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경보 울렸지만 선풍기만 켰다”...정부 ‘기후재난 체계’로 전환 시급

“폭염경보 울렸지만 선풍기만 켰다”...정부 ‘기후재난 체계’로 전환 시급

7월 전국 온열질환자 749명…전년 대비 7.1배 급증
기후위기 경고…야외노동자, 여전히 보호 사각지대
“공급자 중심 정부 정책, 이제는 구조적 전환 필요”

기사승인 2025-07-09 18:14:44 업데이트 2025-07-09 19:19:18
쿠키뉴스DB

#서울 종로구에 거주하는 70대 A씨는 폭염 경보가 내려진 날에도 에어컨 대신 선풍기 바람에 의지해 하루를 버텼다. 그는 땀이 계속 흘러내리지만 에어컨을 켜지 않았다. 전기요금이 얼마나 나올지 몰라 두렵기 때문이다. A씨는 기초생활수급자다. 정부에서 제공한 에너지바우처가 있어도 사용법을 몰라 그대로 두고 있다. 최근엔 어지럼증으로 119에 실려 갈 뻔한 일도 있었다.

7월 들어 장마가 물러가고 무더위가 이어지면서 온열질환자와 사망자가 급증하고 있다. 정부는 폭염 대응책을 내놓고 있지만 ‘자연의 힘’ 앞에서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7월 1일부터 8일까지 전국 517개 의료기관에서 집계된 온열질환자는 749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05명)보다 7.1배 늘었다. 같은 기간 추정 사망자도 5명으로, 1년전(1명)보다 4명이 증가했다.

특히 8일 하루 동안 서울 기온은 37.1도를 기록, 1907년 기상관측 이래 7월 상순 최고기온을 갈아치웠다. 서울뿐 아니라 대전, 경북 등 전국이 ‘찜통’으로 변했다. 같은 날 전국적으로 238명의 온열질환자와 1명의 사망자가 발생해 올여름 들어 일일 최다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폭염을 단순한 기상현상이 아닌 ‘기후위기’라고 경고한다. 북태평양 고기압이 예년보다 빠르게 확장되면서 장마전선이 제 자리를 잡지 못했고 강수량 부족으로 지표면의 열이 식지 않았다. 여기에 도시의 콘크리트 구조물과 아스팔트 도로가 열을 흡수해 ‘도시 열섬 현상’이 체감 온도를 더욱 끌어올리고 있다.

기상청 관계자는 “향후 1~2주간은 강수 예보가 없어 7월 말까지 폭염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면서 “당분간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체감온도가 35℃내외로 무더운 날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폭염 피해는 건설, 농업, 물류 등 야외노동자에게 집중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이들을 위해 ‘무더위 휴식시간제’를 권고하고 있다. 적용 여부는 민간 업장 재량에 맡겨져 있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농촌진흥청은 폭염 경보 시 야외 작업을 자제하라고 권고하고 있으며, 8개 언어로 된 온열질환 예방 리플릿을 제작해 배포하고 있다. 또 작물 고온 피해 및 가축 폐사 위험이 커지는 상황에서 농가에 차광막 설치와 작업 자제를 권장하고 있다.


에너지바우처 지급했지만…“사용법 몰라 혜택 못 받아”

정부도 이번 폭염과 관련해 발 빠른 대응에 나섰다. 우선 지난 5월 15일부터 폭염 대비 종합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지자체와 협력해 취약계층 1만8000가구와 복지시설 500곳에 에어컨을 조기 설치했다. 지난 1일에는 최대 70만1300원의 에너지바우처를 일괄 지급했다.

그러나 고령자나 장애인 가구 중 일부는 사용법을 몰라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집배원과 생활지원사들이 가정을 방문해 바우처 사용법을 안내하는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냉방기기 사용이 꼭 필요한 취약계층이 전기요금 부담 없이 에어컨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정부는 또 행정안전부 주관으로 고용노동부, 지자체 및 산업안전공단 등 관계기관과 함께 매주 대책회의를 개최하고 분야별 폭염 대처 상황을 지속적으로 점검할 계획이다. 

행안부 오병권 자연재난실장은 “당분간 무더운 날씨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폭염 대책이 현장에서 잘 작동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폭염 대응, 공급자 중심…이제는 구조적 전환 필요”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폭염을 ‘기후재난’으로 인식하고 대응 체계를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냉방복지 확대, 무더위쉼터 확충, 옥상 녹화 등 도시구조 개선과 함께 야외 노동자, 고령자 등 취약계층 보호를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채여라 한국환경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와 지자체의 대책은 공급자 중심으로 형식적이고, 정책 수혜자가 제한적이며 효과 검증도 부족하다”며 “담당자 교체로 정책이 축적·개선되지 못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획일적인 온도 기준이 아닌 체감·영향 기반 대응체계로 전환하고, 현장 의견을 수렴해 정책을 설계하고 이에 대한 효과를 평가·환류하는 선순환 구조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7일 전력 최대 수요는 93.4GW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블랙아웃(대규모 정전)과 같은 사회적 재난으로는 이어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 발전소 관계자는 “예비전력이 10GW 이상 확보돼 안정적 수급이 가능하다”면서 “매일 오후 전력 수급 관련 회의를 열고 점검에 나서는 등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세종=김태구 기자
김태구 기자
ktae9@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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