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문화예술진흥원 사태가 단순히 원장 개인의 사퇴로 봉합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조직 내 갈등, 인사 전횡, 불합리한 예산 집행 등 문제가 장기간 누적돼 왔지만 대구시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게세다.
특히 김정기 대구시장 권한대행 체제에서 드러난 늑장 대응은 행정의 무책임성을 여실히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 “대구시, 관리·감독 부재”
대구시의회 문화복지위원회는 20일 “대구문화예술정책의 컨트롤타워가 시민 앞에 신뢰 위기를 자초했다”며 강하게 규탄했다. 의회는 수차례 운영상 문제와 구조적 한계를 지적하며 시정조치를 요구했지만, 시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고 결국 파국을 맞았다고 주장했다.
논란의 핵심은 관리·감독 실패라는 것이다. 박순태 진흥원장이 특정 인물 승진을 위해 내규 변경을 시도하고 공개채용에서 마음에 둔 인물이 탈락하자 ‘적격자 없음’ 처리를 지시했다는 의혹이 지난달 제기됐다.
대구시는 언론 보도가 잇따른 뒤에야 감사에 착수했고, 그마저도 사후 대응에 그쳤다. 시의회가 행정사무감사와 업무보고, 현장 조사 등을 통해 수차례 경고했음에도 사태가 수개월간 방치된 것은 시정 책임자의 명백한 직무유기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특히, 대구시정을 이끌고 있는 김정기 권한대행이 인지한 이후 진흥원의 파행은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감독기관이 상시 모니터링과 선제 점검을 제대로 했더라면, 원장 사퇴와 시민 신뢰 추락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일부 직원은 사실상 ‘무제한 시간외 근무’를 통해 연간 2000만원에 가까운 수당을 챙겼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이는 단순히 기관 내부의 통제 실패에 그치지 않고 감독기관인 대구시가 기본적인 관리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인사 문제를 넘어, 대구시의 관리·감독 시스템 전반이 붕괴됐음을 보여준다. 인사 전횡, 예산 집행 부실, 조직 통합의 실패가 연쇄적으로 드러났지만, 대구시는 진상 규명과 책임자 문책, 구조 개편의 구체적 청사진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은 최근 논평을 내고 “시민들은 문화 행정의 공정성에 대한 회의를 품게 됐다”고 비판했다.
◆ “원장 사퇴로 끝날 일 아냐”
결국 박 원장은 19일 사표가 수리됐고 시는 내년 6월 지방선거까지 직무대행 체제를 예고했다. 컨트롤타워 공백이 최소 9개월 이어질 수 있어 사업·예산 집행과 현장 지원의 지연 우려가 커진다. 시는 “지방선거 후 공모” 방침만 밝힌 상태다.
시민들이 요구하는 것은 원장 한 사람의 퇴진이 아니다. 컨트롤타워로서 대구시가 어떻게 잘못된 관리 체계를 고치고, 무너진 신뢰를 회복할지에 대한 분명한 답변이다. 김 권한대행과 대구시가 이를 외면한다면, 이번 사태는 단순한 기관의 위기를 넘어 대구 문화예술 행정 전반의 신뢰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대구시의회는 “연간 약 1000억원의 예산을 집행하며 지역 문화예술인의 생계와 창작 기반을 책임지는 핵심 기관에서 벌어진 이번 사태는 단순한 내부 문제가 아니라 시민 신뢰를 무너뜨리고 대구 문화예술 발전을 가로막는 심각한 사안”이라고 못박았다.
박창석 문화복지위원장은 “대구시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의 경영 실패와 이와 관련한 혼란에 대한 책임은 대구시에 있다”며 “수차례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조직개편 이후의 혼란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무너진 신뢰를 다시 회복하기 위한 대구시의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3년 전 돌아보니…정치권·시민사회 “우려·걱정”
시간을 2022년 7월로 돌려보면, 당시 홍준표 시장 취임 직후 추진된 공공기관 통폐합은 이미 우려의 목소리를 불러왔다.
정의당 대구시당은 “독불장군 식으로 밀어붙이기만 하는 데는 공감도 동의도 할 수 없다”며 “통폐합 및 혁신이 필요한 것도 있지만 좀 더 신중하게 추진해야할 사안도 있다”고 우려했다.
대구참여연대도 “공공기관 혁신 대안 마련을 위한 의견수렴 없이 진행돼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고,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은 “대구시 공공기관 통폐합은 이렇게 졸속으로 처리해도 되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대구공무원노조는 “좋은 말로 구조조정이지 사실상 노동자에 대한 쉬운 해고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이 조직 저 부서를 대충 옮기고 묶은 명분 없는 졸작 개혁”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결국, 홍 전 시장이 문화·예술·관광 6개 단체를 묶어 통합했지만, 조직 간 동질성이 결여돼 갈등만 키웠다는 지적이다. 인사권이 경영지원부장에게 집중되도록 제도가 개편된 점도 문제를 악화시켰다. 통합 효과를 내겠다며 투입된 예산은 사실상 허공에 흩날렸고 오히려 조직 운영의 비효율성과 파행만 키운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