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이민당국의 불법체류 단속으로 한국인 300여명이 구금되는 사태가 발생한 가운데, 이르면 오는 10일(현지시간) 이들의 국내 복귀가 예상되며 최악의 상황을 면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러나 여야는 정부에 비자 문제 해결 등 신속한 추후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데 한목소리를 냈다. 일각에서는 미국에 우리나라 전문 인력의 비자 쿼터 필요성을 제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9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는 정부에 미국 조지아주 한국인 구금사태와 관련한 추후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는 전날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조현 외교부 장관에게 이 같은 의견을 전달했다.
앞서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과 국토안보수사국(HSI) 등은 조지아주 서배나에 위치한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HL-GA 배터리회사) 건설 현장에서 대대적인 불법체류자 단속을 시행했다.
이날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은 “이번 사태가 그나마 조기에 해소된다고 하니 다행이긴 하지만 매우 심각한 사태”라며 “국가적인 불명예일 뿐더러 그 상처를 치유하기 힘들 정도로 심각한 타격을 대한민국에 줬다. 있을 수 없는 외교 참사”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300명 넘는 국민이 갑자기 체포됐는데, 이재명 대통령을 깨워서라도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했어야 한다”며 “대통령 브리핑이 없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준영 조국혁신당 의원은 “지난 2000년에 조지아에서 33명의 한국인이 추방됐는데, 어째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어떻게 막을지만 생각하고 우리의 요구를 내놓지 않느냐”며 “비자를 안 주면 투자를 못 한다고 왜 얘기하지 못하냐”고 외교부를 비판했다.
비자 발급 문제에 대해선 여야가 한목소리를 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지금껏 전자여행허가제(ESTA)·방문비자(B1·B2)로 관행상 일해 왔는데, 이제는 다른 대안을 찾아볼 때”라며 “미국 현지에서 신설·증설 중인 대규모 공장이 22개인데, 전문직 취업비자를 확보하거나 한국인 전용 취업비자를 받는 것이 외교부가 해야할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이재강 민주당 의원은 “미국의 전기차 배터리 공장은 미국이 자국 내 제조업 부흥을 위해 공장 건설을 유치한 것”이라며 “앞으로 미국과 투자가 더 활발해지면 우리 파견 노동자도 더 많아질 것이다. 미국과의 무역·생산 파트너로서 협력 사업과 관련한 한국인 전용 비자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상욱 민주당 의원은 “지금까지는 기업들이 ESTA 제도로 우회할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다. 지난 2006년 비자 쿼터를 못 받았던 이유가 미국의 일자리 피해 우려 때문인데, 지금은 오히려 미국이 필요로 하는 상황”이라며 “호주는 1만500명, 싱가폴은 5400명, 칠레는 1400명이 H-1B비자(전문직 단기취업비자) 쿼터를 확보했는데, 우리는 없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호주 이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상황인데 너무 안 챙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이라도 챙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비자 문제 해결이나 쿼터 확보를 위해서는 조 장관 등 협상팀이 미국에 우리 인력의 필요성을 제시해야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날 오후 미국으로 출국한 조 장관은 워싱턴에서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 등을 만나 구금된 우리 국민의 조속한 귀국 등 협조를 요구할 계획이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부도 미국 전문직 비자 쿼터를 얻기 위해 여러 노력을 했지만, 받지 못한 게 (지난 2006년 한미 FTA 협상 이후) 수년 째”라며 “이민을 반대하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쿼터를 내줄 것이었다면 (한국인 직원들을) 잡아 들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비자 요구가 쉬운 일은 아니다”라며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도 비슷한 상황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교수는 “다만 트럼프 행정부가 기술자를 확보하지 못해 사업이 지지부진해질 수 있다고 판단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가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는 “조현 외교부 장관이 미국으로 출국해 국무장관을 면담하게 되면 국내 전문직 노동자의 필요성을 어필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면서도 “미국 측이 수용하느냐는 또 별개의 문제”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