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화와 통제 사이, 북한 경제 30년의 명암 [곽인옥 교수의 평양 시장경제 리포트]

시장화와 통제 사이, 북한 경제 30년의 명암 [곽인옥 교수의 평양 시장경제 리포트]

기사승인 2025-07-11 14:45:59 업데이트 2025-07-11 14:46:26
북한은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고난의 행군 시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는 처참한 상황에 처했다. 죽음의 공포에 휩싸인 주민들은 국가 주도의 계획 경제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이어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북한에 자생적인 시장 경제가 싹트기 시작했다. 장마당과 상점, 고급 식당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돈을 굴리는 돈주(錢主)는 부를 축적하고, 새로운 형태의 뇌물 구조가 뿌리내렸다. 국제사회의 엄격한 경제제재를 받는 북한 경제를 움직이는 것은 사회주의 사상도 계획 경제도 아니고, 자생적인 시장경제다. 그러나 대다수 북한 주민은 여전히 살벌한 독재 체제의 굴레와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다. 필자는 북한의 심장으로 불리는 평양의 경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10년간 조사를 해왔다. 탈북자 100여명을 상대로 장기간 심층면접을 하고, 각종 자료 수집을 통해 평양의 시장경제 작동 시스템을 분석했다. 폐쇄적인 북한 내부를 자세히 연구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북한의 통계자료와 탈북자들의 증언 역시 어느 정도 신뢰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조사한 북한 사회와 경제의 현실을 공유함으로써 북한 주민들이 처한 현실과 고통을 함께 느끼고 새롭게 다가올 한반도의 미래를 고민해 보자는 취지에서 연재한다.

1. 북한 경제의 30년 변화 여정


1990년대 초, 한반도의 북쪽 땅에 거대한 균열이 일었다.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권의 붕괴, 연이은 자연재해 그리고 ‘고난의 행군’으로 불린 대기근은 북한 사회의 근간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국가가 모든 것을 책임지던 배급제와 중앙집권적 계획경제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주민들은 생존을 위해 스스로 시장을 열고, 장마당을 만들며, 새로운 경제 질서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후 30년 북한 경제는 공식과 비공식, 합법과 비합법, 통제와 자율이 혼재하는 독특한 이중 구조로 진화했다. 시장화와 사유화의 물결은 주민들의 삶을 바꾸었고, 신흥 자본가와 장마당 상인들은 새로운 경제 주체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면에는 여전히 강고한 중앙당 조직부의 권력 집중, 이동의 자유 제한, 뇌물과 부담금의 일상화 그리고 허위 통계와 명령 중심의 비효율이 뿌리 깊게 남아 있다.

2. 북한 경제 30년 평가 : 북한 경제의 10가지 특징

① 시장화, 제도화, 사유화 확대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국가의 배급제와 계획경제가 붕괴되면서, 북한 전역에 공식·비공식 시장(장마당, 야시장 등)이 급속히 확산됐다. 주민들은 생존을 위해 자발적으로 시장에 참여했고, 식량·공산품·수입재 등 다양한 상품이 거래되며 시장의 기능이 확대됐다. 이 과정에서 일부 생산수단과 자본이 개인이나 가족 단위로 사유화되는 현상이 뚜렷해졌고, 신흥 자본가(돈주)들이 국영공장·기업소 등에 투자하면서 생산수단의 부분적 사유화도 진행되고 있다.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와 2014년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 등은 경영 분권, 시장가격 반영, 개인경작지 확대, 종합시장 도입 등 제도적 변화를 통해 시장화 흐름을 공식적으로 뒷받침했다. 그러나 여전히 계획경제와 시장이 혼재하고, 합법과 비합법 영역의 경계가 모호한 이중경제 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전체적으로 북한의 시장화와 사유화는 주민 경제생활의 핵심이 되었으며, 국가도 이를 부분적으로 인정하고 제도화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② 공장‧기업소 가동률 저조

북한의 전체 공장‧기업소 가동률은 김정은 집권 이후 일부 개선이 있었으나 여전히 10% 미만으로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경공업, 특권기관, 외부 투자 유입 기업 등 일부 분야의 가동률은 상대적으로 높지만, 중공업·광업 등 대다수 기업소는 심각한 침체 상태를 보이고 있다. 저조한 가동률의 주요 원인으로는 다음과 같다.

