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는 서울을 세계 속에 알리는 단계를 넘어, 세계를 서울화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DDP는 그 중심에서 건축적 상징성을 넘어 한국 문화를 전파하는 발신 기지가 되고자 합니다.”
차강희 서울디자인재단 대표이사는 지난 30여 년간 국내 산업디자인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겨온 인물이다. LG전자 디자인연구소 소장으로 근무하는 20여 년 동안 초콜릿폰, 그램 노트북, 올레드 TV 등 혁신적인 전자제품이 차 대표의 손에서 탄생했다. 누구보다 속도감 있게 산업계 변화를 이끌어 온 그가 이제는 서울을 무대로 세계와 소통하는 디자인 허브를 그리고 있다.
지난 1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만난 차 대표는 “DDP가 서울만의 유니크한 상징물로 자리 잡은 만큼, 그에 걸맞은 다양한 행사와 사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핵심은 DDP의 국제화다. 오는 2027년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디자인기구(WDO) 70주년 총회가 이미 가능성을 입증한다. 서울이 WDO 정기총회 개최지로 선정된 데는 DDP의 상징성이 큰 몫을 했다.
지난달 아시아 최초로 선보인 ‘Design Miami in situ(디자인 마이애미 인 시추)’ 전시도 같은 맥락에서 개최됐다. 25만여 명이 DDP를 찾은 가운데, 젠 로버츠 디자인 마이애미 CEO는 “내년에도 반드시 행사를 진행해야 한다”며 향후 협력 확대 의사를 밝혔다. 차 대표는 “앞으로도 다채로운 국제 행사를 펼쳐나갈 계획”이라면서 “DDP를 한국을 넘어 세계 속의 명소로, 나아가 문화를 교류할 가교로 만들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제화 전략의 핵심은 인재 육성이다. 차 대표는 “골프의 박세리, 축구의 손흥민처럼 디자인 세계에도 이른바 ‘스타’가 필요하다”며 “국내에는 역량 있는 디자이너가 많지만, 이들을 키워내고 드러내는 시스템은 없다”고 지적했다. K-디자인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신진 디자이너의 발굴·성장이 필수적이라는 게 재단 측의 설명이다.
오는 15일 열리는 ‘서울디자인위크’가 디자인보다 디자이너를 전면에 내세우는 장으로 기획된 이유도 그래서다. 서울디자인위크는 올해로 12회를 맞는 종합 디자인 축제로 ‘우수한 디자이너가 우수한 디자인을 만들어낸다’는 차 대표의 철학을 담았다. 그는 “이전까진 스타가 될 역량을 갖춘 디자이너를 키우고 알리고 성장시킬 자양분이 다소 부족했다”며 “재단이 여기에 초점을 맞춰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재단이 운영 중인 ‘디자인 런’ 역시 젊은 디자이너들의 창업과 실무 경험을 지원하며, 한국형 디자인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고 있다. 차 대표는 신진 인재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로 ‘독자적인 가치’를 꼽았다. 그는 “디자인이 새로운 가치와 문화를 창출하는 작업인 만큼, 남과 다르게 생각하고 포착하는 능력이야말로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역량”이라고 밝혔다.
차 대표의 철학은 경계를 허물고 전체를 보는 데 있다. 과거 프라다폰을 디자인하면서 전면 버튼을 과감히 없앴듯, DDP 운영에서도 기존 틀을 깨는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오픈AI와 협력한 미디어 아트쇼는 디자인과 인공지능(AI)의 접점을 탐색한 시도였다. 그는 “AI는 디자이너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작업을 확장시키는 도구”라며 향후에도 AI와 협력한 디자인 프로젝트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차 대표의 목표는 명확하다. 남은 임기 2년 동안 국제화와 인재 발굴·육성 사업을 가속화하는 것이다. 그는 “DDP가 국내외 누구나 영감을 얻기 위해 방문하는 공간으로, 아울러 새로운 전시·행사·신제품을 만나는 성지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