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온 오를까 늘 긴장”…‘드라벳 증후군’ 환아·가족은 여름이 두렵다

“체온 오를까 늘 긴장”…‘드라벳 증후군’ 환아·가족은 여름이 두렵다

열성 경련과 증상 유사해 ‘진단 지연’ 겪어
발작에 돌연사 겪는 아이 평균 연령 4.6세
환아 91%, 최소 한 가지 이상 동반질환·장애 보유
“발작 빈도 조절 치료 옵션 필요”

기사승인 2025-08-26 11:00:08
게티이미지뱅크

“저희 아이는 생후 7개월 무렵 처음 발작을 겪었어요. 처음에는 단순한 열성 경련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발작이 잦아지고 길어지면서 병명을 알기까지 정말 많은 병원을 전전해야 했습니다.”


최근 희귀 난치성 뇌전증 질환인 ‘드라벳 증후군’을 진단받은 아이의 어머니 이서윤(36·가명)씨는 요즘 같이 무더운 여름이 가장 두렵다고 말했다. 날씨가 조금만 더워도, 집안에서 뛰어놀기만 해도 체온이 올라가 발작이 올까 늘 긴장하게 된다. 발작이 언제 어디서든 갑자기 찾아올 수 있어 외출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늘 응급약을 들고 다니고, 아이 상태를 지켜봐야 해서 이씨의 개인 시간은 전혀 없다. 이씨는 “아이의 발작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면 저희 가족의 삶도 달라질 것”이라고 토로했다.

전국에서 폭염주의보가 이어지는 가운데 소아에게 발생하는 ‘드라벳 증후군’ 환자들의 생명에 위협이 가해지고 있다. 외부 환경 변화에 민감한 드라벳 증후군을 앓는 아이들에게 있어 무더위는 체온 상승을 유발해 발작 악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환아와 가족의 삶 전반을 개선할 수 있는 치료 옵션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의료계에 따르면 드라벳 증후군은 생후 1년 이내에 나타나는 열과 경련을 시작으로 성인기까지 관련 증상이 지속되는 소아 난치질환이다. 전 세계적으로 1~2만 명당 한 명꼴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직 국내에선 유병률 통계조차 조사된 바 없으며, 2022년에서야 극희귀질환으로 지정됐다.

드라벳 증후군은 극희귀질환인 만큼 진단 초기 과정에서부터 환자와 가족이 겪는 어려움이 적지 않다. 주요 증상인 발열과 함께 나타나는 경련 발작이 영아 시기에 흔히 나타나는 열성 경련과 유사해 구분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많은 드라벳 증후군 환자들과 보호자는 오진으로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진단 방랑’이나 진단에 수년이 걸리는 ‘진단 지연’을 경험하게 된다.

진단 지연은 경련 발작으로 인한 아이의 상태 악화와 조기 사망 위험으로 이어진다. 특히 발작이 5분 이상 혹은 30분 이상 지속되는 ‘발작 지속 상태’(SE, Status Epilepticus) 혹은 ‘발작 중 예상치 못한 돌연사’(SUDEP, Sudden Unexpected Death in Epilepsy) 등 사망 위험과 밀접한 응급증상까지 동반할 수 있다. 실제 해외 통계에 따르면, 발작 중 예상치 못한 돌연사를 겪는 아이들의 평균 연령은 4.6세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요즘 같은 여름철 고온의 날씨와 급격한 기온 변화는 소아 뇌전증 환자와 드라벳 증후군 환자의 경련 발작 가능성을 높일 수 있어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대부분의 드라벳 증후군 환자에서 나타나는 SCN1A 유전자 변이가 온도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특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드라벳 증후군으로 인한 경련 발작은 아이의 신체 발달은 물론 정신 발달 측면으로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해외 연구 사례에 따르면, 5세 이상의 드라벳 증후군 환아의 91%는 최소 한 가지 이상의 동반질환 또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 환자 중 74%는 운동 능력 손상을, 80%는 언어 장애를, 42%의 환자는 자폐증을 동반했다. 그 외에 섭식 및 소화 장애, 측만증, 충동 조절 장애, 수면 장애 등의 문제도 빈번하게 보고된다.

무엇보다 드라벳 증후군은 환자 개인의 건강 문제를 넘어 가족 전체의 삶에 악영향을 미친다. 관련 조사에 따르면, 드라벳 증후군 환자 보호자의 76%는 ‘개인 시간이 없다’고 답했다. 또 72%는 ‘간병 및 돌봄으로 경제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염미선 서울아산병원 소아신경과 교수는 “무더위가 이어지는 요즘 같은 날씨는 드라벳 증후군 환자와 가족들에게 더욱 두려운 계절일 수밖에 없다”며 “더운 여름철에는 작은 활동에도 아이의 체온이 비교적 쉽게 올라 발작 증상이 더 빈번하게 일어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환자와 보호자 모두의 부담이 커지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드라벳 증후군을 포함한 뇌전증의 발작은 환자의 건강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가족의 일상에도 깊은 흔적을 남긴다. 발작은 예기치 못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일상의 계획이 무너지고, 늘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생활이 반복되면서 삶의 균형이 크게 흔들리게 된다”면서 “그렇기에 환자와 가족 모두의 삶을 지키기 위해 발작 조절은 치료 과정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할 부분이다”라고 강조했다.

다만 드라벳 증후군 발작 조절을 위한 국내 약물 치료 환경은 열악하다. 드라벳 증후군은 근본적인 완치가 불가능한 ‘약물 불응성’ 질환으로, 발작 빈도와 발작 외 증상을 조절해 돌연사 위험을 줄이고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을 우선적인 치료 목표로 삼는다.

게다가 일부 항발작약은 증상을 악화시킬 수도 있어 국내 임상현장 내 전문의들과 환자 보호자들은 효과적인 발작 조절을 넘어 질환의 발작 빈도까지 유의미하게 낮출 수 있는 새로운 치료 옵션을 바라고 있는 상황이다. 염 교수는 “근본적인 완치가 어려운 질환 특성과 드라벳 증후군 보호자들의 극심한 돌봄 부담을 고려해서라도 발작 빈도를 보다 유의미하게 조절할 수 있는 치료 옵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경련 발작 조절에 유의미한 효과를 보이는 약물로는 ‘펜플루라민’이 꼽힌다. 연구를 통해 펜플루라민은 뇌 속 세로토닌(5-HT) 시스템과 시그마1 수용체에 동시에 작용해 신경 전달을 조절하고 발작을 억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약물은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서 드라벳 증후군 치료제로 승인돼 사용되고 있으며, 국제 가이드라인에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국내에선 아직 허가되지 않아 환자와 의료진 모두 효과적 치료에 접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염 교수는 “극희귀질환인 드라벳 증후군에 대한 인식이 더욱 높아져야 할 뿐만 아니라, 진단부터 치료까지 길고 긴 여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환자와 보호자들의 현실에 대해서 범국가적인 관심이 절실하다”고 전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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