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차 전기본 무용론’…탈원전 공방 속 12차 수립도 지연 불가피

‘11차 전기본 무용론’…탈원전 공방 속 12차 수립도 지연 불가피

- 이재명·김성환, 원전 재검토…공은 12차 전기본으로
- 계획대로면 하반기부터 논의됐어야…정부 조직재편에 밀려
- 업무 재배치, 산하기관 이동 등 교통정리 한창…“에너지 대응 시급”

기사승인 2025-09-16 06:00:28
전남 소재 재생에너지 단지. 전남도 제공 

기후에너지환경부 설립과 원전 정책의 전면 재검토가 맞물리면서, 국가 에너지 정책이 대대적인 전환기를 맞고 있다. 관련 정책의 방향은 사실상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으로 넘겨졌지만, 현실적으로 이마저도 지연될 가능성이 높아 에너지 안보 위기가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6일 에너지업계에 따르면, 기후에너지환경부를 이끌 김성환 환경부 장관은 지난 9일 기자들과 만나 11차 전기본(2024~2038년 적용)에 담긴 ‘원전 2기+소형모듈원자로(SMR) 1기’ 건설에 대해 “기존 원전은 안전을 담보로 계속 연장해 쓰더라도, 신규 원전을 짓는 것에 대해서는 국민의 공론을 듣고 판단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신규 원전 의견은 최종적으로 12차 전기본에 담길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신규 원전 건설의 전면 재검토를 선언한 셈이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지금 원전을 짓기 시작해도 10년 지나 지을까 말까인데 그게 대책인가”라며 “안전성(이 확보되고) 부지가 있으면 (건설을)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거의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당장 엄청난 전력이 필요한데 가장 신속하게 공급할 방법은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라며 “1∼2년이면 되는 태양광과 풍력을 대대적으로 건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기본은 15년간의 장기 전력 공급 계획을 담은 내용을 2년 단위로 수립한다. 앞서 11차 전기본은 AI 데이터센터 증가, 첨단산업 발전 등 요인으로 2038년 전력수요가 현재 수준의 30% 이상 증가할 것으로 보고, 원전 설비용량은 2038년까지 35.2GW(2023년 기준 24.7GW)를, 재생에너지는 121.9GW(2023년 30GW)를 확보한다는 목표를 담았다. 특히 대형 원전 2기(총 2.8GW), SMR 1기(0.7GW) 등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이 2015년 이후 10년 만에 마련됐다.

당초 일정대로라면 11차 전기본은 2023년 말까지 초안을 내놓은 뒤 지난해 상반기 중 최종안이 발표돼야 했으나, 여야 에너지 정책 대립, 탄핵 정국을 거쳐 1년이 지난 올 2월에야 최종 확정됐다. 시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한국수력원자력은 올해 안에 신규 원전 부지 선정을 위해 즉각 지자체 유치 공모에 돌입할 예정이었지만, “전문가 부지 선정 후 지역주민 동의 절차가 선행돼야 한다”는 여당의 반발에 부딪혀 또 다시 제자리걸음 했다. 

울진 원자력발전소 전경. 울진군 제공 

이후 최근 정부 조직 재편으로 한국전력 산하 에너지 공기업이 대부분 기후에너지환경부 산하로 이관되면서 ‘교통정리’라는 명분 속에 원전 정책은 사실상 답보 상태에 머물렀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재생에너지든 원전이든 관련 산업에는 생태계가 조성돼 있는데, 정부의 중장기 전력 계획이 너무 손쉽게 뒤집어지는 경향이 있다”면서 “원전에서 충족하지 못한 발전량을 온전히 재생에너지로만 채우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렇게 언급된 다음 대책인 12차 전기본(2026~2040년 적용) 수립을 위한 시간 역시 빠듯하다는 점이다. 일정대로라면 12차 전기본은 지금(올 하반기)부터 논의를 시작해 내년 말까지 확정해야 하는데, 최근 발표된 기후에너지환경부 신설로 부처 산하기관들이 한창 기능 분산, 인력 재배치 등 후속 작업을 하고 있어 원전 정책은 물론 12차 전기본 수립도 뒤로 밀린 상황이다. 공공기관 업무에 능통한 한 관계자는 “교통정리에 최소 3개월은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재생에너지 업무를 주관하는 한전, 한수원 등 에너지 공기업의 소속 변화도 우려 요인이다. 이들 기관이 그간 규제 부처로서의 역할을 해온 환경부 산하로 이관되면서, 에너지 정책과 환경영향평가 사이의 이해충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 가운데 원전 정책을 이끌어 온 황주호 한수원 사장의 임기도 끝나 차기 사장 인선에 따른 정책 방향 변화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 사이 AI 데이터센터 증가에 따른 전력수요는 급증하고 있어, 정치적 요인이 아닌 미래를 내다본 에너지 정책 실행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11차 전기본 전력수요 산정도 사실상 지난해 초 이전을 기준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12차 전기본에서 AI 데이터센터발 증가분이 최소 5GW는 더 반영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 교수는 이어 “재생에너지 변동성을 감안하면 대체 에너지원도 필요하다”면서 “원전 건설이 오래 걸리는 것은 맞지만, 미래 세대를 위한 준비도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재민 기자
jaemi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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