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이 주4.5일 근무제(주4.5일제)의 단계적 도입을 공언하면서, ‘주5일제’를 가장 먼저 시행했던 금융권이 또다시 변화의 선두에 설지 관심이 집중된다. 다만 금융권 노사 및 정부가 한자리에 모인 자리에서는 제도 실현 가능성과 도입 방식, 속도 등을 놓고 입장차가 팽팽했다.
금융노조 “주5일제도 금융이 먼저…이번에도 앞장설 때”
김형선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은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주4.5일제, 금융산업의 책임과 역할’ 포럼에서 “2002년 주5일제를 가능하게 했던 것도 금융산업이었다”며 “이번에도 금융이 먼저 나서면 사회적 수용성은 훨씬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노사 자율 결정만으로도 바로 도입 가능한 몇 안 되는 산업이 금융”이라며 “정부가 시범사업부터 로드맵을 갖고 뒷받침한다면 현실화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현재 금융노조는 2022년부터 주4일제의 과도기적 성격인 주4.5일제 도입을 목표로 설정해 산별중앙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금융노조 측은 주4.5일제 도입이 저출산, 청년실업, 지방소멸 등 구조적 사회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핵심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지금 한국 사회가 직면한 구조적 위기는 집단적 노동시간 단축 없이 풀 수 없다”며 “주4.5일제는 단순한 근로시간 단축을 넘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사회적 대전환의 해법”이라고 주장했다.
영업시간 단축시 생산성 저하, 고객 불편 문제도 일축했다. 김 위원장은 “코로나19 시기 은행권이 1시간 영업시간을 단축 운영했을 때 이익이 전혀 감소하지 않았고, 민원도 거의 없었다”며 “오히려 은행 고객들은 영업 종료 시간을 연장해달라는 요구가 더 많기 때문에 시간 조정으로 고객 편익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용자 측 “실현 가능성·부작용부터 따져야”
반면 사용자 측은 제도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수용성과 실행 가능성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고객 불편과 사회적 공감대 부족, 조직 내 불균형 우려 등이 이유다.
정종우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 노사정책부장은 “금융은 공공 서비스 산업인 만큼, 속도보다는 사회적 합의와 실행 가능성에 기반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업무 강도 증가, 인력 부담, 고객 접점 공백 등의 문제를 사전에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노동시간 단축만으로 생산성이 오르지는 않는다”며 “기술 투자와 업무 방식 혁신이 병행돼야 하며, 금융권 특성에 맞춘 유연한 도입 모델과 전산 시스템, 고용 구조 등에 대한 준비가 선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정부 “정교한 설계 필요”
전문가들은 제도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도입 실효성에 대해선 신중론을 폈다. 일하는 방식이 고도화되며 시간당 생산성은 높아질 수 있지만, 일부 근로자에게는 예상치 못한 급여 삭감이 발생할 수 있고, 기업 입장에서는 노동 공백을 메우기 위한 인력 충원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권혜원 동덕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벨기에는 주 4일제를 법제화했지만 시행 후 수요가 낮았고, 국내 일부 기업에서도 4일제·4.5일제를 시도했으나 안착하지 못했다”며 “자칫 몰아서 일하는 ‘압축노동’ 강도만 높아질 수 있다”고 경계했다. 정홍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도 “법정노동시간 단축 논의가 이뤄질 경우 특수고용, 플랫폼 노동자 등 비전형 노동자의 노동시간도 함께 규율해야 한다”며 “장시간 노동에 따른 과로사와 불평등을 줄이기 위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금융권의 주 4.5일제 도입을 촉진하기 위해 시범사업 운영이나 인센티브, 노사 교섭 지원 등 적극적인 역할에 나서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한진선 고용노동부 노동개혁정책관은 “주 4.5일제를 현장에 무리 없이 안착시키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며 “생산성 향상을 위한 지원 방안과 제도적 정비는 고용노동부만의 힘으로 해결하기 어렵고, 범부처적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압축적인 노동 등 기존 목표에 부정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도록 현장 사례를 많이 듣고 고민하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이날 포럼 사례 발표자에는 서승욱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카카오지회 지회장, 전성관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본부장이 참석했다. 이어 김종진 일하는 시민연구소 소장이 ‘일과 삶 균형의 노동시간 전환 주4.5일제’ 주제로 발표했다.
토론에는 권혜원 동덕여대 경영학과 교수,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김형선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 정종우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 노사정책부 부장 등이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