▶국제 제재로 인한 자금 및 부품, 원자재 수급난

▶만성적인 전력 부족

▶원자재 공급의 불안정

▶설비 노후화와 기술 낙후

▶내부 자금 및 투자 부족

이러한 구조적 문제로 인해 많은 기업소가 하루 6시간 미만만 가동되거나 아예 멈춰선 경우도 많다. 일부는 명목상으로만 운영되고 실제 생산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경공업 및 외부 투자 유입 기업은 상대적으로 가동률이 높고, 일부 시장화·투자 유입 효과로 개선된 사례가 있다. 중공업·광업 등 기간산업은 여전히 심각한 침체와 낮은 가동률 지속되고 있다.

③ 총체적인 경제난 미해결

1990년대 대규모 식량난과 경제위기 이후 북한은 국가 경제의 완전한 회복에 실패했다. 이 시기 고난의 행군으로 불리는 극심한 경제난과 식량난이 발생했으며, 이는 김일성 사망, 자연재해, 사회주의권 붕괴 등 복합적 요인에 기인했다.

이후에도 생산, 유통, 에너지, 사회 인프라 등 전반에 걸쳐 구조적 난관이 지속되고 있다. 북한은 국제적 고립과 내부 자원의 한계로 인해 경제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으며, 개혁·개방을 체제 위협으로 간주해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특히 식량난은 1990년대 후반 이후에도 반복적으로 심화되어, 수백만 명의 주민이 기아에 시달리고 국가 배급량이 급감하는 등 사회 전반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1년에 항상 150만 톤의 식량이 필요한 상황이다.

결국 북한 경제는 구조적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 채, 만성적인 부족과 불안정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④ 국내외 이동 통제 제한

모든 주민은 거주지를 벗어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때 반드시 여행증(여행허가증)을 받아야 한다. 여행증은 지역 인민위원회에서 발급하며, 목적지에 도착하면 다시 신고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숙박도 등록해야 하며, 보안서에도 신고해야 한다.

여행증 없이 이동하다 적발되면 처벌을 받을 수 있다. 평양 등 일부 특권층을 제외하면, 일반 주민은 지역 간 이동조차 자유롭지 않다. 국경 지역은 국가안전보위부, 인민보안부, 조선인민군이 삼엄하게 통제한다. 탈북 시도자는 총격까지 받을 수 있으며, 국경에는 철조망, 감시카메라, 지뢰, 장벽 등이 설치되어 있다.

여권은 외교관, 무역 관련자 등 극소수 특권층에게만 발급되며, 일반 주민은 해외여행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인민반(주민반) 등 지역 단위 조직을 통해 주민 상호 감시가 이루어지며, 탈북이나 무단 이동을 신고하면 포상금이 지급되는 제도도 도입되어 있다. 국가와 당 조직이 주민의 모든 이동과 거주를 실시간으로 감시·통제한다.

이처럼 북한의 이동 및 여권 제한은 법적, 제도적, 물리적, 사회적 감시 체계를 총동원하여 주민의 자유를 극도로 제한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⑤ 뇌물의 보편화와 증가 추세

2012년 이후 뇌물 제공 경험자 비율이 24.2%에서 48.3%로 약 2배 증가했으며, 2016~2020년에는 54.4%에 달해 절반을 넘었다. 주민 월 소득의 30% 이상을 수탈당한다는 응답이 전체의 37.1%였으며, 김정은 집권 후 이 비율은 41.4%로 더욱 악화되었다. 2023년 뇌물위험지수에서 북한은 194개국 중 194위(100점 만점에 92점)를 기록하며 4년 연속 최하위를 차지했다. 정부·공공 부문 전반에서 뇌물 기대가 극심하다.

