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화생명이 최근 ‘보험금청구권 신탁’ 상품을 내놓는 등 대형 보험사들이 관련 상품을 내놓으로면서 시장 확대가 예상된다. 다만 아직 보험업계 전반에서는 사업성에 큰 기대를 두지 않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시장 활성화를 위해 법·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10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한화생명은 최근 보험금청구권 신탁 전용 상품을 출시했다. 보험금청구권 신탁은 피보험자가 사망한 뒤 보험수익자에게 지급되는 보험금을 신탁업자가 대신 관리·운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을 말한다.
한화생명 역시 고객이 신탁을 활용해 자녀 학자금이나 상속세 마련, 장기 생활비 등 여러 목적에 맞춰 종신보험을 설계할 수 있도록 했다. 예를 들어 손자녀 학비를 지원하려는 조부모는 1억원의 사망보험금을 일시금이 아닌 매년 1000만원씩 10년간 분할 지급하도록 설정할 수 있다. 분할 지급 기간 동안 사망보험금 잔액은 정기예금 등으로 운용돼 최종 지급액에 이자가 더해진다. 한화생명 관계자는 “보험금청구권 신탁을 통해 종신보험을 고객 목적에 맞게 한층 유연하고 의미 있게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보험금청구권 신탁은 종합재산신탁 라이선스를 가진 보험사에게 새로운 수익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지난해 11월 보험금청구권 신탁의 허용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면서 보험사들이 보험금청구권을 신탁재산으로 인수할 수 있게 됐다. 현재 삼성·교보·미래에셋·흥국생명 등이 관련 업무를 운영 중이다.
보험사들은 이 제도를 활용해 고령 고객층의 자산 관리나 상속·증여 설계 등 새로운 고객 서비스를 기획할 수 있다. 이는 전통적인 보장 중심의 보험에서 종합금융서비스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평가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보험금청구권 신탁 대상인 사망보험금 규모는 905조5423억원에 달한다. 이 중 삼성·한화·교보·미래에셋·흥국생명 등 5개사의 규모가 572조2734억원으로 전체의 60%를 차지한다. 업계는 신탁 시장이 현재보다 최대 1.6배 이상 확대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다만 아직 시장 초기 단계인 만큼 실질적인 수익원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수익 기여도가 불확실해 회사 차원에서 큰 기대를 걸고 있진 않다”며 “고객이 원할 때 상품이 없으면 안 되니 상품 라인업을 갖추는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아직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관심이 크지 않아 보험사들의 돌파구가 될 만큼의 파급력은 보이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소비자 혜택 등을 확대하기 위해 보험금청구권 신탁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보험금청구권 신탁은 장애가 있는 자녀나 자산 관리 능력이 부족한 배우자를 위한 자산 관리 및 상속 설계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으며,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현 시점에서는 치매 환자와 고령층을 위한 종합적인 재산 관리에 기여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지광운 국립군산대 법학과 교수는 “보험금청구권 신탁은 사망보험금을 활용한 새로운 상속·재산관리 수단으로, 고령화 사회에서 그 중요성이 커질 것”이라며 “사망보험금에 한정된 신탁 대상을 단계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치매·상해보험금까지 신탁 대상을 넓히고, 치매신탁·후견신탁과의 연계를 허용해야 한다”며 “또한 현재 최소 수탁 기준(3000만원)을 폐지해 보험사가 약관으로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해야 소비자 선택권을 넓히고 제도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