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아연이 연이은 미국 투자 행보를 보이며 현지 사업영역 확대에 적극 나서고 있다. 102분기 연속 영업이익 흑자에서 비롯된 탄탄한 재무구조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이 과정에서 투자회사의 실적 리스크, 최대주주 영풍(MBK파트너스 포함)과의 사법 리스크 등 넘어야 할 산도 많은 상황이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지난달 미국 중간 지주회사 페달포인트 홀딩스를 통해 미국의 IT 자산관리업체 MDSi(Management Data Systems International)와 이 회사의 자회사 TSG(TechSource Global)를 9935만2659달러(약 1378억원)에 인수했다.
1990년 설립된 MDSi는 네트워크 장비 재판매와 IT 자산 폐기(IT Asset Disposition) 전문 기업이다. 2020~2023년 연평균 매출 성장률은 27%에 달하며, 지난해 EBITDA(감각상각비를 더한 영업이익)는 11.1% 수준이다.
고려아연은 미국 전자폐기물에서 동을 추출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이번 인수를 추진했다. 기존 전통적인 동정광 제련 방식을 넘어 전자폐기물을 통한 자원순환 사업을 확대하려는 것이다.
페달포인트 홀딩스를 거점으로, 고려아연은 앞서 2022년 미 전자폐기물 리사이클링 기업 이그니오홀딩스를, 2024년에는 스크랩 메탈 원료 트레이딩 기업 캐터맨을 각각 5800억원, 730억원에 인수한 바 있다.
이그니오는 전자폐기물에서 금·은·동·팔라듐 등 유가금속으로 제련될 수 있는 중간재를 추출하는 독자 기술을 보유한 도시 광산 기업이며, 캐터맨은 연간 30만톤가량의 동·알루미늄·철 등 금속 스크랩 원료를 거래하는 기업이다. 이번 MDSi 인수를 통해 미국 자원순환 사업의 밸류체인을 대폭 강화했다는 분석이다.
미 자원순환 사업뿐만 아니라 고려아연은 캐나다 해저광물 채굴기업이자 미국 나스닥 상장사인 더메탈컴퍼니(TMC) 지분을 인수하며 북미 자원시장 원료 확보의 초석을 마련했다. TMC 지분 약 5%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계약 전 마지막 날 종가 기준 약 8500만달러(약 1165억원)의 자금을 투입했으며, 향후 TMC의 시장 가치와 성장성이 확인될 경우 일정가격에서 주식을 추가 매입할 권리까지 계약 조건에 반영했다.
TMC는 심해에서 니켈과 코발트, 동(구리), 망간 등을 함유한 망간단괴(poly‑metallic nodules, 폴리메탈릭 노듈) 채광을 준비 중이다. 이를 통해 전기차, 재생에너지, 첨단 산업에 쓰이는 핵심 소재들을 확보하고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고려아연은 이번 투자로 향후 TMC가 채취한 자원을 국내외에서 제련하는 등 사업적 연계와 협력도 강화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다만 투자 초기에 해당하는 현시점 각종 리스크도 상존한다.
앞서 아이스버그 리서치(Iceberg Research)는 보고서·논평을 통해 “TMC가 국제적으로 합법적 채굴 허가를 부여하는 유일한 기관인 국제해저기구(ISA)의 승인을 우회하고, 미국 국내법(DSHMRA)을 통해 독자적 채굴을 추진하고 있어 유엔해양법협약(UNCLOS)에 명시된 국제법적 규정을 위반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고려아연이 TMC에 거액의 투자를 한 것은 매우 무모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후 ISA는 최근 자메이카에서 열린 제30차 연례 총회에서 산하 법률기술위원회를 통해 TMC를 국제법 위반 조사 대상으로 선정했다. 관련 소식이 알려지자 고려아연의 투자 시점이었던 지난달 24일 주당 8.6달러를 웃돌며 52주 최고가까지 치솟았던 TMC의 주가는, 지난 18일(현지시간) 종가 기준 4.79달러까지 하락하며 3주 새 44% 감소했다.
해저광물사업 특성상 실적이 가시화하는 데 오랜 기간이 소요된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회사가 여전히 상업생산 전 단계에 있어 매출이 없는 데다, 분기 중 운영현금만 1060만달러(약 140억원)를 소진한 점도 우려 대상이다. 올해 2분기 주당순손실(EPS)은 -0.20달러를 기록하며 전년 같은 기간 -0.06달러였던 손실이 3배 이상 확대됐다.
앞서 이그니오 투자와 관련해서도 사법 리스크를 안고 가는 상황이다. 고려아연의 최대주주인 영풍은 지난 2월 4005억원 규모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하며 “고려아연 이사회가 이그니오 인수를 추진하면서 정당한 실사 없이 고평가된 가격에 거래를 성사시켰고, 이로 인해 회사에 막대한 손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해 왔다.
영풍 측은 당시 이그니오가 설립 1년 남짓에 불과하고 완전자본잠식 상태였으며, 인수 당시 연 매출이 30억원 수준에 불과했던 점을 들어 투자 적정성 검토와 리스크 평가가 부실했고, 이는 선관주의의무 위반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소송이 양측이 현재 진행 중인 경영권 분쟁과 무관하다고 볼 수 없으나, 재판 결과에 따라 고려아연 측에 변수가 될 가능성도 존재하는 셈이다.
이와 관련해 고려아연 측은 “이그니오는 당사가 추진하는 ‘트로이카 드라이브’ 전략의 한 축인 자원순환 사업을 뒷받침하는 거점으로, 최근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구리 관세 부과 방침과 맞물려 구리 시장가격이 급등하면서 공급망 안정화와 원료 확보 관점에서 그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영풍 측은 당사의 기업가치를 깎아내리는 데만 몰두하고 있다”며 “향후 이의신청(Motion to Quash) 및 효력정지 신청 등 법적 대응에 나설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고려아연 측은 TMC 투자와 관련한 지적에 대해선 “정당하고 적법하게 이뤄진 경영 활동의 본질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급변하는 국제정세와 자원 무기화 등에 대응하는 당사의 노력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잘못된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장기 핵심 원료 확보와 전략 광물 공급망 강화, 미국 시장 확대, 민간 차원의 한미 경제안보 협력 강화 등 다각적인 목적을 갖고 추진된 전략적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