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92)

[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92)

쇠라의 <서커스 사이드쇼>는 빛과 구조, 인간 군상을 탐구한 작품

기사승인 2025-10-27 09:58:38
조르주 쇠라, <서커스 사이드쇼>, 1887~88, 캔버스에 오일, 99.7x149.9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현대 미술의 문을 열다- 후기인상주의 화가들

조르주 쇠라(Georges Seurat, 1859~1891)의 <서커스 사이드쇼 Parade de cirque>는 뉴욕 맨해튼 5번가에 자리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갤러리 825에서 전시되고 있는 후기인상주의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이는 현대 미술의 흐름을 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작품이다.

뉴욕 현대 미술관의 초대 관장 알프레드 바 주니어(Alfred Barr Jr.)는 1936년 “추상 미술과 큐비즘” 전시를 준비하며, 쇠라를 반 고흐, 고갱, 세잔과 함께 후기인상주의의 계보에 포함시켰다. 이 네 명의 화가는 생전에 서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인상주의를 넘어선 독자적인 화풍을 구축하며 현대 미술의 야수주의, 미래주의, 입체주의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알프레드 바의 현대 미술 계보, 1936

고요한 점묘, 쇠라 앞에서

미술 시장에서 19세기와 20세기 초 화가들 중 가장 경매가가 비싼 그림을 그린 화가들은 후기인상주의의 반 고흐와 세잔이다. 이들 중 살아 생전에 다소 영광을 누린 화가는 말년의 세잔이 유일하다. 그러나 다른 화가들보다 조르주 쇠라는 덜 알려진 편이다. 

그래서인지 반 고흐와 같은 방에서 전시되고 있는데, 이 작품은 물론 쇠라의 마지막 유화 습작인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음날, 이 작품 앞에서 중국인 부부가 기념 사진을 찍고는 좀 떨어진 구석에 있는 <서커스 사이드쇼>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걸 보았을 뿐이다. 쇠라의 작품을 알아보는 그들에게 말이라도 건네고 싶은 친밀감이 솟아났다. 

쇠라는 31살이란 짧은 생을 사는 동안 약 250점의 작품을 남겼다. 유화 작품을 기록하는 숫자는 79점에서 181점까지 다양한데, 이는 유화 스케치를 포함 하는지 아닌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서커스 사이드쇼> 앞에 선 순간 너무 보고 싶었던 작품이라 당황한 나머지 각 부분은 자세히 촬영했지만, 전체 사진을 찍지 않았다는 걸 뒤늦게 깨달었다.  

진저브레드 박람회 기간 동안 파리 나시옹 광장의 전경, 1900, 유럽 지중해 문명 박물관, 마르세유

 서커스의 리듬, 쇠라의 시선 

쇠라는1887년 봄, 파리 플라스 드 라 나시옹((Place de la Nation) 인근 노동자 계층 지역에서 4월 10일 부활절 이후 3주 동안 열리는 진저 브래드 박람회를 구경했다. 그리곤 쇠라는 서커스 코르비(Circus Corvi)의 사이드쇼를 그렸다. 

서커스 텐트 밖에서 무료로 펼쳐지는 이 공연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 티켓 구매를 유도하는 일종의 맛보기 쇼였다. 

추억을 유혹하는 색의 행진

이 그림은 잊고 있던 추억을 되살려 설레이던 그 시절의 심장박동을 되돌리게 만드는 마법을 부린다. 국민학교4학년 때, 어느 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서커스단이 왔다. 대개 이즈음 추석 전후가 아니었나 싶다. 온 동네엔 서커스가 몰고온 낯선 공기로 달뜨고 있었고, 사람들의 발걸음조차 들썩거리고 있었다. 서커스가 떠나고 난 뒤에는 동네 누군가가 사라졌다는 수근거림도 들려왔다.  

서커스에서는 맛보기 쇼로 악단과 분장한 피에로와 원숭이를 데리고 거리에서 사람들을 모으고 있었다. 트럼펫에서 흘러나오는 선율은 사람들을 유혹했고, 큰 북의 둔중한 리듬은 늘 다니던 동네를 환상적인 공간으로 변모 시키고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이전과 달랐다. 그것은 사건이었다. 다음 날 학교에선 전날 밤 공연을 본 아이들을 찾아내 벌을 세웠지만 그건 차후 문제였다. 돈이 없는 사람들은 몰래 천막을 들추고 들어가려고 하지만 어림없는 일이었다. 쇠라의 그림은 그 들뜬 마음을, 그 시절의 설렘을, 고요한 화폭 속에 고스란히 담고 있다. 

<서커스 사이드쇼> 부분

조르주 쇠라의 밤의 혁신: <서커스 사이드쇼>의 구조적 미학

쇠라는 이 작품을 위해 여러 차례의 스케치를 거쳐 구도를 다듬었으며, 황금비율을 적용한 평면적 배열과 정적인 분위기를 특징으로 만들었다. 그림 속 인물들은 이집트 벽화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일렬로 배치되어 있으며, 아홉 개의 가스등이 뿜어내는 빛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작품은 쇠라가 그린 여섯 점의 주요 인물화 중 하나로, 그의 짧은 생애 속에서도 가장 실험적이고 구조적인 시도로 평가받는다. 1888년 앙데팡당 전(Salon des Indépendants)에 출품되었지만, 당시에는 지나치게 과학적이고 감흥이 부족하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후기인상주의의 대표작으로 인정받으며, 현대 미술의 문을 연 선구적 작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진저브레드 박람회의 코르비 서커스, 뱅센느 쿠르, 파리, 1906, 엽서, 유럽 지중해 문명 박물관, 마르세유

코르비 서커스를 보기 위해 인산인해를 이룬 사진을 보니, 마치 K-POP 콘서트장을 방불케 한다. 한 서커스장은 1852년 나폴레옹 3세의 명령으로 지어졌으며, 개장 당시에는 '나폴레옹 극장(Théâtre Napoléon)'으로 불렸다. 