공식 허가 절차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 뇌물이 대체 수단으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양정사업소 수매지도원 자리 확보를 위한 뇌물 비용이 2023년 한 해에만 2000달러 인상되었다. 직책 매매가 관행화되어 ‘뇌물로 자리를 사면 평생 먹고살 걱정이 없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관료 체계가 와해되면서 월급 체계가 무너졌고, 권력자는 생계유지를 위해 뇌물을 요구한다. 특히 상부 간부들은 직접 간부들에게 뇌물을 요구하며, 이는 하부 계층으로 전파된다. 사법 기관(보위부·경찰)도 권한을 이용해 주민을 착취하며, 뇌물은 ‘생활화’되어 법적 처벌 회피 수단으로 활용된다.

결국 북한에서 뇌물은 공식 시스템의 실패를 메우는 ‘보이지 않는 세금’으로 기능하며, 주민의 생존과 관료의 지위 유지를 위한 필수 장치로 자리 잡았다. 이는 경제 회복을 가로막는 핵심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⑥ 공식 직업으로 생계 불가

국가에서 지급하는 공식 임금만(월급 2000~5000원)으로는 생계가 불가능해 대부분 주민이 장마당 등 비공식 경제활동(장사, 부업)에 의존한다. 명목상 실업은 없으나 사실상 공식적 실업 상태가 만연하다. 생계 불가능한 공식 임금: 국가 공식 직업의 월급은 생계비를 충당하지 못해, 실제 수입의 78%가 비공식 경제활동에서 발생한다. 김정은 집권기인 2023년 10월에 10~20배 인상된 임금도 지급 불안정성과 지역별 격차로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통계상 실업률은 0%에 가깝지만, 20~59세 인구 중 실제 생산 활동에 참여하는 비율은 31~62%에 불과하다. 특히 평양 외 지역에서는 공식 고용 인구의 25~57%가 실업 상태이다.

주민들은 식량, 의약품 등 필수품을 공식 배급이 아닌 장마당을 통해 구매한다. 이 시장은 1990년대 대기근 이후 생존 메커니즘으로 정착했으며, 현재는 반체제적 요소로 간주되면서도 정부가 사회 안정을 위해 묵인하는 이중적 구조를 보인다. 31.4%의 주민이 공식 직장에 출근하면서도 동시에 부업(가내수공업, 소규모 무역 등)을 병행한다. 공식 직장은 체제 유지를 위한 명목상 출석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결국 북한의 노동 시장은 ‘공식적 고용 → 비공식적 생계’라는 이중 구조로 운영되며, 이는 국가 경제 시스템의 근본적 실패를 반영한다.

⑦ 세금 및 각종 부담금 강제 징수와 경제적 부담

세금(조세)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일반 재정수입을 위해 국민이나 주민에게 무상·강제적으로 징수하는 금전적 의무이다. 부담금은 특정 공익사업의 경비 충당을 목적으로, 그 사업과 밀접하게 관련된 자에게 법률에 근거해 부과하는 조세 외의 금전지급의무이다. 예를 들어, 환경부담금이나 폐기물처분부담금 등이 있다.

세금과 부담금 모두 법률에 근거해 강제로 징수된다. 납부하지 않을 경우 강제징수 절차가 진행될 수 있다. 또한 국가가 다양한 명목(사회적 과제, 애국헌납 등)으로 세금이나 부담금을 부과하면, 주민과 기업의 경제적 부담이 커진다. 특히 부담금의 경우, 동일한 대상에 대해 이중으로 부과될 경우 기업의 비용 상승과 주민 부담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부담금이 기업에 전가되면, 그 부담이 다시 주민에게 전가되는 구조가 발생할 수 있다.

국가의 세금 및 각종 부담금의 강제 징수는 법적 근거 아래 이루어지며, 이는 주민과 기업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


⑧ 중앙당 조직부의 권력 집중과 사회 장악

북한의 중앙당 조직부(조직지도부)는 조선로동당 내에서 가장 강력한 권한을 가진 핵심 부서로, 인사, 조직생활 지도, 감시·통제 등 모든 권한을 독점하며 사회 전반을 장악한다. 조직지도부는 당원 등록, 정책 검열, 생활 지도 등 다양한 하위 부서를 두고, 당원 및 간부들의 이념적 충성과 정치적 신뢰를 철저히 관리한다.

