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달러 환율이 1430원대를 넘어섰다. 재점화된 미·중 무역갈등과 한·미 협상 차질 우려가 겹치며 원화값이 하방 압력을 받은 영향이다. 전문가는 당분간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에서 등락을 거듭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13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주간거래 종가(1421.0원)보다 9.0원 오른 1430.0원에 출발했다. 1430원대 환율은 종가 기준 지난 4월29일(1437.3원) 이후 6개월 만이다.
환율 급등에는 미·중 무역갈등 우려에 따른 위험자산 회피 심리가 작용했다. 중국은 미국산 대두 수입을 중단한 데 이어 희토류 합금 수출 통제 강화 방침(9일)을 발표하고, 오는 14일부터 미국 관련 선박에 순톤(net ton)당 400위안의 ‘특별 항만 서비스료’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이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0일(현지시간)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 움직임을 ‘적대적 행위’로 규정하며 다음 달 1일부터 “중국에 100%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맞불을 놨다. 또 “한국에서 열리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회의에서 시진핑(중국 국가주석)과 만날 예정이었지만, 이제는 그럴 이유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투자 심리가 얼어붙으면서 이날 미국 뉴욕 증시 3대 지수가 급락했다.
APEC 정상회담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원화값도 하락 압력을 받았다. 3500억달러 대미투자 방식을 두고 한미 통상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가운데, 이달 말 APEC 회의가 돌파구가 될 것이란 기대감마저 꺾이며 원화 약세 압력에 힘을 실었다.
대외 상황도 원화에 우호적이지 않다. 달러화 가치는 상승세인 반면 원화와 동조화 경향이 있는 엔화와 위안화는 동반 약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DXY)는 99선을 웃돌고 있다. 특히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여자 아베’로 불리는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담당상이 당선되면서 엔화 가치가 4% 가까이 급락(달러·엔 환율 상승)했고, 이는 원화 가치를 함께 끌어내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미국은 중국을 해치려는 것이 아니라 도우려는 것”이라며 “중국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해 시장의 불안 심리를 일부 진정시켰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에서 높은 변동성을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문다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환율 전망 업데이트:연휴 사이 주요국의 정치 이슈’ 보고서에서 4분기 평균 환율 전망치를 기존 1370원에서 1390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환율 레인지는 1350~1440원으로 제시했다.
문 연구원은 “연휴 기간 미국, 일본, 프랑스의 정치 불안이 모두 강달러 압력을 자극했다”면서 “미국 고용 둔화로 뚜렷한 약달러 재개 전까지는 환율 하락 재료가 마땅치 않은 상황인데, 이마저도 (10월 1일부터) 미국 정부 셧다운으로 지표 발표가 잠정 중단된 상황”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달러·원의 향방은 미국 고용 보고서와 대미투자 협상에 달려있다”면서 “레벨 부담과 당국 개입으로 추가 상승 폭은 제한될 수 있지만, 1400원에서 강한 하방 경직성이 예상돼 당분간 1400원대 등락이 불가피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은 달러·원 환율이 무역리스크 재부상에 1430원대까지 오르며, 하반기 고점을 경신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날 예상치는 1428~1437원이다.
민 연구원은 “미중 무역전쟁 우려 재확대에 따른 아시아 통화 약세, 위험선호 심리 훼손 등 영향에 하반기 고점 갱신이 예상된다”며 “원화의 경우 1420원대 2차 저항선 붕괴로 연휴 간 예열이 완료된 역외 롱플레이까지 가세하면서 장중 상방 변동성 확대로 연결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