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필의 視線] 천안 천흥사, 사적 되려면 왕건은 일단 떼놓자

[조한필의 視線] 천안 천흥사, 사적 되려면 왕건은 일단 떼놓자

기사승인 2025-08-17 21:43:10
천안시는 성거산 천흥사를 국가사적으로 지정 받고자 한다. 왼쪽부터 국보 천흥사동종과 보물인 5층석탑과 당간지주.

지난 14일 천안박물관에서 ‘천흥사지 사적지정을 위한 학술대회’가 열렸다. 천안에는 유관순열사사적지 외에는 국가사적이 없다. 고려 태조 왕건은 930년 천안신도시를 만들고, 6년 후 이를 기반으로 후삼국통일 위업을 이뤘다. 그렇지만 이를 기념할 만한 유적지가 천안에 없다.

천안시는 천흥사지에 주목하고 있다. 이번 학술대회 제목도 ‘고려 태조 왕건의 사찰, 천흥사지’이다. 그런데 학술대회를 참관하고, 또 참가 학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천안이 너무 의욕만 앞세우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학계가 납득할만한 주장을 펴야만 사적 지정을 이룰 수 있다. 과거 실수를 반복해선 안 된다.

천안은 과거 수십년 동안 직산위례성 백제 첫도읍지설(說)에 목을 매왔다. 이는 한국사학계가 전혀 인정하지 않는 주장이었다. 그런데도 시는 523m 위례산 정상에서 큰 돈을 들여 2000년 전 온조왕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허사였다. 그간 괜한 데 정열을 쏟은 것이다. 

지금 천안은 온조에서 왕건으로 눈을 돌렸다. 고려사 기록에 명확한 천안 도시탄생 스토리가 있어, 사학계는 오래전부터 천안에 주목했다. 2016년이 되서야 시는 이런 학계 관심을 깨닫고, 학술대회를 연속적으로 열고 있다.

천안은 고려와 관련성이 아주 깊다. 천안 관련 국보 3점 모두 고려 초기 작품이다. 그런데 북면 대평리 출토 보협인석탑(동국대박물관 소장)을 제외한 2점은 고려 현종(재위 1009~1031)과 직접적 관련이 있다. 이들 성환 봉선홍경사비와 성거 천흥사종(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은 제작 연도까지 명확하다.

천흥사 경우, 보물 2점도 절터에 남아있다. 5층 석탑과 당간지주가 천흥사의 영역을 가늠케 한다. 석탑 주위로 최근 4차례 발굴을 했다. 한 개의 탑에 세 개의 금당을 갖춘 ‘1탑 3금당식 사찰’임이 밝혀졌다. 또 절이 확장되면서 별개의 영역을 지난 ‘다원식(多院式) 사찰’인 것도 확인했다. 마지막 발굴에선 금당 뒤로 넓은 강당(講堂) 터까지 발견했다. 고려시대 주요 사찰이었음이 고고학 자료 및 물질자료로 확인된 것이다. 

문헌에 의하면 고려 중기 중량감 있는 두 분의 법상종 계열 스님이 천흥사 주지로 있었다. 이만하면 사적 신청을 위한 자료는 확보된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천안시 욕심과 학계 생각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는 태조 왕건이 천흥사를 창건(혹은 중창)했다고 보고 있다. 그래야 천안 도시 정체성을 왕건 중심으로 엮을 수 있다. 근데 왕건과 천흥사를 직접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문헌 및 물질 자료가 없다. 천흥사 있는 성거산 이름을 왕건이 지었다는 기록만 있다.

학자들은 아쉽지만 왕건 연결은 포기하고 현종에 집중하길 원한다. 천흥사종에는 현종 즉위 직후인 1010년 2월 종을 만들었다는 글이 새겨져 있다. 그런데 석탑·당간지주도 현종이 절 중창 때 함께 조성했다고 보는 학자들이 많다.

지난 14일 천안박물관에서 ‘고려 태조 왕건의 사찰, 천흥사지’ 학술대회가 열렸다. 발표자와 토론자들이 토론에 앞서 환담을 나누고 있다. 사진=조한필 기자

천흥사를 ‘태조 왕건의 사찰’로 주장하면, 사적 지정 문턱에서 발목이 걸릴 위험이 크다. ‘천흥사=왕건’ 연결은 아직은 역사적 상상력을 동원한 추론이다. 이에 반대할 학자가 있을 게 분명하다. 우선 천흥사를 현종 중심으로 푼 후 향후 왕건까지 연결시키자. 

현종은 동종 조성 및 절 중창 6년 후 부모님을 받드는 봉선홍경사 창건에도 착수했다. 그는 왜 천안지역에 그리 애착을 가졌을까. 

천안은 경주 출신 임언이 도독부사로 부임되고, 그 인연으로 그의 딸이 천안부원부인이 된 곳이다. 신성왕태후는 신라 경순왕의 사촌누이로 천안부원부인 이후 왕건과 결혼했다. 그는 현종 부친인 왕욱의 어머니다. 신성왕태후와 천안부원부인은 같은 경주 출신인 셈이다. 

천안은 도독부사 임언과 천안부원부인 때문에 경주 사람들과 연고 깊은 도시가 됐다. 왕욱은 신성왕태후와 함께 경주 사람이 많았을 천안에 자주 방문했을 수 있다. 할아버지 왕건과 연관된 천흥사도 갔을 것이다.

왕욱이 어린 시절의 현종에게 할머니 이야기를 하며, 자신의 천안 추억담도 자주 말했을 수 있다. 그래서 현종은 즉위하자마자 천안의 천흥사 동종을 만들고, 할머니를 왕후로 추증했다. 이렇게 천안과 연고 깊은 현종만으로도 천흥사는 사적이 될만하다.

조한필 천안·아산 선임기자
조한필 기자
chohp11@kukinews.com
조한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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