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장약과 혈압약, 고지혈증약까지.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8명이 10종 이상의 약을 복용하고 있을 만큼 ‘다제약물’ 문제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부적절한 약물 복용은 노인의 입원과 사망 위험까지 높일 수 있어 약물 관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온 가족이 함께 모이는 추석을 기회 삼아 부모님의 약물 복용 실태를 살피고, 올바른 약물 관리법을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6일 의료계에 따르면 한꺼번에 다량의 약물을 복용하는 다제약물 복용은 이제 고령층 건강관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요 과제가 됐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한지아 국민의힘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고혈압, 당뇨병 등을 1개 이상 진단받고 10종류 이상의 약을 60일 이상 복용하는 만성질환자는 171만7239명으로 집계됐다. 2020년 대비 52.5% 증가한 규모다. 연령별로는 65세 이상이 138만4209명으로 전체의 80.6%를 차지했다.
다제약물 복용자는 매년 증가 추세다. 2020년 112만5744명, 2021년 130만282명, 2022년 141만560명, 2023년 154만5840명, 2024년 163만5067명으로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국내 다제약물 복용은 세계 선진국들과 비교해도 많은 수준이다. 우리나라 75세 이상 환자의 다제병용 처방률(5개 이상의 약물을 90일 또는 4회 이상 처방받은 환자 비율)은 2021년 기준 64.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50.1%)을 크게 웃돈다.
문제는 이렇게 많은 약을 동시에 복용하면서도 제대로 된 복약 관리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여러 약을 한꺼번에 복용하면 약효가 중복되거나 충돌해 어지럼증과 낙상, 인지 저하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이는 병원 입원으로 이어지고, 심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약물 간 상호작용, 중복 처방 관리 필요”
가족들이 실천할 수 있는 부모님의 올바른 약물 복용 습관 관리 방법을 안화영 전 대한약사회 지역사회약료사업본부장, 윤선희 대한약사회 약바로쓰기운동본부 강사에게 물었다.
안화영 전 본부장= 부모님께서 앓고 계신 질환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합니다. 여러 병·의원을 이용하실 경우 현재 복용 중인 약을 잘 챙겨 드시는지, 보관 상태는 적절한지, 특별한 사용법이 있는 약은 용법·용량대로 잘 사용하시는지 등을 가족이 함께 확인해 드리면 좋습니다. 식습관, 음주, 운동 등 생활습관도 알고 계신다면 치료 효과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약은 건강기능식품이나 음식과 상호작용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부모님께서 복용 중인 처방약뿐 아니라 일반의약품, 건강식품, 평소 섭취하는 음식을 함께 파악해두는 것이 우선입니다.
약은 치료 효과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 부작용, 이상반응이 동반될 수 있습니다. 약 복용 후 이상반응, 발진, 소화불량, 속쓰림, 변비, 설사 등 이전에 없던 증상이 나타난다면 반드시 처방의 또는 약사에게 문의해야 합니다.
여러 병·의원을 이용하는 경우 약물 간 상호작용이나 동일 성분 또는 유사한 효능의 중복 처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진료 시 부모님이 현재 복용 중인 전체 약을 의사에게 알리는 것이 안전한 약물 관리에 큰 도움이 됩니다.
윤선희 강사= 고혈압, 당뇨, 심장병 등 만성질환약은 잘 드시는지 확인하고, 규칙적으로 못 드시면 투약 캘린더 등을 이용해 복용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매일 드시는 약은 스마트폰 알람을 해두시면 좋고, 1주에 한 번 먹는 골다공증약 등도 스마트폰 알람 기능을 설정해두면 규칙적인 복용을 도와줍니다.
가족이 함께 병원에 가서 복용 상황을 공유하면 의사가 약 조정에 참고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어르신의 처방약을 조제하는 단골 약국 약사와 상담을 적극적으로 해주시면 좋습니다.
약 보관은 눈에 잘 띄는 장소가 좋습니다. 가장 좋은 위치는 식탁 위입니다. 식사를 하시고 나서 바로 약을 복용할 수 있는 최적의 위치입니다. 또 약은 바구니 형태로 크게 표기해서 효능별로 따로 묶어서 눈에 띄게 보관하는 것이 좋습니다.
‘다제약물 관리사업’ 시행…“약 부작용도 의심해야”
정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다제약물 관리사업’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건보공단은 2018년부터 만성질환자, 10개 이상의 약 복용자, 다빈도 병·의원 이용자, 관리가 필요한 고위험 약물 복용자 등을 대상으로 다제약물 관리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사업 대상자로 선정되면 약사가 가정 방문과 유선 상담을 통해 약물 교육 및 복약 상담을 진행한다.
윤 강사는 “다제약물 관리사업에 대한 홍보가 부족해 모르는 환자가 적지 않다”며 “환자가 직접 약국을 찾아 복약 상담을 받을 수 있는 내방형 다제약물 관리 서비스도 있으니 적극 이용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약 부작용인지 모르고 다시 그 증세를 치료하기 위해 또 다른 약을 복용하는 식으로 연쇄 처방이 이뤄지고 있다”면서 “몸이 아프면 혹시 약의 부작용이 아닐까 의심해 보는 습관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안 전 본부장은 “약은 잘 쓰면 약이지만, 잘못 쓰면 독이 될 수 있다”며 올바른 약 복용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최근 젊은층의 만성질환도 증가하고 있어 앞으로 다제약물 사용은 늘어날 것이고, 그만큼 오남용 위험도 커질 수 있다”라며 “약에 대해 궁금한 점은 반드시 약사나 의사 같은 전문가에게 문의하고, 단골 약국을 정해 꾸준히 상담받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