<서커스 사이드쇼> 부분

서커스 링마스터의 소유주인 페르디앙 코르비는 <서커스 사이드쇼>에서 연미복을 입고 콧수염을 한 옆모습으로 그려졌다, 이는 그의 시그니처 스타일로 아주 멋쟁이다. 

조르주 쇠라, <페르디낭 코르비와 조랑말>, 1887–88, 종이에 콩테 크레용, 29.5 x 22cm, 개인 소장

개인적으로 쇠라가 종이에 콩테로 그린 작품을 좋아한다. 이 작품은 콩테가 진하게 칠해지지 않았지만 <아느에르에서의 물놀이>를 그리기 위한 습작엔 캔버스 중앙 강가에 앉아있는 남자를 진한 색조 콩테로 그린 작품이 있다. 

조르주 쇠라, <아니에르에서의 물놀이>, 1884, 캔버스에 오일, 201x300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표정 없는 얼굴들, 말없는 이야기

마치 가발을 푹 눌러쓴 듯한 이 젊은이는 적막하고 고요하다. 등이 굽은 채 앉아 있는 노동자는 몹시 지친 모습이다. 강 건너에는 공업 도시 클리시(Clichy)의 공장과 연기가 나는 굴뚝이 보인다. 산업혁명으로 빈부의 차이는 더욱 극명해지고 보트를 탄 부르주아는 노동자들의 휴식처와는 반대로 라 그랑자트 섬으로 향하고 있다. 강 이편엔 7명이나 등장하지만 노동자들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소통하지 않는다. 각자 자신의 세계에서 갇힌 고독한 현대인의 모습이다.

쇠라의 인물들은 표정을 읽을 수가 없다. 그러나 옆모습과 뒷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전달하고 있다. 쇠라의 작품엔 원색의 색점이 병치되어 시야에서 혼합되기 때문에 모두 중간색이다. 그래서 블라맹크나 드랭의 강렬한 원색이 주는 것과는 다른 여운이 있다. 그림도 화가의 성향을 따라간다.

<서커스 사이드쇼> 부분
 
질서의 미학

쇠라의 <르 샤위>, <서커스>, <서커스 사이드쇼>로 서커스 3부작을 모두 감상했다. 앞의 두 작품과 달리 <서커스 사이드쇼>는 퓌뷔 드 샤반(Pierre Puvis de Chavannes, 1824~1898)의 벽화의 인물들처럼 기쁨과 슬픔은 철저히 배제되고, 법칙에 따라 단조롭게 조율된 존재처럼 보인다. 

미술사학자 존 리월드는 이 그림 속 인물들이 “기계적인 질서 속에서 감정을 억제당한 채 움직인다”고 설명했다. 쇠라는 도시의 오락, 군중의 리듬, 인간의 반복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유물의 농담

인류 최고의 관악기라 불리는 피리는 사람의 정강이뼈에 네 개의 구멍을 낸 저음의 피리였다. 단순한 음악 연주를 넘어, 의례와 주술, 사후 세계와의 교감까지 상징하는 도구였다. 

멕시코의 아즈테카 인들은 정강이뼈를 북채로도 사용했다. 죽은 자의 뼈로 살아 있는 자의 리듬을 만들던 시대. 그 리듬은 단순한 박자가 아니라, 죽은 자와 산 자의 대화였다. <아즈테카: 태양을 움직인 사람들> 전시를 보고 있던 교포 학생이 친구에게 말했다. “재활용을 아주 잘했다.”라고. 옆에서 관람하며 그 얘기를 들은 나는 모르는 사이였지만 마주보고 피식 웃고 말았다. 그 말은 농담이었지만, 어쩌면 진실이었다. 쇠라의 그림도, 피리도, 북채도—모두 인간이 남긴 흔적을 다시 울려 퍼지게 만든 ‘재활용’이었다.

예술은 그렇게, 반복과 질서 속에서 새로운 울림을 만들어낸다. 감정이 배제된 그림 속에서도, 죽은 자의 뼈로 만든 악기 속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리듬을 느낀다. 그것은 기쁨일 수도 있고, 기억일 수도 있다. 혹은, 아주 오래된 슬픔의 흔적일지도 모른다.

<서커스 사이드쇼> 부분

맨 오른쪽에 있는 구경꾼들은 매표소로 이어지는 계단에 줄을 서 있다. 시각적 아름다움에 서사와 개념을 결합한 쇠라의 <서커스 사이드쇼>는 단순한 오락 장면을 넘어, 빛과 구조, 인간 군상의 리듬을 탐구한 작품으로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깊은 미적 울림을 전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전시된 조르주 쇠라의 <서커스 사이드쇼>


최금희 작가

최금희 작가
는 미술에 대한 열정으로 전 세계 미술관과 박물관을 답사하며 수집한 방대한 자료와 직접 촬영한 사진을 가지고 미술 사조, 동료 화가, 사랑 등 숨겨진 이야기를 문학, 영화, 역사, 음악을 바탕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현재 서울시50플러스센터 등에서 서양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홍석원 기자
001hong@kukinews.com
홍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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