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통·식품 대기업의 오너 3~4세가 경영 전면에 속속 등장하고 있다. 롯데 신유열 부사장, CJ 이선호 실장, 한화 김동선 부사장은 지주사와 핵심 계열사에서 중책을 맡으며 단순한 승계 수순을 넘어 새로운 도약을 향한 본격적인 행보에 나섰다. 주력 사업 성장세가 둔화된 상황에서 이들이 어떤 성과를 내고 어떤 신사업을 발굴하느냐에 따라, 각 그룹은 물론 국내 소비산업의 향후 전략까지 좌우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롯데 신유열, 연이은 지분 매입…경영 참여 행보 속도
6일 업계에 따르면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부사장)은 최근 롯데지주 주식 4168주를 장내 매수했다. 취득 단가는 주당 2만8832원, 총매입액은 약 1억 원 규모다. 이로써 신 부사장의 보유 주식은 3만91주(0.03%)로 늘었다.
신 부사장은 지난해 6월 처음으로 7541주(0.01%) 보유 사실을 공시한 뒤 꾸준히 지분을 늘려왔다. 같은 해 9월 4255주, 12월 4620주를 매입했고, 올해 6월에도 9507주를 사들였다. 이번 추가 매입으로 지분율을 0.03%까지 끌어올리며 단순한 상징을 넘어 실질적 책임경영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다.
그는 일본 롯데홀딩스에서도 주요 보직을 맡으며 입지를 넓히고 있다. 지난해 사내이사 선임에 이어 경영전략본부 관장과 ‘원롯데(ONE LOTTE)’ 태스크포스 관장을 겸임 중이다. 미래성장실 역시 모빌리티·바이오·헬스케어 등 신사업을 총괄하는 조직으로, 신 부사장의 그룹 내 무게감이 점차 커지고 있다.

CJ 이선호, 지주사 복귀…‘미래 먹거리’ 사업 직접 챙긴다
이재현 CJ 회장의 장남 이선호 CJ제일제당 식품성장추진실장은 이달부터 지주회사에 신설되는 미래기획실장을 맡았다. 2019년 지주사를 떠난 뒤 6년 만의 복귀다. 그룹 차원의 미래 신사업을 지주사에서 직접 총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래기획실은 CJ의 중장기 비전 수립, 미래 신수종 사업 발굴, 전략 시스템 구축을 전담하는 조직이다. 그동안 개별 계열사 단위로 진행돼 온 신사업 발굴을 지주사 차원으로 끌어올려 그룹 전체의 전략과 시너지를 극대화하겠다는 구상이다. 6년 만의 지주사 복귀는 후계 구도와 미래 전략을 본격적으로 실행하는 출발점으로 해석된다.
이 실장은 미국 컬럼비아대 금융경제학과를 졸업하고 2013년 CJ제일제당에 입사했다. 이후 그룹 경영전략실 부장, CJ제일제당 내 전략기획·M&A 등 주요 업무를 두루 거쳤다. 2022년 10월부터는 식품성장추진실장으로 사내벤처·혁신조직 육성과 ‘퀴진K’ 기획 등으로 성과를 낸 바 있다. 이번 지주사 복귀는 CJ그룹 차원에서 쌓여 있던 미래 전략과 후계 구도의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특히 시장에서는 이선호 실장의 복귀와 맞물려 CJ올리브영의 움직임에도 주목하고 있다. 올리브영이 최근 자사주를 매입하고 외부 지분을 정리한 것은 단순한 재무 조정이 아니라 향후 지주사와의 합병을 염두에 둔 사전 작업이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현재 이 실장의 CJ 지분율은 3%대로, 올리브영 지분은 11%를 넘어선다. 따라서 두 회사가 합병할 경우 이 실장의 지주사 내 지분율이 크게 높아져 승계 기반을 강화할 수 있다. 다만 이와 관련해 CJ그룹은 5일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한화 김동선, 아워홈 이어 신세계푸드까지…급식사업 몸집 키운다
한화그룹 3남 김동선 한화갤러리아·한화호텔앤드리조트 미래비전총괄 부사장은 급식사업에 잇따라 베팅하며 시장 판도를 흔들고 있다. 지난 5월 아워홈 지분 58.62%를 8695억원에 인수해 경영권을 확보한 데 이어, 이번에는 신세계푸드 급식사업부를 1200억원에 인수했다.
신세계푸드는 단체급식사업을 고메드갤러리아에 100% 양도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고메드갤러리아는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산하 아워홈 자회사로 이번 거래를 위해 설립됐다. 양도 예정일은 오는 11월28일이며, 임시주총 승인을 앞두고 있다.
국내 급식시장은 약 6조원 규모로 삼성웰스토리, 아워홈, 현대그린푸드, CJ프레시웨이, 신세계푸드 등이 경쟁해 왔다. 지난해 아워홈의 급식 매출은 약 1조2000억원으로 삼성웰스토리(2조원)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여기에 신세계푸드(2754억원) 급식사업이 합쳐지며, 삼성웰스토리와의 격차가 크게 좁혀졌다. 동시에 현대그린푸드(1조원), CJ프레시웨이(7000억원) 등 3·4위 업체들과는 격차가 더욱 벌어지게 됐다.
이번 신세계푸드 급식사업부 인수는 김 부사장의 ‘볼트온(Bolt-on)’ 전략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동일 업종 내 경쟁 기업을 추가로 인수해 시장 지배력을 확대하고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려는 구상이다. 급식사업은 식재료 구매 단가, 물류 효율성, 신뢰도 확보 등 규모의 경제가 관건인 만큼, 향후 삼성웰스토리와 아워홈의 ‘투톱’ 구도로 시장이 재편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정원호 부산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는 “신세계푸드의 단체급식 매각은 전략적 차원에서 방향성을 정리한 결정으로 볼 수 있다”며 “급식 업계는 본질적으로 규모의 경제가 중요한 시장이라 물량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