특히, 조직지도부는 당·정·군을 아우르는 실질적 권력의 중심으로, 북한 사회의 모든 정치·경제·사회·문화 활동을 통제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로 인해 북한의 모든 조직과 기업 경영에서도 정치 관료와 기술 관료로 이원화된 전통적 지배구조가 유지되며,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가 확고히 작동한다.

결과적으로 중앙당 조직부의 권력 집중은 북한 체제의 안정성과 지속성, 그리고 사회 전반에 대한 강력한 통제의 근간이 되고 있다.


⑨ 통계 오류 및 허위보고의 실태

북한은 정치적 목적에 따라 통계를 조작해 국제기구나 외부에 제출하는 경우가 많으며, 공식 발표 통계는 부정기적이고 과대·과소 발표가 반복된다.

지방 단위의 인력 부족, 통계 조작, 허위신고, 집계 누락 등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예를 들어 인구통계에서 남성 인구의 집단 누락, 사망률 과소보고 등이 대표적이다.

내부적으로도 허위·과장 보고가 만연해 최고지도자조차 현장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김정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가혹한 처벌이 두려워 일선 간부들이 허위보고를 올리는 현상이 반복된다.

이로 인해 실제 경제난이나 식량난 등 현장의 실상을 지도부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

⑩ 최고지도자 명령 중심의 비효율적 경제운영

경제운영은 중앙집권적 계획명령경제 체제로, 최고지도자의 지시가 곧 정책이 되고, 기업체도 당 조직의 지도 아래 국가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한다.

실적 과시와 보여주기식 사업이 만연해 실질적 성과보다 정치적 성과가 우선시된다. 이는 사업의 실효성이나 경제적 효율성보다 지도자의 지시 이행 여부와 형식적 성과에 집중하게 만든다.

이러한 구조는 자원의 비효율적 배분, 중복투자, 현장 실상과 동떨어진 계획 수립 등 심각한 비효율을 초래한다.

결국 북한 경제는 최고지도자 명령 중심의 경직된 체계로 인해 실질적 발전보다 정치적 과시와 충성 경쟁에 치우치는 구조적 한계를 보인다.

3. 시장화의 제도적 정착 등 실질적 변화 필요

북한 경제의 지난 30년은 ‘생존’과 ‘통제’라는 두 단어로 집약될 수 있다. 주민들은 국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장마당을 만들고, 뇌물과 부업, 비공식 거래를 통해 새로운 삶의 방식을 개척해 왔다. 시장화와 사유화는 더 이상 단순한 생존 전략이 아니라, 북한 사회를 움직이는 실질적 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이 변화의 이면에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숙제가 남아 있다. 중앙당 조직부의 절대 권력, 최고지도자 명령 중심의 경직된 경제 운영, 이동의 자유 제한, 뇌물과 부담금의 만연, 그리고 허위 통계와 실상 왜곡은 북한 경제의 ‘성장’이 아닌 ‘버티기’의 본질을 드러낸다. 공식 임금만으로는 생계가 불가능하고, 공식 통계로는 현실을 알 수 없는 사회—이것이 오늘날 북한 경제의 자화상이다.

앞으로 북한 경제가 진정한 도약을 이루기 위해서는, 단순한 시장 확대를 넘어 제도적 개혁과 권력 분산, 그리고 주민의 자율성과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변화가 필요하다. 장마당의 활력이 체제의 벽을 넘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될 때, 비로소 북한 경제는 ‘생존’에서 ‘성장’으로, ‘통제’에서 ‘자율’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북한 경제의 미래는 아직 쓰이지 않은 백지와도 같다. 변화의 가능성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 방향과 속도는 체제 내부의 의지와 외부 환경, 그리고 주민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의 중요한 변수로서, 북한 경제의 다음 30년을 우리는 더욱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북한의 장마당과 골목, 공장과 논밭에서는 작은 변화의 씨앗이 자라고 있다. 그 씨앗이 언젠가 꽃을 피울 수 있을지, 그 답은 곧 다가올 미래가 말해줄 것이다.

곽인옥 교수
inokkwak@hanmail.net
곽인옥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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