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부여했던 미국산 반도체 장비의 중국 반입 허가를 철회했다. 이에 따라 4개월 뒤부터는 두 회사가 중국 생산공장에 미국산 장비를 들여올 때마다 건별로 미국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번 조치로 한국 반도체 업체들의 중국 공장 운영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2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미 상무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인텔이 중국 공장에 미국산 반도체 제조 장비를 들여올 때 자동으로 적용하던 ‘포괄허가제’를 폐지하기로 했다. 중국 다롄 소재 ‘인텔반도체 유한공사’의 경우 SK하이닉스가 인수한 곳으로, 사실상 한국 기업의 생산시설이다. 이번 조치는 120일 뒤부터 효력이 발생한다.
앞서 미 정부는 2022년 10월 중국에 대한 미국산 장비 반입을 제한했지만,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인텔에는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 자격을 부여해 사실상 규제를 유예했다. 이 덕분에 극자외선(EUV) 장비를 제외한 일반 반도체 장비는 별도 허가 없이 중국 반입이 가능했다. 그러나 이번 조치로 앞으로는 모든 장비 반입 시마다 건별 승인을 받아야 한다. 미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매년 약 1000건의 수출 허가 신청이 추가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따라 램리서치, KLA,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 등 미국 장비업체들의 대중국 매출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반면 중국 현지 장비업체에는 기회가 열리고, 미국 마이크론이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번 조치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견제 기조와 맞물려 한국 기업을 통해 미국의 첨단 반도체 기술이 중국으로 유출되는 것을 차단하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해석된다. 또 한·미 정상회담 직후 발표된 만큼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저지하고, 한국의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노선을 견제하려는 성격도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 기업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수출 자체가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장비를 반입할 때마다 허가 절차를 거치게 되면 생산 차질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특히 장비 교체·정비 주기가 필수적인 반도체 산업 특성상 승인 절차에 최대 9개월 이상 소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 공장에서 첨단 반도체보다는 범용 D램과 낸드플래시를 주력으로 생산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낸드플래시 생산량의 35%를 시안 공장에서, SK하이닉스는 D램 생산량의 40%를 우시 공장에서 담당한다. 범용 제품 수요가 꾸준한 만큼 이번 규제가 한국 반도체 기업에 미치는 부정적 파장이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