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긴 추석 연휴에 따라 국내 증시가 장기간 휴장한 가운데 국내 일부 증권사에서 미국 주식 거래 오류가 발생했다. 미국 현지 브로커(중개사)에서 일어난 전산장애 문제 때문이다. 이같은 브로커 문제는 다음달 시작되는 주간거래 서비스 재개 이후 투자자에 대한 보호가 강화되면서 완화될 전망이다.
1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8일 미국 정규장 개장 후 메리츠증권, 카카오페이증권, 토스증권, NH투자증권, 대신증권 등 5개사에서 주문 접수 오류를 비롯한 서비스 장애가 발생했다.
토스증권은 오류 발생 당일 공지사항을 통해 “오후 10시30분부터 10시47분까지 일부 주문이 정상적으로 접수되지 않는 현상이 생겼다”며 “일부 미체결된 주문에 대한 정정, 취소 주문 등이 정상적으로 처리되지 않았다. 오후 10시47분 이후 접수된 주문은 정상 처리됐다”고 설명했다.
해당 거래일에는 추석 연휴에 따라 국내 증시가 장기간 휴장한 영향으로 서학개미 투자자들이 진입하고 미국 증시가 최고가를 재차 경신하면서 주문량이 폭주한 바 있다. 당시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와 나스닥종합지수가 각각 전 거래일 대비 0.58%, 1.12% 오른 6753.72, 2만3034.38로 거래를 마쳤다. 이들 지수는 장중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이번 오류는 거래량 급증으로 인한 현지 중개사의 전산장애가 원인이다. 미국 현지 중개사인 드라이브웰스에서 전산장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오류를 겪은 증권사 관계자는 “현지에서 문제가 발생하면서 해당 중개사를 메인 브로커로 이용하는 국내 증권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서비스 중단 사태를 겪은 것”이라고 말했다.
서비스가 중단된 증권사들은 오류 발생 이후 다른 현지 중개사로 전환해 문제를 해결한 것으로 드러났다. 시간별 차이는 존재하지만, 장애가 발생한 뒤 오후 11시쯤 대다수 증권사가 서비스를 복구했다. 메리츠증권 관계자는 “장애를 인식한 뒤 곧바로 중개사를 전환해서 문제를 해결했다”고 밝혔다.
매년 터지는 현지 브로커 문제…주간거래 서비스 정지 사태도
대다수의 국내 증권사들은 미국 주식 거래 서비스를 제공할 때 현지 중개사를 거쳐 나스닥 등 미국 내 거래소로 주문을 전달하는 방식을 이용한다. 현지 중개사가 국내 증권사의 주문을 접수받고, 미국의 각 거래소로 이를 전달하고 체결을 마친 뒤 국내 증권사에 알려준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현지 법인을 설립하거나 라이센스를 취득해 직접 중개를 하는 방식도 있지만 인가 취득 등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서 “현지 인프라 측면과 주문 오류 등 리스크 발생 시 위험 헤지(분산) 차원에서 다수의 브로커(중개사)와 협업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했다.
그러나 현지 브로커 전산장애로 미국 주식 거래에 문제가 발생한 사례는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금융투자부문 전자금융사고 현황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국내 증권사에서 발생한 전산사고 건수는 총 429건이다. 사고유형별로 살펴보면 해외주식 브로커 전산장애 등 외부요인이 151건으로 전체의 35%에 달한다. 발생 건수도 지난 2022년 24건에서 △2023년 37건 △2024년 40건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금감원 관계자는 “올해 상반기도 다수의 전산사고가 연달아 발생해 투자자 등의 불안 및 불신이 높아졌다”라며 “최근 해외주식 거래가 대폭 증가하면서 해외 브로커·거래소 장애 등 외부요인에 의한 전자금융사고도 늘어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지난해 8월5일 미국 현지 대체거래소(ATS)의 전산장애로 거래 일괄 취소 사건이 발생하면서 주간거래 서비스가 중단되기도 했다. 당시 글로벌 증시 대폭락에 ‘블랙 먼데이’ 사태가 발생하면서 블루오션의 거래체결시스템이 셧다운 됐다. 주가 급락에 따른 주문량 폭증으로 블루오션의 거래 시스템이 처리한도를 초과해 장애가 발생한 것이다.
국내 증권사들은 그동안 미국에서 야간거래 업력이 가장 긴 대체거래소(ATS) 블루오션과 미국 주식 주간거래를 협력해 왔다. 국내 증권사의 모든 주간거래 주문은 블루오션을 통해 체결되는 구조로 운영됐다. 블루오션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현지 야간거래(한국시간 기준 오전 9시~오후 5시) 지원을 승인받았기 때문이다.
블루오션의 전산장애로 인해 발생한 국내 투자자들의 주간거래 취소 금액은 총 6333억원으로 계좌수는 약 9만개에 달한다. 이같은 사태에 증권업계는 공동 대응을 결정하고, 사고 재발 가능성 등을 감안해 같은해 8월16일 미국 주간거래 서비스 제공을 동시에 중단했다.
증권업계, 美 주간거래 재개 맞춰 ‘안전장치’ 강화
다만 미국 주식 거래 전산장애 문제는 증권업계의 주간거래 재개에 따른 투자자 보호 강화 조치로 완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투자협회와 금감원은 미국 주식 주간거래 서비스 중단 장기화에 따른 투자자 불편 등을 고려해 오는 11월부터 순차적으로 재개한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주간거래 재개와 관련해 국내 투자자 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삼고 충분한 안전장치가 마련되도록 적극적으로 유도할 계획이다. 우선 거래 안정성 확보를 위해 국내 증권사는 2개 이상의 미국 현지 중개사 및 ATS와 주문 회선을 연결해야 한다.
아울러 거래 오류 및 장애 발생 시 투자자 잔고 복구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롤백(roll-back) 시스템도 도입된다. 롤백 시스템이 구축되면 계좌별, 시간대별, 체결번호별 등 각 상황에 따른 주문복구가 가능하다. 이외에도 증권사는 장애 유형별 시나리오를 구체화한 대응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 또 사고 발생에 대비해 자사 시스템 오류가 발생할 경우 투자자 손실에 대한 명확한 보상기준·절차도 구비한다.
이러한 조치는 미국 주식 주간거래뿐 아니라 정규장 등 시장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게 증권업계 측 설명이다. 이에 따라 주간거래를 제외한 마켓 시장의 전산장애 문제 대응책도 강화됐다는 평가다.
증권사 관계자는 “투자자 보호를 위한 안전장치 강화는 주간거래를 비롯해 모든 시장에 적용되는 시스템이다. 주간거래 재개 시점에 맞춰 해당 조치들이 활성화될 것”이라며 “이미 롤백을 비롯한 안전 장치들은 준비된 상황이다. 주간거래 재개에 맞춰 시스템을 정비하고, 강화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롤백 같은 경우는 주간거래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고 정규장에도 당연히 적용된다. 마찬가지로 보상체계 구체화도 정규장과 주간거래에 동일하게 적용된다”면서 “특정적으로 어느 시장에만 하는 것은 역차별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정규장 등 시장도 함께 적용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