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초과학연구원(IBS)이 산소를 운반하는 헤모글로빈의 퇴행성 뇌질환 치료 기능을 발견했다.
IBS 이창준 인지및사회성연구단장과 KIST 박기덕 뇌과학연구소장 연구팀은 뇌 속 별세포에 존재하는 헤모글로빈의 항산화 기능을 규명하고, 이를 극대화하는 저분자 화합물을 개발했다.
또 이를 토대로 연구팀은 퇴행성 뇌신경질환, 노화, 자가면역질환 등 다양한 질환의 동물 모델에서 치료 효과를 입증했다.
루게릭병, 파킨슨병, 알츠하이머병 등 퇴행성 뇌신경질환과 노화 등에서 활성산소의 과도한 축적이 신경세포 손상과 사멸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에 따라 고반응성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항산화 치료제 라디칼이 개발됐지만, 라디칼은 주변 세포와 빠르게 반응해 치료제가 제대로 작용하지 못하고, 약물이 뇌까지 도달하지 못하거나 체내에서 너무 빨리 배출돼 효과를 내기 어려웠다.
게다가 작용 범위가 넓어 정상세포까지 영향을 미치는 등 부작용 우려도 컸다.
연구팀은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조절가능한 활성산소인 과산화수소에 주목했다.
특히 지난 연구에서 반응성 별세포가 과산화수소가 비정상적으로 축적돼 주변 신경세포를 손상시킨다는 사실을 밝혔던 것에 착안해 별세포 내부 항산화 체계를 정밀 분석했다.
그 결과 혈액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진 헤모글로빈이 뇌 속 별세포의 핵 안에 있는 소기관 ‘핵소체(nucleolus)’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핵소체는 세포핵 내부에 있는 소기관으로, 외부 스트레스에 반응하고 유전체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이 헤모글로빈이 과산화수소를 산소와 물로 분해하는 항산화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을 최초로 규명했다.
특히 이 기능은 퇴행성 뇌신경질환 등에서 현저히 감소했고, 이로 인해 산화 손상과 신경세포 사멸이 촉진되는 악순환 구조가 형성됐다.
연구팀은 이런 결과를 바탕으로 헤모글로빈의 항산화 활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저분자 화합물 ‘KDS12025’를 개발했다.
이 물질은 헤모글로빈 중심의 철 이온과 상호작용해 과산화수소가 보다 효과적으로 산소와 물로 전환되도록 촉진한다.
특히 뇌로 유입되는 물질을 엄격히 제한하는 혈액-뇌 장벽을 잘 통과하고, 헤모글로빈의 고유한 산소운반 기능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도 과산화수소 분해 능력을 최대 100배까지 향상시킨다.

실제 이 약물을 다양한 퇴행성 뇌신경질환 생쥐모델에 투여한 실험에서 신경세포 사멸을 효과적으로 억제하고 생존율 향상, 기억력과 운동기능 회복 등 치료효과를 확인했다.
루게릭병 모델 생쥐에서 발병 시기와 근력저하 진행 속도가 늦춰져 평균 생존 기간이 4주 이상 연장되는 효과를 보였다.
또 파킨슨병 모델에서는 회전봉에 매달려 걷는 실험에서 평균 버티는 시간이 2배 이상 늘며 정상군과 유사하게 운동 기능이 개선됐다.
이와 함께 알츠하이머병 모델에서 생쥐의 공간기억과 인지능력을 평가한 결과 기억 유지력과 학습 능력이 정상 수준에 가깝게 회복됐다.

노화 모델에서는 평균 수명이 30% 연장돼 약 2년인 일반적 생쥐 수명을 넘어 3년 이상 생존한 개체도 관찰됐다.
나아가 뇌질환뿐만 아니라 전신 염증성 질환에서도 치료 효과를 보여 자가면역질환인 류마티스 관절염 모델에서 부종과 관절 염증 지표가 크게 감소하는 것을 확인했다.
이 단장은 “이번 연구를 통해 헤모글로빈의 항산화 기능을 새롭게 규명했다”며 “외부에서 항산화제를 공급하는 기존 치료전략과 달리 우리 몸 안에 있는 자연 단백질의 기능을 조절하고 강화함으로써 질병을 치료하는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기초과학의 성과가 세포 수준의 이해를 넘어서 실제 치료 전략과 약물 개발로 이어질 수 있도록 연구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박 소장은 “KDS12025는 헤모글로빈의 과산화수소 분해 능력을 선택적으로 증폭시키는 정밀 약물로, 혈액-뇌 장벽을 효과적으로 통과하고 극소량으로도 강력한 효과를 내는 등 치료제 개발에 필요한 핵심 조건들을 충족시킨다”며 “특히 과산화수소 축적이 다양한 질환의 공통된 병리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퇴행성 뇌질환뿐 아니라 노화, 뇌졸중, 염증성 질환 등 다양한 질환에 적용 가능한 범용 치료 플랫폼으로 확장될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신호 전달 및 표적 치료(Signal Transduction and Targeted Therapy, IF=52.7, 2024 JCR)’ 22일 온라인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