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화장품 업계의 주도권이 바뀌고 있다. 오랫동안 양강 체제를 형성했던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을 제치고, 뷰티테크 기업 에이피알이 업계 시가총액 1위에 올랐다. 단순한 실적 반등이 아니라, K-뷰티 패러다임 자체가 화장품에서 ‘뷰티 디바이스+테크’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에이피알은 2분기 연결 기준 매출 3277억원, 영업이익 846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대비 111%, 영업이익은 202% 증가했다. 영업이익률 25.8%는 업계 평균(5% 안팎)을 크게 상회하는 수준이다. 같은 기간 아모레퍼시픽(737억원), LG생활건강(548억원)의 영업이익을 합친 것보다 많다. 이 같은 성과에 힘입어 주가는 한 달 새 30% 뛰었고, 시총은 아모레퍼시픽을 앞질러 업계 정상을 차지했다.
에이피알 성장세의 중심에는 뷰티 디바이스가 있다. 고주파·미세전류 기술을 적용한 ‘메디큐브 에이지알’ 시리즈는 누적 판매량 400만대를 돌파하며 글로벌 홈케어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화장품에 디바이스를 결합한 ‘스마트 홈케어’ 모델이 에이피알의 차별화된 경쟁력으로 자리 잡은 모습이다.
또한 에이피알은 R&D 센터와 자체 디바이스 생산 공장(에이피알팩토리)을 통해 제품 개발부터 제조, 판매까지 밸류체인을 내재화했다. ‘제품력+디바이스’ 융합에 수직계열화까지 더한 모델은 기존 화장품 기업이 쉽게 모방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평가다.
한 업계 관계자는 “에이피알의 높은 영업이익률은 뷰티 디바이스와 화장품을 결합한 독자적 모델 덕분”이라며 “해외 매출 비중 확대가 이어지는 만큼 글로벌 톱티어 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해외 성과는 더욱 두드러진다. 올해 2분기 국가별 전년 대비 매출 성장률은 미국 285.8%, 일본 366.1%에 달한다. 올해 하반기에는 미국 대표 뷰티 리테일러 ULTA 입점이 예정돼 있고, 일본·유럽 시장 확대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해외 법인 및 파트너십 강화와 함께, 의료기기급 디바이스 출시를 예고하며 헬스케어 시장까지 확장을 시도 중이다. 이는 에이피알이 단순한 화장품 제조업체가 아닌 헬스 뷰티테크 기업으로 전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상장 이후 18개월 만에 약 2200억원을 주주환원에 투입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최근에는 300억 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을 단행했고, 첫 대규모 배당도 실시했다. 적극적인 환원 기조는 통상 주가 상승으로 이어져, 투자자 신뢰를 높이는 요인으로 평가된다.
경영진 보상 구조도 시장의 관심을 끈다. 김병훈 대표의 연봉은 10억원 수준에 불과하지만 배당 수익만 43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임원진의 경우 스톡옵션 행사가 더해지며 보수가 크게 늘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정재훈 전무와 이민경 전무는 상반기 급여·상여 약 4억원에 스톡옵션 행사 이익이 더해지며 각각 172억7800만원, 171억3500만원을 수령했다. 이는 같은 기간 보수 163억원을 받은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을 웃도는 액수다. 스톡옵션 성격상 일시적이지만, 신흥기업 임원이 전통 대기업 총수보다 많은 보수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상징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고속 성장에도 불구하고 리스크는 존재한다. 뷰티 디바이스는 의료기기와의 경계가 아직 불분명해 제도권 리스크에 노출돼 있고, 글로벌 경쟁 심화도 불가피하다. 또한 아모레퍼시픽·LG생활건강처럼 장기적으로 브랜드 포트폴리오와 유통망을 안정적으로 구축할 수 있을지도 시험대다. 빠른 매출 성장이 곧바로 브랜드 충성도로 이어져야 기업가치의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략적 균형이 요구된다.
결국 시장의 관심은 에이피알이 ‘뷰티테크 1위’라는 타이틀을 일시적 이벤트가 아니라 K-뷰티 패러다임 전환의 상징으로 만들어낼 수 있느냐다. 디바이스 중심의 독자적 모델이 글로벌 무대에서 장기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 그리고 주주환원·보상 구조가 시장 신뢰를 유지할 수 있을지가 향후 평가의 기준이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