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고난의 행군 시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는 처참한 상황에 처했다. 죽음의 공포에 휩싸인 주민들은 국가 주도의 계획 경제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이어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북한에 자생적인 시장 경제가 싹트기 시작했다. 장마당과 상점, 고급 식당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돈을 굴리는 돈주(錢主)는 부를 축적하고, 새로운 형태의 뇌물 구조가 뿌리내렸다. 국제사회의 엄격한 경제제재를 받는 북한 경제를 움직이는 것은 사회주의 사상도 계획 경제도 아니고, 자생적인 시장경제다. 그러나 대다수 북한 주민은 여전히 살벌한 독재 체제의 굴레와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다. 필자는 북한의 심장으로 불리는 평양의 경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10년간 조사를 해왔다. 탈북자 100여명을 상대로 장기간 심층면접을 하고, 각종 자료 수집을 통해 평양의 시장경제 작동 시스템을 분석했다. 폐쇄적인 북한 내부를 자세히 연구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북한의 통계자료와 탈북자들의 증언 역시 어느 정도 신뢰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조사한 북한 사회와 경제의 현실을 공유함으로써 북한 주민들이 처한 현실과 고통을 함께 느끼고 새롭게 다가올 한반도의 미래를 고민해 보자는 취지에서 연재한다. |

1. 비공식 과외 시장의 형성
북한은 헌법과 국가 교육 방침에서 ‘무상교육’과 ‘평등한 교육 기회’를 지속적으로 강조해 왔다. 그러나 이념적 표어 뒤에 가려진 현실은 다르다. 특히나 수도 평양에서는 비공식 과외 시장이 활발히 형성되어 있다. 따라서 권력층과 부유층 자녀들이 고액의 개인지도를 통해 명문대학에 진학하고 있다. 과외는 노동자 월급의 몇 배에 해당하는 과외비와 식량 등의 현물로 거래되며 과목도 외국어·수학·예체능·정보기술 등으로 세분되어 있다.
이와 같은 과외 시스템은 단순한 학습 보충 수단이 아니다. 북한 사회의 교육 불평등, 계층 재생산, 권력-경제 네트워크의 축소판으로 기능하고 있다. 즉, 평양의 과외는 교육이라는 영역을 통해 특권층이 자신들의 지위를 고정한다. 또한 ‘그들만의 사다리’를 구축하는 구조적 메커니즘이다. 이런 교육 현실은 내부의 개혁뿐 아니라 남북 협력과 대북 인도 지원 논의에서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핵심이다.
2. 평양 과외 열풍의 구체적 양상과 사회 구조적 기능
① 명문대 입시 경쟁과 과외 수요의 폭발
김일성종합대학과 김책공업종합대학뿐 아니라 평양외국어대학과 평양음악대학 그리고 평양상업대학은 북한 상층부에서 핵심 명문대로 여겨진다. 특히 외국어·무역·예술 분야는 졸업 후 외화벌이 기회나 당 간부 배치와 이어지기에 경쟁이 치열하다. 그러므로 과외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한 탈북자는 “과외비로 한 달에 30~50달러, 과목에 따라 80달러까지도 냈다”라며 당시 평양 노동자 월급의 수배에 해당한다고 증언했다. 이는 과외비가 단순한 사교육 수준을 넘어섰음을 보여준다.
② 밀착형 가정 과외: 생활지도까지 아우르는 구조
평양 김책공업종합대학(김책공대)은 북한에서 전자전기공학과를 포함한 공학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대학교로 알려져 있다. 이 대학 재학생이 지방에서 올라와 평양의 당 간부 자녀를 하숙하며 밀착형 과외를 통해 수학을 가르치고, 그 당 간부 자녀가 김일성종합대학 수학과에 입학하게 된 사례는 북한 엘리트 교육 체계와 밀착형 과외 구조를 잘 보여준다.
김책공대 전자전기공학과 학생은 단순 교사 역할을 넘어 생활 지도와 진로 관리까지 책임지는 밀착형 과외생 역할을 한다. 또한, 당 간부 가정과 신뢰를 쌓아 자녀가 김일성종합대학 같은 명문 국립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김책공대는 선진 과학기술 교육과 혁명적 진로지도를 강조하는 기관이다. 이런 학생들이 밀착형 과외를 한다는 점은 북한 교육에서 사회적 신분과 정치적 신뢰가 중요한 요소임을 보여준다.
