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MFN 정책, 의약품 산업 직격탄 우려…“이중약가제 확대해야”

美 MFN 정책, 의약품 산업 직격탄 우려…“이중약가제 확대해야”

비공개 약가 계약 확대…투명성이 오히려 독으로
신약 늦게 들어오는 韓…‘코리아 패싱’ 확대
KRPIA, ‘한국형 환급제’ 제안…“글로벌 기준에 맞춰야”

기사승인 2025-09-15 12:15:59
쿠키뉴스 자료사진

미국 정부의 ‘최혜국 약가참조 정책’(Most Favored Nations, MFN)과 고율 관세 부과 위험에 제약 산업 전반의 불확실성 커지는 가운데 국내 수출 의약품까지 위험분담제 적용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위험분담제를 항암제나 희귀질환 등으로만 한정하는 것은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할 때 과도한 제한이라는 지적이다.

안정훈 이화여대 융합보건학과 교수는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의약품 통상압박 대응과 치료접근성 확보 위한 위험분담계약제 발전방향 국회토론회’ 발제를 통해 “위험분담제 확대를 통해 국내 수출 의약품들도 위험분담제 적용을 받을 수 있다면 MFN 약가 정책 하에서 미국 진출 시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토론회는 서영석·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동 주최했다.

최근 글로벌 제약 산업이 격동기를 겪고 있다. 미국은 MFN 제도를 통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저 수준으로 약가를 강제하려 하며, 고율 관세 부과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주요국들이 약가 협상에서 비공개 계약을 확대하면서 글로벌 약가 체계는 더 불투명해지고 있다. 우리 정부는 미국과의 관세협상 타결로 큰 위기는 넘겼지만, 여전히 세부 품목별 관세 방안과 약가 정책의 향방은 예측하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국내 약가 정책이 제약 산업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해외국과 비교해 비교적 드물게 약가를 투명하게 관리해왔고, 역설적으로 이 투명성이 약가 협상에서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이는 해외 제약사가 한국에 약 출시를 꺼리는 ‘코리아 패싱’으로 이어진다.

코리아 패싱은 중국이 한국을 보험 약가 참조 국가에 포함시키면서 더 잦아졌다. 중국 정부는 한국에서 먼저 급여 등재된 약가를 참조해 약가안을 마련하고, 이를 공개하지 않은 채 제약사와 협상을 벌인다. 중국 정부와 제약사 양측이 제시한 약가 차이가 15% 이상만 돼도 중국은 협상을 포기한다. 이 때문에 제약사들은 한국에서 의약품 급여 등재를 늦추더라도 의약품 시장 규모가 압도적으로 큰 중국과 먼저 약가 협상에 나서려 하고, 한국은 의약품 출시 순서에서 뒤로 밀리게 된다.

다국적 제약사가 국내 시장 진출을 표명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혁신 신약에 대한 허가를 받았으나 건강보험 등재를 받지 못하고 있는 의약품도 적지 않다. 다국적 제약사가 신약의 건강보험 등재를 미루거나 허가 신청을 하지 않는 이유에는 낮은 약가 책정, 거듭되는 약가 인하, 길고 복잡한 건보 등재 과정 등이 꼽힌다.

미국제약협회(PhRMA)에 따르면, 해외에서 출시된 뒤 한국에 1년 안에 진입하는 신약은 단 5%에 그친다. OECD 평균인 18%에 비해 3배 이상 차이가 난다. 또 한국은 미국에서 최초 허가된 항암제나 희귀의약품을 도입하는 데까지 평균 27~30개월이 걸린다. 독일(9~15개월), 영국(12~15개월), 캐나다(15~18개월) 등 주요 국가와 비교하면 매우 더딘 걸음이다. 평균 신약 급여율 역시 G20(28%), OECD(29%)에 비해 한국은 22%로 떨어진다. 급기야 PhRMA는 ‘수출 의약품의 가격을 인위적으로 낮게 책정해 자국 산업에 피해를 주는 국가’로 한국을 콕 집으며 미국 정부에 무역 협상을 통해 약가 정책을 개선해야 한다고 압박하고 나섰다.

