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패션 시장이 침체를 겪는 와중에도 유니클로의 성장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패스트리테일링의 지난해(2023년 9월~2024년 8월) 매출은 3조4005억엔(한화 약 32조2700억원)으로 전년보다 9.6% 증가했다. 영업이익 역시 5511억엔(약 5조2300억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본 내 매출이 처음으로 1조엔(약 9조3000억원)을 돌파했고, 북미·유럽·동남아·한국 등 해외 매장도 고른 성장세를 이어갔다. 특히 미국 시장 매출은 24.5% 증가하며 점포 수도 20% 이상 늘었다.
국내 실적도 빠르게 회복 중이다. 에프알엘코리아(유니클로 한국 법인)의 2024 회계연도 매출은 1조602억원으로 전년 대비 15.0% 늘었다. 영업이익은 1489억원으로 5.4% 증가했다. 불매운동 여파로 급격히 매출이 줄었던 지난 2019년 이후 6년 만에 연매출 1조원을 다시 회복한 것이다. 업계는 전 세계적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된 상황에서 비싸지 않으면서 품질이 뛰어난 SPA 브랜드가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는 분석한다. 명품 브랜드들이 이미지 훼손을 우려해 가격 조정에 나서지 못하는 사이, 유니클로는 합리적인 가격과 꾸준한 품질로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유니클로의 전략은 기존 패션 브랜드와 확연히 다르다. 트렌드 경쟁 대신 ‘라이프웨어(LifeWear)’를 내세우며 패션을 생활 필수품으로 재정의했다. 히트텍·에어리즘·울트라라이트다운처럼 유행에 크게 좌우되지 않는 기능성 제품군은 매년 꾸준히 소비자의 선택을 받고 있다. 이는 경기 불황기에도 안정적으로 매출을 유지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핵심 동력이다.
제조 방식에서도 독특함이 드러난다. 유니클로는 자체 공장을 보유하지 않는다. 대신 100% 협력업체를 통해 제품을 생산하면서도 대량 발주와 전량 매입을 조건으로 품질 관리에 깊숙이 개입한다. 협력사가 밀집한 중국 상하이, 베트남 호찌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등에는 별도의 생산 사무소를 운영하고, 소비자 불만이 발생하면 담당 직원이나 장인이 직접 공장으로 달려가 문제를 해결한다. OEM 구조를 활용하면서도 품질과 납기, 가격, 공급망 전반을 통제하는 시스템을 구축한 셈이다.

이러한 공급망 관리 전략은 단순한 디자인과 결합해 높은 생산 효율을 만들어낸다. 유행에 흔들리지 않는 제품 기획을 통해 소품종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고, 이를 통해 단가를 낮추면서 재고 리스크를 줄인다. 제품 기획, 수요 예측, 생산 관리, 물류, 매장 운영까지 전 과정이 하나의 유기적인 시스템으로 연결돼 있는 것도 강점이다. 실제로 유니클로는 판매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생산량과 재고를 유연하게 조절하고, 각 매장의 판매 속도를 반영해 물류를 조정한다. 이러한 데이터 기반 운영은 패션 업계의 고질적인 문제인 재고 부담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수익성을 극대화한다.
유니클로가 브랜드 충성도를 높이기 위해 활용하는 전략은 또 하나의 전략은 ‘협업’이다. 단순한 기능성과 베이직만으로는 장기 고객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유니클로는 매 시즌 다양한 브랜드·디자이너와 협업하며 소비자 경험을 확장해왔다. ‘UNIQLO and JW ANDERSON’ 라인은 영국 전통의 클래식 감성을 일상복으로 풀어내며 패션 감도를 높였고, ‘UNIQLO and NEEDLES’는 스트리트 무드를 결합해 젊은 세대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아티스틱한 감각의 ‘Uniqlo U’, 트렌드와 실용성을 결합한 ‘UNIQLO : C’, 프렌치 감성을 강조한 ‘UNIQLO and COMPTOIR DES COTONNIERS’ 등도 각기 다른 소비자 취향을 세분화하며 충성 고객층을 다층적으로 형성하고 있다. 이 협업들은 단순히 한정판 효과에 그치지 않고 유니클로의 브랜드 철학인 ‘라이프웨어’와 자연스럽게 연결돼 있다. 소비자는 합리적인 가격과 기능성에 만족하면서도 취향 반영과 개성을 경험하게 되고, 이는 재구매와 장기 충성으로 이어진다. 기본에 충실한 브랜드가 패션성을 확보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과 소비 위축이 지속되는 상황에서도 유니클로는 공급망, 가격, 재고, 브랜딩까지 모든 축을 정교하게 관리하며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단기 트렌드에 흔들리지 않는 제품 전략과 운영 효율화, 그리고 협업을 통한 브랜드 확장력이 맞물리면서 향후에도 글로벌 패션 시장에서 존재감을 더욱 확대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다만 ‘패스트패션’ 기업이라는 본질적 한계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환경 이슈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는 가운데, 속도와 효율성에 초점을 맞춰온 기존 모델이 장기적으로 어떤 변화를 맞을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