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 앞두고 기업 잇단 손배소 취하…“노사관계 변화 조짐”

노란봉투법 앞두고 기업 잇단 손배소 취하…“노사관계 변화 조짐”

CJ대한통운‧현대제철‧현대차 잇따라 파업 손해배상 소송 취하
“경영권 일부 포기한 결정”…시행 과정서 잡음 불가피
노조 “소송은 노조 압박 수단”…과도한 배상 관행 바로잡아야

기사승인 2025-08-22 18:02:41 업데이트 2025-08-22 19:49:28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7월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노조법 2·3조 개정 촉구 긴급 결의대회를 열고 관련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대기업들이 노조를 상대로 제기했던 파업 손해배상 소송을 잇따라 철회하고 있다.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선제적으로 리스크를 줄이려는 조치라는 해석과 함께 법 제정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상징적 사례라는 평가가 교차하고 있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주요 대기업들이 노조를 상대로 제기했던 손해배상 소송을 철회한 데 대한 시선이 엇갈리며 노란봉투법을 둘러싼 공방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CJ대한통운은 전국택배노조를 상대로 낸 24억원 규모의 손배소를 교섭을 통해 모두 취하했다. 앞서 CJ대한통운은 노조의 쟁의행위를 정당성이 없다며 22억원을 청구했고 제일제당도 자택 앞 집회로 2억원을 별도로 청구했지만, 법원이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한 판결 이후 소송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작용했다.

현대제철 역시 2021년 파업에 참여한 비정규직 노조원 461명을 상대로 제기한 46억원대 손배소를 최근 철회했다. 당시 노조가 당진제철소 점거 농성을 벌이자 회사는 5억9000여만원 배상이 인정된 1차 소송에 이어 46억원 규모의 2차 소송을 제기했는데, 이번 취하는 이 가운데 2차 소송 건이다. 

현대차도 지난 12일 비정규직지회 노조원들을 상대로 진행 중이던 손배소 3건에 대한 소 취하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이 소송들은 2010년과 2013년 불법파견 시정 요구 파업, 2023년 울산공장 점거 파업과 관련된 것으로 일부는 1·2심에서 배상 판결이 났지만 대법원 파기환송으로 재심리가 진행되던 사안이었다. 

노조 손해배상을 취하한 한 기업의 관계자는 “노조와의 상생을 위한 대승적 차원에서 소 취하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손해배상 소송 취하 결정은 여당이 추진 중인 노란봉투법 처리와 맞물려 주목되고 있다. 노란봉투법은 사용자 범위를 원청까지 확대하고, 근로 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경영상 결정에 대해서도 파업을 허용하는 한편, 불가피하게 발생한 손해에 대해서는 배상 책임을 면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오는 24일 국회 본회의에 해당 법안을 상정해 처리할 방침이다.

기업들이 잇따라 대규모 소송을 선제적으로 취하하면서 일각에서는 노란봉투법이 경영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경영권 보장이 위축되고 불법 파업이 조장될 수 있다는 지적과 함께, 노조의 단체행동 권한이 확대되면서 노사 균형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로 인해 법 시행 과정에서 상당한 잡음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전상현 숭실대 법과대학장 교수는 “손배소를 취하하지 않으면 노조가 어떤 방식으로 대응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오히려 ‘을’의 위치에 놓일 수 있다”며 “최근 기업들의 손배소 취하는 단순히 노란봉투법 입법을 앞둔 방어적 조치라기보다 경영권 일부를 포기한 결정으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노조의 단체행동은 원래 근로 조건이나 취업규칙과 관련 있을 때에만 정당한데, 노란봉투법이 통과되면 경영권을 직접 겨냥한 파업이나 정치적 파업 등 기업이 통제하기 어려운 변수가 늘어날 수 있다”며 “기존에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당사자만 사용자가 됐지만, 법 개정 후에는 원청뿐 아니라 하청, 심지어 하청의 다른 사업장까지도 파업 대상이 될 수 있어 사용자 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노조와 시민단체에선 이번 소송 취하 결정들이 과도한 손배소 관행을 바로잡고 노사 갈등을 교섭으로 풀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상징적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민주당은 현대차와 현대제철에 소송 철회를 요구해왔으며, 한화오션도 대우조선해양 시절 제기한 470억원 규모의 손배소 철회 여부를 검토 중이다. 노동계는 “노란봉투법 제정을 통해 원하청 교섭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촉구하며 법안 통과에 힘을 싣고 있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교수는 “다른 나라에서도 이론상 개인별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했지만, 실제로는 손해를 입증하기 어려워 사실상 불가능했다”며 “우리나라도 이제야 과도한 손해배상 관행에서 벗어나 상식이 회복되는 과정에 들어선 것”이라고 짚었다. 또 “노조 파업 면책 조항이 불법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하 교수는 “일각에서 기업의 경영 자유와 충돌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지만, 실제 기업 부담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며 “한국 경제는 이미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규모로 성장했기 때문에 손배소 취하 같은 조치로 흔들릴 만큼 취약하지 않다. 오히려 지금까지는 원청의 책임을 하청에 전가한 부분이 많았는데, 앞으로는 권한을 가진 본사가 합리적으로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혜진 노조법개정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은 “기업들이 제기한 손배소는 실제 보상을 받기 위한 목적이라기보다 노조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며 “노란봉투법이 통과되면 이런 무리한 방식 대신 협의를 통해 실질적 논의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기업의 경영권은 헌법에서 보장된 권리가 아니며, 다양한 이유로 제한을 받아왔다”면서 “반면 노동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인 만큼 사회적 공동선을 지키는 차원에서 지나친 대립보다는 대화를 통한 해결이 필요하고, 기업도 일정 부분 이를 수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다빈 기자
dabin132@kukinews.com
이다빈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추천해요
    0
  • 슬퍼요
    슬퍼요
    0
  • 화나요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