이에 안 교수는 글로벌 제약사의 코리아 패싱 해소와 국내 약가 정책 개선 방안으로 ‘이중약가제 확대’를 제안했다. 이중약가제란 해외에서 참조하는 의약품 가격을 표시가격으로 지정하고, 실제 거래가격과의 차액을 제약사가 국민건강보험공단에 환급하는 제도다. 이중약가제는 환급형 위험분담제(RSA) 방식을 써 일부 항암제, 희귀질환치료제에 한정 적용하고 있다. 이는 약가 공개로 인한 해외 참조 가격의 하락을 막으면서 환자에겐 환급을 통해 실질적인 치료 접근성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가 만료돼 제네릭(복제약)이 출시되면 약가가 공개되고 이중약가 적용은 종료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약제의 결정 및 조정 기준 일부 개정안’을 통해 새로운 약제 평가 기준을 신설하고 국내 개발 신약에 이중약가를 적용할 수 있도록 열어뒀지만, 기존에 약가 평가가 완료된 신약은 이 제도를 적용받지 못하는 한계도 있다.

서영석·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2일 공동 주최한 ‘의약품 통상압박 대응과 치료접근성 확보 위한 위험분담계약제 발전방향 국회토론회’가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됐다. 신대현 기자

안 교수는 “한국 약가의 영향력은 계속 커지고 있다. 특히 중국이 2018년부터 신약 등재 시 한국 약가를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만큼 한국 약가가 글로벌 기준이 되고 있다”며 “명목가와 실제 환급 이후 약가 사이의 이중약가제는 글로벌 스탠다드다. 우리만 정찰제(단일가)로 운영되면 다른 나라에 참조되기 쉬워져 신약 도입이 지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위험분담제 적용 대상을 특정 질환으로 제한하지 말고 약가가 높고 재정 부담이 큰 모든 약제에 확대해야 한다”며 “투명성을 명목으로 이중약가제를 반대하는 논리는 실질적 손해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나라 약가가 세계적으로 ‘기준 약가’로 활용되는 지금이야말로 위험분담제 및 이중약가제 확대를 위한 제도 개편의 적기다”라고 강조했다.

산업계에서도 위험분담제 및 이중약가제 확대 요구가 나왔다. 최인화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 전무는 “MFN 정책을 단순히 외부 압력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국내 약가 제도의 구조적 취약성을 보완하고, 글로벌 기준에 맞게 혁신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면서 “단기적으로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은 의약품 표시가격과 실제가격을 구분하는 환급형 제도 확대다”라고 짚었다.

최 전무는 “‘이중약가제’라는 용어는 제도의 취지나 본질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새로운 명칭으로 ‘한국형 환급제’(K-환급제)를 제시했다. 그는 “지난 3월부터 수출되는 약에 한해 대외 가격을 높게 허용하는 이중약가제를 시행하고 있는데, 이를 수입 의약품에도 확대 적용한다면 의약품 공급 위험 요소를 일정 부분 해결할 수 있다”라며 “K-환급제는 한국이 직면한 통상 환경의 불확실성을 관리하면서도 환자 치료 접근성과 산업 경쟁력을 동시에 강화할 수 있는 제도 혁신 모델이다”라고 제안했다.

강희성 대웅제약 실장은 글로벌 수출을 전제로 개발된 비혁신형 기업의 신약이나,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해 도입된 non-RSA형 항암제 및 희귀질환 치료제 등도 환급형 위험분담제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 실장은 “이는 국내 등재 시 고표시가 유지를 가능하게 해 해외 원개발사의 약가 참조 우려를 완화하고, 결과적으로 국내 환자들에게 보다 다양한 치료옵션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중약가제의 목적은 제약사의 이익 증대가 아니라 신약에 대한 환자 접근성을 높이고, 모든 이해관계자가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협력의 방식임을 이해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정부는 국민들의 치료 접근성 확보와 산업 발전을 위해 대외 환경 변화와 의약품 수요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위험분담제 등 약가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김연숙 복지부 보험약제과장은 “단순히 MFN 정책 때문만이 아니라 글로벌 표준에 맞게 국내 약가 제도를 발전시켜나가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며 “약가가 너무 투명해서 불합리할 수밖에 없는 제도들을 계속 개선하겠다”고 전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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