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동차보험 표준약관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금융당국이 ‘연착륙’ 방안을 내놓았다. 보상 과정에서 정품 대신 품질인증부품 사용을 늘리는 데 소비자 반발이 계속된 영향이다. 당국은 신차와 주요 부품을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고 제도를 단계적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금융감독원은 5일 자동차보험 수리 시 품질인증부품 사용을 활성화하기 위한 연착륙 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조치는 오는 16일부터 적용되는 자동차보험 표준약관 개정의 후속 대응이다.
앞서 금융당국은 지난해 2월 자동차관리법 개정으로 정품(OEM)과 품질인증 대체 부품이 법적으로 동등한 수준으로 인정되자, 이를 반영한 약관 개정을 추진해왔다. 개정안은 자동차 수리 시 소비자가 완성차 제조사가 제공하는 ‘순정부품(OEM)’ 외에도 한국자동차부품협회(KAPA)의 인증을 받은 대체 부품(품질인증부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기본 구조를 바꾸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같은 조치는 고가의 OEM 부품 위주의 수리 관행으로 인해 높아진 자동차보험 손해율 구조를 개선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대물배상 수리비는 약 4조3000억원이며, 이 중 절반이 부품 비용으로 집계됐다. 천지연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대물·자차 보험의 손해액 대부분은 차량 수리비이며, 부품비가 큰 폭으로 증가하면서 전체 손해율 상승을 견인했다”고 분석했다.
실제 품질인증 부품은 OEM 부품보다 약 35~40% 저렴해, 보험업계는 해당 부품 사용이 확대되면 수리비 부담이 줄고 보험료 인하로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개정안이 공개되면서 소비자들은 거센 반발을 이어갔다. 보다 가격이 저렴한 품질인증 부품 사용이 사실상 강제되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른 것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현재 정품 대신 대체 부품 선택 시 부품비 25%를 환급해주는 자동차보험 특약은 폐지되며, 소비자가 OEM 부품을 사용하려면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이에 반발 여론이 확산되면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약관 변경 철회를 요구하는 글이 잇따라 올라왔고, 이 중 한 청원은 16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기도 했다.
논란이 국회로까지 번지는 등 파장이 확산되면서 금융당국은 사실상 한발 물러선 조치를 내놨다. 소비자 선택권을 보장하고 제도를 단계적으로 시행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우선 소비자가 수리 시 OEM 부품을 원할 경우 무료로 자동 가입되는 특약을 통해 이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이 특약은 소비자 인식 개선과 부품 수급 안정이 이뤄질 때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된다.
또 시세 하락 우려가 큰 출고 5년 이내 신차는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현재 전체 차량 중 약 30.6%가 이 기준에 해당한다. 이와 함께 브레이크, 조향장치, 휠 등 주행 안전성과 직결된 주요 부품도 품질인증 부품 사용 대상에서 빠졌다. 대신 범퍼, 펜더, 보닛 등 외장 부품부터 우선 적용하고 향후 소비자 인식 변화에 따라 적용 범위를 조정할 방침이다.
금감원은 “소비자의 부품 선택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하고, 품질인증 부품에 대한 신뢰도 확보와 수급 안정 등을 통해 제도 정착을 유도할 계획"이라며 "품질인증 부품의 인증 절차와 관리·감독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보험 보상 대상이 되는 품질 인증 대체 부품은 ‘한국자동차부품협회(KAPA)’가 인증한 제품에 한정되는데, 재고 자체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한 자동차 부품업체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대체 부품으로 커버할 수 있는 품목이 거의 없어 정품을 써야 한다”며 “자동차 종류가 워낙 다양하고, KAPA가 갖고 있는 부품이 많지 않기 때문에 정책 시행이 가능할지가 의문”이라고 말했다. 또 “정품 부품을 쓰지 않으면 제조사 서비스센터에서는 A/S 보증도 불가한 게 현실인데 이런 문제를 정부가 어떻게 해결할지도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부품 수급 등 실제 적용에 한계가 있다는 점은 인지하고 있다”면서도 “다만 고비용 수리 구조 개선을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기존 문제가 반복될 수밖에 없으며, 소비자 선택권 등 우려되는 부분도 최대한 반영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