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이자장사’ 경고에…생존법 고심하는 은행권

대통령 ‘이자장사’ 경고에…생존법 고심하는 은행권

기사승인 2025-07-30 06:05:03 업데이트 2025-07-30 08:35:22
서울 용산구 4대 은행. 유희태 기자

금융권이 이른바 ‘이자장사’ 꼬리표를 떼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생산적 금융’으로 전환하라는 압박이 거세지면서다. 기업대출 확대와 벤처·혁신기술 투자, 해외 진출 등 다각적인 전략을 꺼내 들고 있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권대영 부위원장 주재로 지난 28일 은행연합회와 금융투자협회, 보험·여신금융협회 등의 협회장을 불러 비공개 간담회를 열었다. 이는 앞서 이재명 대통령이 금융권의 ‘이자놀이’ 관행을 공개적으로 경고한 데 따른 후속 조치로 해석된다.

권 부위원장은 “손쉬운 이자장사에 매달려왔다는 국민 비판이 지속되고 있다”며 “금융이 시중 자금의 물꼬를 AI, 첨단산업, 벤처기업, 자본시장, 지방·소상공인 등 생산적 영역으로 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은행권은 대책 마련에 분주한 분위기다. 그간 예대마진(예금·대출 금리 차)과 부동산 중심 영업으로 수익을 올려왔지만, 초강도 주택담보대출 규제에 이어 정부가 직접 ‘생산적 금융’ 확대를 주문하면서 방향 전환이 불가피해졌다는 게 업계의 인식이다.

은행들은 기업대출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하반기 경영전략을 재정비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하반기 적극적인 기업대출 자산 성장”을 예고했다. 국민은행은 “우량 자산 위주의 성장 기조와 연 6~7%대 여신 성장을 도모하겠다”고 목표를 세웠다. 하나은행은 소호·기업대출 특판 한도를 늘리고 금리 혜택도 확대한다. 우리은행은 공급망금융 플랫폼 ‘원비즈플라자’와 기업데이터 관리 플랫폼 ‘e-MP’ 활성화에 나선다. 농협은행은 신보·기보·신용보증재단과 손잡고 4조5000억원 규모의 금융지원을 약속했다. 방위산업 기업인 LIG넥스원의 기술개발·시설투자 지원도 병행할 예정이다.

다만 기업대출 확대가 연체율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은 고민이다. 5월 말 기준 은행권 기업대출 연체율은 0.77%로 전월 대비 0.09%p 상승하며 약 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0.95%에 달했다. 이에 금융당국은 기업대출 확대를 뒷받침하기 위한 제도 개선에 나선다. 은행권이 요구해온 대출 위험가중자산(RWA) 가중치 하향 등 건전성 규제 완화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임베디드 금융’도 새로운 돌파구로 주목받고 있다. 임베디드 금융은 비금융 플랫폼이나 서비스에 금융 기능을 통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수익모델은 수수료 수익과 신규 고객 확대를 통한 부수거래로부터 오는 수익 등이다. 국민은행은 삼성금융네트웍스, 스타벅스, 빗썸 등과 제휴해 관련 서비스를 선보였다. 하나은행은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과 제휴했다. 우리은행과 농협은행은 CJ올리브네트웍스, 네이버페이 등과 손잡았다. 고객과의 접점 확대, 젊은 고객 유입, 혁신 금융 서비스 실현(은행 업무 위탁 활성화), 비이자이익 확대를 위한 전략이다.

아울러 금융권은 정부가 추진 중인 100조원 규모 ‘국민 펀드’에도 적극적으로 동참할 방침이다. 산업은행 산하 50조원 규모의 첨단전략산업기금을 모펀드로 조성하고, 민간 및 연기금의 매칭 투자로 총 100조원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세부적인 재원 확보에 금융권의 직접투자와 초장기 기술투자펀드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비이자 수익 확대는 국내에만 머물지 않는다. 금융권은 글로벌 영업망 확장을 통해 해외 주요 거점에서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구축하고, 신규 시장 진출과 투자 기회도 모색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다음 달 미국 LA지점을 열어 서부 지역 리테일·중소기업 금융을 본격 공략할 예정이다. 이번 LA 진출로 활동 반경을 서부로까지 넓히게 된다. 신한은행은 유럽·중동·아프리카(EMEA) 거점인 런던지점을 최근 8 비숍스게이트 빌딩으로 이전하며, 글로벌 금융 중심지에서의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또 아프리카금융공사와의 협약을 통해 인프라 금융과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 지원에 나섰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예대마진 중심의 수익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비이자 수익 확대 방안을 모색 중”이라며 “지금은 중장기적 수익 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전환의 시기”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부 기조에는 공감하지만, AI나 신기술 펀드 같은 분야는 성과가 가시화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만큼 부담이 크다”며 “정부 요구와 수익성을 동시에 충족시킬 해법 마련이 쉽지 않지만, 돌파구를 찾기 위한 시도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
최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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