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낮 없이 며칠을 싸워도 꺼지지 않던 불이 1mm의 빗방울에 잦아들었습니다. 모두가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어요. 하늘이 내린 기적에 감사하고 또 감사했습니다.”
김난희 안동소방서장은 지난 15일 기자와 함께 최근 발생한 산불로 피해를 입은 지역을 둘러보며 회상에 잠겼다. 산등성이 곳곳은 나무들이 까맣게 그을려 헐벗었고, 도로를 따라 늘어선 건물들에도 화염이 덮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산과 산 사이에 들어선 요양시설, 병원, 기숙학원, 공장 등은 인적 없이 적막감만 감돌았다. 김 서장은 “산불이 일던 당시 한낮에도 온 거리가 재와 연기로 자욱해 마치 밤처럼 어두웠다”며 “불길이 산을 넘어 마을 어귀까지 밀려왔고, 급박한 상황 속에서 대피하지 못한 이들은 건물 안에 무방비로 갇혀있었다”고 설명했다.
지난 3월22일 경상북도 의성군에서 발화한 산불은 건조한 날씨와 강한 바람이 겹치면서 순식간에 안동을 비롯한 북부 지역 전역으로 확산됐다. 불길은 영덕까지 번진 뒤에야 진화됐는데, 그 사이 9만 헥타르(㏊), 여의도 면적의 156배에 달하는 산림이 잿더미로 변했다. 이번 화재로 경북에서 26명이 목숨을 잃고, 29명이 부상을 입는 등 인명 피해도 컸다.
특히 안동은 산불이 휩쓴 지역 중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곳이며 초가집과 문화유산 등이 밀집해 있어 우려가 컸다. 안동소방서는 김 서장의 지휘 아래 300여명의 대원을 투입해 밤낮없이 진화 작업에 매달렸다. 산불 규모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인력이었지만, 사투를 벌인 끝에 마을까지 다다른 불길을 가까스로 저지했다. 동시에 병원과 요양시설에 입원해 있던 와상 환자 등 2000여명의 환자들을 안전한 지역으로 신속하게 이송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김 서장은 “불길의 열기로 인해 자동차가 녹아내릴 정도였다”며 “30년간 수많은 현장을 경험했지만, 이런 재난은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산속에 위치한 병원과 요양원이 큰 위험에 놓였고, 인근에는 가스충전소와 주유소까지 있었다. 대형 폭발로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순간이 있었다”면서 “그간 축적한 산불 진화 경험과 위기 대응 역량을 쏟아 부어 인명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진화 현장의 상황은 열악했다. 김 서장은 “대원들이 탈수와 과로로 쓰러졌고 진화 도중 70여명의 대원이 산불에 고립돼 화상과 골절 등 부상을 입기도 했다”며 “끝이 보이지 않던 진화 작업 속에서 모두가 좌절하고 있을 때 기적처럼 내린 가느다란 비가 큰 힘이 됐다”고 했다.

마을 복구 작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김 서장은 이번 산불을 계기로 예방 체계를 견고하게 다져나갈 계획이다. 그는 “비료, 폐기물, 초가집 등은 불이 붙으면 쉽게 꺼지지 않는다”며 “초가집 하나에 붙은 불을 진압하는 데 아파트 화재 진화에 준하는 소방력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문화재 주변에 저수조를 설치하고, 마을마다 산림 인접 지역에 비상 소화전을 갖추도록 할 것”이라며 “주민을 대상으로 한 산불 예방 훈련 프로그램도 준비 중이며, 소방청에 진화 헬기를 늘려 달라고 요청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특히 김 서장은 소방·구급 인력의 확충과 교육 인프라 개선에 역점을 두고 있다. 그는 “각종 재난 현장을 나가 보면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현실을 체감하게 된다”며 “행정 지원 인력 역시 부족해 현장 대원들이 마음 놓고 훈련이나 교육을 받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또 “소방 대원과 구급 대원은 단기간 훈련으로 투입할 수 있는 인력이 아닌 만큼 체계적 훈련 과정이 필수”라며 “정부가 인력 확충과 함께 화재 현장을 재현한 시뮬레이션 훈련 시스템 도입에 적극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김 서장은 국내 1호 간호사 출신 구급 대원이자, 경북 최초의 여성 소방서장으로서 소방공무원의 처우 개선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있다고 했다. 더불어 여전히 남성 중심의 문화가 강한 소방 조직 안에서, 여성 후배들이 당당히 설 수 있는 길을 여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꿈을 품고 있다. 이를 위해 그는 행정보다는 현장을 택한다. 직접 발로 뛰며 대원들의 고충을 피부로 느끼고자 한다.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이재민 대상 자원봉사 활동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김 서장은 “내가 부족하면 동료와 후배, 그리고 국민의 안전이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언제나 최선을 다해 임하고 있다”며 “하늘로 떠나보낸 소중한 동료들을 마음 속에 깊이 새기며 근무 현장 개선을 위해 앞장서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는 “구급 대원, 소방 대원, 간호사 모두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며, 이는 하늘이 내려준 사명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일은 돈이나 명예와는 바꿀 수 없는 소중하고 값진 일이다”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