결국 이 사례는 평양 내 명문 공학 대학 재학생이 지방 출신으로서 북한 최고 엘리트 대학인 김일성종합대학 입학을 돕는 밀착형 과외의 구체적 형태이다. 이는 북한의 교육 및 사회 통제 체제와 긴밀히 맞물려 있다.
③ 쌀 과외: 현물 지급으로 학생 농촌 동원 회피
쌀은 북한 내부에서 현금처럼 통용되는 귀중한 자산이다. 특히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담임교사에게 매달 약 80kg의 쌀을 뇌물로 제공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쌀과 같은 현물 뇌물은 세금 신고나 통제 없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이는 과외와 유착된 비공식 거래 문화를 형성한다.
봄 모내기와 가을걷이 등 농촌 동원 시기에도 권력층 자녀는 뇌물로 동원을 회피한다. 그리고 여유 시간을 이용해 집중 과외를 받는다. 반면 일반 학생들은 필수 동원에 참여하느라 학습 공백이 생기며, 입시 경쟁에서 불리한 조건에 놓이게 된다. 이처럼 ‘시간의 격차’는 결과적으로 성적·진로·미래의 차이로 이어진다.
④시험 비리와 교육 기회의 왜곡, 지역 격차 심화
더 큰 문제는 시험과 평가에서도 드러난다. 일부 권력층 자녀들은 교사나 교수의 암묵적 지원 아래 정답을 전달받거나 시험지를 미리 확보하는 등의 부정행위를 통해 높은 성적을 쉽게 획득한다. 그 결과 이들은 실질적 학력이 매우 낮다. 한글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영어 회화는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교육의 질은 떨어지고, 공교육에 대한 신뢰는 약화한다.
평양 중심의 고급 과외 교육은 지방과 서민층 학생에게는 접근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다. 지방 교사들은 과외 시장에 진입조차 어렵고, 학생들도 기초 교재 확보조차 쉽지 않다. 이러한 교육 접근성의 차이는 결국 입시, 직업, 결혼, 사회경제적 지위의 전반적 격차로 이어지고 있으며, 이는 북한 내부의 계층 고착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3. 과외는 북한 사회 내 권력-경제-교육이 결합한 복합 구조의 모형
평양의 과외 시장은 단순한 사교육의 범주를 넘어섰다. 북한 사회 내 권력-경제-교육이 결합한 복합 구조의 모형이다. 공식적으로는 ‘평등한 교육’을 말하지만, 그 현실은 비공식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과외는 특권층의 특권 도구가 된다.
특히 시험 부정과 교사·교수의 협조 아래 이뤄지는 성적 조작은 교육의 신뢰와 질을 무너뜨리고 있다. 영어는 물론이며 기본적인 한글 능력조차 부족한 학생들이 입시를 통과해 상위 교육기관으로 진학하는 현실은 북한 교육이 ‘능력’이 아닌 ‘배경에 따라 작동’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는 교육 본연의 기능을 형해화(形骸化)하는 것일 뿐 아니라 사회적 이동성 자체를 마비시키려는 결과를 낳는다.
이 문제는 단순한 교육 개혁의 문제가 아니다. 북한 사회 구조 전반과 직결되어 있다. 교육을 통한 계층 이동이 막혀버린 사회에서는 창의, 노력, 정의와 같은 기본 역량들의 가치를 인정받기 어렵게 된다. 북한의 교육 개혁은 단지 교과서와 교사 수를 늘리는 문제가 아니다. 특권-부패 구조를 해체하는 근본적 방향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남북 간 교육 협력이나 대북 인도적 지원 역시 이 같은 구조적 실태를 깊이 이해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그림자 교실’까지 고려하는 실질적 접근이 필요하다. 평양의 과외는 단지 교육 문제가 아니다. 북한 미래 전체를 가늠하는 바로미터이다.
따라서 진정한 변화는 이 불평등한 교실을 마주하는 데서 시작된다. 평양의 사교육 구조를 직시하고 교육을 다시 ‘기회’로 되돌리는 것. 그것이 북한 내부 개혁과 한반도 미래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