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생태계 흔들…계속운전·고준위특별법 첫 발 난항

원전 생태계 흔들…계속운전·고준위특별법 첫 발 난항

- 고리 2호기 계속운전 심사, 다음 달로 보류
- 2030년까지 원전 10기 운전허가 기간 만료…계속운전 시급
- 시행된 고준위 특별법, 시행령·위원회 구성 속도 더뎌

기사승인 2025-09-26 17:06:14
부산 기장군 고리원전. 연합뉴스 

새 정부 들어 원전 정책이 재검토되는 가운데, 원전 생태계 유지를 위한 제도 역시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에너지 대전환 속 원전산업의 ‘골든타임’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6일 원전업계에 따르면,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전날 서울 중구 원안위 대회의실에서 제222회 회의를 열고 고리 원전 2호기 사고관리계획서 승인안, 계속운전 허가안을 심의·의결 안건으로 다뤘으나, 충분한 논의를 위해 이후 회의에 안건을 재상정하기로 했다. 사실상 보류 조치다.

설계수명 40년, 685MW(메가와트)급 가압경수로원전인 고리 2호기는 지난 1983년 4월 상업운전을 시작해 2023년 4월 가동을 중단했다. 중단 이전에 계속운전 심사를 받고 가동을 지속해야 했지만, 탈원전 정책 여파에 행정 절차가 지연돼 계속운전 심사를 아직도 매듭짓지 못했다. 

위원들은 앞서 사고관리계획서가 승인된 한국형 원전(APR1400)과 다른 노형인 고리 2호기와 차이 등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며 더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사고관리계획서 안건을 놓고 안전 여부를 평가하기 위한 수치가 제대로 나와있지 않는 등 구체적이지 못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다만 기술 적용 등 지적과 관련해 일부 위원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과 원안위 산하 외부전문가 위원회인 원자력안전전문위원회를 거쳤는데, 원안위가 기술 심사를 계속하는 것이 맞냐며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다. 특히 다음 회의 예정일자인 10월23일 이전에 국민의힘 추천 위원 2명의 임기가 만료됨에 따라 정쟁 속에 심사가 당초 예상보다 장기화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고리 2호기 계속운전 심사는 우리나라 계속운전 제도의 첫 번째 사례다. 2022년 한국수력원자력은 고리 2호기 계속운전을 위한 안전성평가를 제출하고, 같은 해 9월 고리3·4호기에 대한 안전성평가도 제출했지만 현재는 2·3·4호기 모두 멈춘 상태다. 고리 2·3·4호기를 포함해 오는 2030년까지 총 10기의 원전이 운전허가 기간 만료를 앞두고 있다. 합산 시설용량만 8.45GW에 달한다. 

한수원은 원안위가 계속운전을 허가(승인)하는 대로 재가동 준비에 착수할 예정이었으나, 보류되면서 연내 재가동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원자력발전소 내 임시저장 중인 사용후핵연료 습식저장소(수조). 국내 임시저장시설들은 오는 2030년 이후부터 포화될 전망이다.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고준위 특별법 시행…원전 주변 지역 범위 기준, 위원회 구성 등 해결과제

이날부터 시행되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벌법(고준위특별법)’ 역시 시작부터 삐걱대는 모습이다.

방사능 농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은 지하 500m 이상 깊은 땅속에 건식저장방식으로 처분돼야 하지만, 우리나라는 관련 법·제도 미비로 이러한 폐기물을 습식저장방식으로 원전 내 임시저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마저도 2030년 이후부터 임시저장시설이 포화돼 원전 중단 우려까지 나오고 있어, 저장시설 건립이 시급한 상황이다.

정부는 고준위특별법을 바탕으로 2050년까지 중간저장시설을, 2060년까지 영구 폐기장을 짓기로 규정하고, 그 사이 추가 임시저장시설에 대한 구축·운영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그러면서 세부 사안인 △주민 투표 실시와 통보 범위 △관리 시설 부지 유치 지역과 주변 지역 범위 △부지 내 저장 시설 관련 범위 등을 모두 시행령에 위임했다. 입법 예고된 시행령엔 이 범위를 일률적으로 ‘5km 이내’로 규정했다.

이에 전북 부안·고창, 경북 포항 등 전국 23개 시·군·구로 구성된 전국원전인근지역 동맹 행정협의회는 안전을 이유로 ‘원전 주변 지역 범위’를 최대 30km까지 확대해야 한다며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러한 주변 지역 범위를 10km로 확대하는 내용의 ‘고준위 특별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면서 논쟁이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문제는 이러한 고준위 특별법에 따른 핵심 의사결정기구인 ‘고준위 방폐물 관리위원회’ 구성이 정부 조직재편 속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별법 시행에 맞춰 관련 사무처는 국장급 사무처장 등 7명의 인원으로 최근 출범했으나, 사무처 정원 총 35명 대비 5분의 1 규모로 출발하게 됐다.

국무총리 소속 위원장 1명과 정부 및 국회 추천 인사 각 4명 등 총 9명으로 구성돼야 할 위원회 구성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준위 방폐장 건설 업무는 산업통상자원부 소관이었지만, 원전 정책이 기후에너지환경부로 이관되면서 업무는 물론 인력 배치에도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다.

원전업계 관계자는 “고준위 방폐장 건설은 12년의 부지 선정 절차를 포함해 약 37년이 걸리는 초장기 프로젝트”라며 “원전 계속운전 절차와 더불어 원전 생태계 유지를 위해 필수 절차인 만큼, 골든타임을 확보할 수 있도록 관련 정책에 속도가 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민 기자
jaemin@kukinews.com
김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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