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오는 28일 기준금리 결정을 앞둔 한국은행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한·미 금리차 부담은 줄었지만, 여전히 높은 수도권 집값은 추가 인하의 발목을 잡는 변수로 꼽힌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파월 의장은 미국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린 연례 경제 정책 심포지엄에서 “실업률과 노동 시장 지표가 안정돼 있어 정책 변경을 신중하게 검토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고 지난 22일(현지 시간) 밝혔다. 시장에서는 사실상 9월 기준금리 인하를 시사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파월 의장이 노선을 변경하자 위험자산 투자 심리가 되살아나면서 뉴욕 3대 주가지수는 일제히 급반등했다. 달러 강세도 누그러졌다. 같은 기간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의미하는 달러 인덱스는 종가 기준 98.62에서 97.72로 하락, 지난 6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연준의 기조 변화는 오는 28일 금통위를 앞둔 한국은행의 판단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현재 금리 수준은 연 2.5%. 금통위는 지난해 10월 이후 기준금리를 4차례에 걸쳐 총 100bp(1bp=0.01%포인트) 인하했다. 올해 들어선 2월과 5월 금리를 내렸다. 역대 최대인 2%p까지 벌어졌던 한·미 금리차는 연준의 완화적 시그널로 부담이 다소 줄었다. 금리 격차가 축소되면 외국인 투자자금 이탈에 대한 우려가 완화되고, 1300원 후반대까지 떨어진 원화값도 일부 회복 가능하다. 환율 불안은 그동안 한은의 금리 인하 결정에 걸림돌로 작용해왔다.
다만 부동산은 여전히 금리 인하의 발목을 잡는 변수다. 6·27 가계대출 억제 정책 이후 상승률이 둔화했지만 서울 아파트값은 꺾이지 않았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8월 셋째 주(18일 기준) 서울 아파트 가격은 전월 대비 0.9% 오르면서 전주 상승폭(1%)보다는 감소했다. 하지만 송파구(0.29%)·서초구(0.15%)·강남구(0.12%) 등 핵심 지역 아파트 가격은 상승세가 여전하다.
최근 한은 총재 발언에서도 경계감이 포착된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1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가계부채 증가세가 6·27 대책 이후 다소 진정되는 모습이지만 서울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높은 주택 가격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며 “추세적인 안정 여부는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8월 동결론 우세하지만 ‘깜짝 인하’ 기대도
이에 8월 동결론이 힘을 받고 있다. 김지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성장률 하방 위험에도 불구하고 8월 금통위에서는 부동산 가격 및 가계부채를 고려해 기준금리를 2.50%로 만장일치 동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결국 8월 금통위는 얼핏 보기에 매파적이겠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완화적인 부분이 많을 가능성이 높다”며 “인하가 필요한 환경이라는 것을 주지시키며 금리인하 기대감을 유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연구원도 “파월 의장은 9월 인하에 대한 분명한 신호를 보낸 데 반해 이창용 총재는 부동산시장 과열 우려를 재차 코멘트했다. 이를 감안하면 8월 인하 가능성이 낮아졌다”면서도 “깜짝 인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가운데 동결이 되더라도, 9월 금통위가 없다는 점에서 매우 비둘기파적인 메시지가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임재균 KB증권 애널리스트 역시 “과거 정부 때도 부동산 억제 정책 효과는 3~6개월 후 소멸되는 양상을 보여왔다. 정부의 가계대출 억제 대책 발표 후 이제 두 달이 지난 만큼, 정책 효과를 좀 더 확인할 필요가 있다”면서 기준금리 동결을 예상했다.
반면 경기 부진을 이유로 금리 인하가 불가피하다는 시각도 있다.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에도 기획재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8%에서 0.9%로 낮춰 잡았다. 한은·국제통화기금(IMF)의 최근 전망(0.8%)과 큰 차이가 없는 0%대 성장률 전망이다.
안예하 키움증권 연구원은 “한국은행이 오는 28일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25bp 인하할 것으로 전망한다”며 “부동산 대출 규제 시행 이후 금융안정 이슈가 다소 완화된 가운데, 수출 둔화 우려와 재정 확대 정책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정책 공조 차원에서 금리 인하가 단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10월 인하 가능성도 제기된다. 안재균 한국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추경 집행과 금리 인하가 동반될 때 정부 지출의 승수 효과 확대를 기대할 수 있는 만큼 연내 금리 인하가 꼭 필요하다”며 10월 0.25%p 인하를 점쳤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도 “9월 FOMC 금리 인하 재개, 트럼프 관세정책 등 대외 리스크 관련 요인과 국내 금융 안정 측면을 점검한 후 연내 한 차례 정도 금리를 인하할 수 있을 것”이라며 10월 인하 가능성을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