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 중 스마트폰은 안 되는데...車는 왜 디스플레이 범벅?

운전 중 스마트폰은 안 되는데...車는 왜 디스플레이 범벅?

독일에선 터치스크린 조작 중 사고 발생도
스크린 과잉의 역풍… 車 물리 버튼으로 회귀

기사승인 2025-10-12 06:00:12
볼보 EX30 CC 모델은 비상등을 포함한 차량 대부분의 기능을 디스플레이에서 조작해야 한다. 김수지 기자 

깜빡이와 와이퍼조차 화면을 통해 켜야 하는 시대. 운전자는 전방이 아니라 스크린에 더 많은 시선을 빼앗긴다.

그간 완성차 업계는 ‘미래 차=스크린’이라는 공식을 내세우며 대형 디스플레이 경쟁을 벌여왔다. 볼보코리아는 EX30 CC 모델의 계기판을 아예 없애고, 태블릿 크기의 센터 디스플레이에 공조 기능과 깜빡이 기능 등을 통합했다. 테슬라 모델3·모델Y 역시 속도계와 각종 조작 버튼을 화면 하나로 몰아넣어 단순한 인터페이스를 강조했다.

그러나 과한 디스플레이 기능 탑재로 주행 중 복잡한 조작 과정이 안전을 위협한다는 우려가 잇따르면서, 자동차 업계가 앞다퉈 경쟁하던 디스플레이 전략 판도가 변하고 있다. 급기야 ‘직관성’이라는 장점을 갖고 있는 물리 버튼으로 다시 회귀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테슬라 모델 3는 대부분의 기능을 디스플레이로만 조작해야 한다. 테슬라 제공 

운전 중 스마트폰 사용은 금지인데…차량 속 디스플레이 조작은 괜찮을까

지난 2019년 독일에서는 테슬라 모델3 운전자가 빗길 주행 중 디스플레이 와이퍼 조작 문제로 사고를 내고 결국 소송으로 이어졌다. 이후 운전자들의 불만은 단순 불편을 넘어 안전을 위협하는 현실적 문제로 확산하고 있다. 
 
해외 자동차 관련 연구 기관들도 같은 문제를 지적한다. 노르웨이 도로안전위원회(TRYGG TRAFIKK)가 지난해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운전 중 터치스크린 조작 시 운전자의 시선이 전방에서 스크린으로 이동하는 시간이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짧은 시간에 조작할 수 있는 에어컨 온도 조절조차 평균 3.4초가 소요됐다.

미국 고속도로교통안전청(NHTSA)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복잡성이 교통사고와 직결된다고 지적했다. NHTSA는 “시선을 화면에 단 5초만 뺏겨도 시속 55마일(88km) 주행 시 축구장 정도의 거리인 100m를 눈감고 운전하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해외에서는 이러한 결과들을 토대로 물리 버튼의 필요성이 재조명되고 있다. 

이에 유럽 신차 안전평가 프로그램(Euro NCAP)은 2026년부터 주요 차량 기능(와이퍼, 비상등 등)에 대해 ‘물리 버튼(Physical button)’이 없는 경우 최고 안전 등급(5성) 부여가 어렵도록 평가 기준을 강화한다고 밝혔다. 다수의 기능을 터치스크린으로만 조작할 수 있도록 제작한다면 불이익을 주겠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관련 제도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은 “국내 신차 안전도 평가(KNCAP)는 2026년부터 운전자 모니터링 평가를 시작할 예정”이라며 “별도로 차량의 버튼 유무를 평가하진 않지만, 주의 분산 문제를 확인할 수 있어 터치스크린 사용으로 인한 안전성 저하도 평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현대자동차가 물리 버튼을 재도입해 미국에 출시한 아이오닉 5 부분변경 모델. 현대차 

다시 돌아오는 물리 버튼

소비자들의 반발과 연구 기관의 지적은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들의 전략 수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폭스바겐은 최근 골프 GTI와 전기차 ID.3, ID.4 등에서 다시 물리 버튼을 도입하기로 했다. 폭스바겐 관계자는 “운전 중에는 일부 기능을 더 빠르고 직관적으로 조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고객 피드백을 반영했다”며 “볼륨 조절이나 공조 시스템처럼 자주 사용하는 기능을 물리 버튼으로 구현해 안전성과 직관성을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비상등, 볼륨 조절, 독립 난방 등 핵심 기능은 앞으로도 직관적 버튼으로 유지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현대차 역시 아이오닉5 부분 변경 모델에서 공조, 열선 등 주요 기능에 버튼과 다이얼을 재도입했다. 이는 단순한 디자인 회귀가 아니라 ‘운전자 경험(UX)과 안전성 강화’를 우선시한 전략적 전환으로 풀이된다. 업계 안팎에서는 현대차와 폭스바겐의 선택이 디지털 일변도였던 흐름을 되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움직임이 일시적 유행이 아닌 UX·안전성 중심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으로 보고 있다. 차량 실내의 화두가 더 이상 스크린 크기가 아니라, 운전자의 시선과 손을 도로에 얼마나 집중시킬 수 있느냐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다.

문학훈 오산대 미래전기자동차과 교수는 “터치식은 원하는 걸 조작하기 위해 최소 2~3번의 단계를 거쳐야 하기에 오조작 가능성이 높고, 운전자 입장에서는 불편하다”며 “특히 50대 이상 등 고령의 운전자는 터치식 조작이 어렵고, 어떤 기능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기에 결국 직관적이지 않으면 기능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수지 기자
sage@kukinews.com
김수지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추천해요
    0
  • 슬퍼요
    슬퍼요
    0
  • 화나요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