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역사성 망각한 삼거리공원 재단장

천안 역사성 망각한 삼거리공원 재단장

난데없이 김소월·윤동주 시비 등장하고
‘능소와 박현수’ 설화 기념물은 사라져
“흥타령축제 떠나더니 정체성마저 잃어”

기사승인 2025-09-02 18:39:09 업데이트 2025-09-02 20:21:13
재개장한 천안삼거리공원에 등장한 김소월, 윤동주, 나태주 시비(오른쪽 부터).  사진=조한필 기자

김소월 시에 천안이 등장한다는 건 이번에 처음 알았다. 3년 8개월의 기나긴 재개발사업을 마치고 재개장한 천안삼거리공원을 2일 찾았다.

김소월 시비(碑)가 난데없이 공원에 서 있었다. 제목은 ‘왕십리’. 왕십리는 서울 동네 이름이 아니던가. 서울 성안까지 왕복 십리(十里) 걸린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익숙한 시구다. ‘가도 가도 왕십리 비가 오네. 웬걸, 저 새야 울려거든 왕십리 건너가서 울어나다고’로 이어진다. 왕십리의 비 오는 전경을 정감있게 묘사했다. 

시인은 끄트머리에  ‘천안에 삼거리 실버들도 촉촉이 젖어서 늘어졌다데’라고 한 구절 보탰다. 아마 서울 가는 길에 들렀던 천안이 생각난 모양이다. 그런데 천안삼거리에 왕십리를 노래한 이 시비를 세우는 건 넌센스가 아닐까.

또 가까이에 처음 보는 윤동주 ‘서시’ 시비가 있었다. 안내판에 ‘광복 이전에 사망하여 대한민국 적(籍)을 갖지 못하다가 2022년 독립기념관을 등록기준지로 선정했다’고 적혀있다. 독립기념관이 천안에 있는 건 맞다. 그렇다고 윤동주 시비를 천안 정체성을 대표하는 삼거리공원에 세운 이유는 도무지 모르겠다.

정작 재개장한 삼거리공원은 천안 역사성과 전통성을 대변하던 옛 기념물은 전반적으로 홀대했다. 고려 태조 왕건에 의한 천안 도시탄생을 알리는 오룡쟁주 상(像)은 거의 눈에 띄질 않았다. 또 삼거리 흥타령 탑도 존재감이 크게 부각되지 않는 곳에 있었다. 특히 천안삼거리를 대표하던 ‘능소와 박현수 선비’ 설화 기념물은 완전히 사라졌다.

천안의 역사 정체성을 상징하는 오룡쟁주 상(오른쪽)은 눈에 쉽게 띄지 않는 곳에 그대로 있고, 흥타령 탑(왼쪽)도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은 인상이다. 삼거리 설화를 대변하던 '능소와 박현수 선비' 기념물들은 아예 사라졌다.  조한필 기자

천안향토문화연구회 김종식 회장은 “천안흥타령춤축제도 도심으로 옮겨가 열리고 있는 판국인데, 이젠 삼거리공원까지 지역 역사성을 저버리고 있다”며 개탄했다.

공원에는 나태주 시인 시비도 세워졌다. 새롭게 천안과 연관지워진 김소월과 윤동주를 기념하며 올해 지은 시다. 다분히 작위성이 강한 시였다.

  “천안은 내 그리운 사람 살고 있지 않아도 그리운 고장...김소월 선생이  ‘천안에 삼거리 실버들’ 시로 적었고, 윤동주 선생은 천안의 독립기념관으로 호적을 올렸으니...내 어찌 천안을 그리지 않고 어디를 그리워 하랴!”

이렇게 천안삼거리는 오룡쟁주·흥타령·능소설화를 잊고 김소월·윤동주를 기념하는 곳이 됐다.

 

조한필 기자
chohp11@kukinews.com
조한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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