 있음을 방증한다.

이러한 현상이 단순한 생존 전략에 머무르지 않고 앞으로 북한 경제 전반에 파급 효과를 미치며 점차 확산할 것으로 본다. 전력 거래의 시장화는 주민들의 경제적 자율성과 실질적인 경제 활동 변화를 자극할 것이며, 이는 곧 북한 사회 변화의 중요한 촉매제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이 같은 변화가 북한 당국엔 통제력 약화와 맞물리면서 외부 개방이나 개혁 논의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평성시의 ‘전기 유료 거래’ 현상은 북한 경제 변화의 시작점이며, 앞으로의 추이와 영향을 자세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 내부 체제와 주민 삶 모두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대전환의 실마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곽인옥 교수
inokkwak@hanmail.net
곽인옥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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