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은 사라지지 않는다…‘노동’에서 ‘휴식’으로 바뀌는 풍속도

명절은 사라지지 않는다…‘노동’에서 ‘휴식’으로 바뀌는 풍속도

2030 38% “차례 불필요”
공항 인파·간소화 제사상이 보여준 변화

기사승인 2025-10-08 06:00:08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에서 여행객들이 출국 준비를 하고 있다. 쿠키뉴스 자료사진 

올해 추석, 직장인 박아영(38)씨는 시댁이 있는 부산행 KTX 대신 남편, 6살 아들과 함께 방콕행 비행기에 올랐다. 양가 부모님께는 한우 선물세트와 용돈을 미리 보내드렸고, 명절 당일에는 영상통화로 인사를 대신했다. 박씨는 “매년 명절이면 5시간 넘게 운전하고, 명절을 쇠고 나면 녹초가 됐는데 올해는 처음으로 휴식 같은 명절을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풍경은 이제 낯설지 않다. 명절이 끝날 때마다 온라인에는 “차라리 명절을 없애자”는 푸념이 반복된다. 과중한 가사노동, 장거리 이동, 친지의 사생활 간섭이 겹치면서 ‘명절 증후군’은 고질적 사회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명절 직후 2주간 이혼 상담 건수는 평소보다 25~30% 늘어난다.

“명절은 노동일 뿐”…청원까지 등장한 폐지론

과거 농경 사회에서 설과 추석은 대가족이 모여 조상을 기리고 풍년을 감사하는 공동체 의례였다. 그러나 핵가족·1인 가구 확산 속에 전통적 의미는 급속히 약화됐다.

불만은 청원으로 확장되기도 했다. 2018년 추석을 앞두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명절을 없애 달라’는 글이 100건 넘게 올라왔다. 한 청원인은 “맞벌이 부부가 늘어난 시대에 차례의 의미는 퇴색됐다”며 “명절만 되면 장시간 운전하는 남성과 제사 음식을 준비하는 여성 모두 힘들어 이혼율이 높아진다”고 토로했다.

세대 차이 뚜렷…2030 “차례 불필요” vs 60대 “필요”

세대별 인식 차이도 뚜렷하다. 한국리서치가 9월 24일 발표한 조사에서 이번 추석에 차례·제사를 지낼 예정이라고 답한 이는 전체의 35%였다. 특히 18~39세의 38%가 ‘차례가 필요 없다’고 답한 반면, 60세 이상에서는 단 6%만 같은 답을 내놨다. 젊은 세대에겐 명절이 더 이상 ‘의무적 의례’가 아니라 선택 가능한 휴일이 된 것이다.

자료=한국리서치 

‘명절 연휴’ 의미의 재구성

‘폐지론’이라는 격한 표현 뒤에서는 명절의 재구성이 빠르게 진행 중이다. 역대급 ‘황금연휴’로 불린 올해 추석, 해외로 떠나는 행렬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에 따르면 연휴가 시작된 3일부터 7일까지 닷새간 이미 10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다. 연휴 마지막 날까지 총 150만 명을 돌파하며 역대 명절 최다 기록을 세울 것이 확실시된다. 차례상 대신 여행 가방을 꾸리는 풍경은 이제 흔하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모두에게 휴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직장인 심민기씨(40)는 “공항과 관광지가 붐벼 결국 쉬는 게 쉬는 게 아니었다”며 “명절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도 아쉬운데, 새로운 휴식 문화마저 경쟁처럼 변질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그는 ‘명절 2부제’ 같은 제도적 대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추석 연휴를 앞둔 2일 서울역에서 한 가족이 기차에 오르고 있다. 유희태 기자 

전문가들은 명절 폐지론을 극단적인 불만의 표출로 해석하면서도, 실제로는 시대 변화에 맞춘 풍속의 재구성이 이뤄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명절이 모든 사람에게 행복한 시간이 되지 못하고 있다”며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차례와 제사를 중심으로 흩어진 가족들이 고향에 모여 결속을 다졌지만, 지금은 핵가족화와 1인 가구 증가로 그런 기능이 많이 희석됐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명절은 없어지지 않겠지만, 앞으로는 장기간 공휴일로 인식되며 여행과 휴식의 성격이 점점 더 강해질 것”이라며 “명절은 사라지지 않고 시대에 맞게 달라지고 있다”고 전했다.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
황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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