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는 곧 생존, 전동화 시대 자동차 브랜드의 또 다른 전장 ‘모터스포츠’

속도는 곧 생존, 전동화 시대 자동차 브랜드의 또 다른 전장 ‘모터스포츠’

브랜드 이미지를 키우는 ‘서킷 마케팅’

기사승인 2025-09-23 06:00:14
지난 2012년에 열린 ‘F1 쇼런’ 행사에서 RB7 머신이 잠수교를 질주하고 있다. 올해는 메르세데스-벤츠 팀이 방한할 예정이다. 레드불 제공  

영화 속 스크린을 가득 메운 F1 머신의 굉음, 피트 스탑에서 불꽃 튀듯 교체되는 타이어, 300km/h로 질주하는 드라이버의 눈빛. 최근 흥행했던 F1 영화가 보여주는 장면들은 단순한 영화적 긴장을 넘어 현실의 자동차 브랜드들이 매일 맞닥뜨리는 경쟁을 압축한다.

이제 관객들의 시선은 서킷을 넘어 고성능 차량으로 향한다. 완성차 업체들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레이싱에 뛰어드는 이유는 바로 속도와 기술의 전장을 통해 브랜드를 증명하기 위해서다.

브랜드 이미지를 키우는 ‘서킷 마케팅’

서킷에서 검증된 주행 성능은 곧바로 소비자 인식과 연결된다. 고속 주행 안정성, 제동력, 코너링 기술처럼 극한 상황에서 입증된 성과는 ‘기술력 있는 브랜드’라는 신뢰로 이어진다. 실제로 토요타의 ‘가주 레이싱(GAZOO Racing)’이나 현대차의 ‘N’처럼 레이싱 경험을 양산차에 이식해 판매 확대 효과까지 노린다.

모터스포츠는 소비자 충성도를 높이는 무대이기도 하다. 화려한 서킷은 브랜드의 젊고 역동적인 이미지를 각인시키며, 팬덤과 결합해 충성 고객을 만들어낸다. BMW와 메르세데스-벤츠는 자사 레이싱팀 성과를 활용해 고성능 세단과 스포츠 모델 이미지를 강화했고, 현대차도 ‘N 페스티벌’ 등 고객 참여형 이벤트로 팬덤 형성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관객석의 환호는 결국 전시장과 판매 실적으로 이어진다.

현대차는 고성능 브랜드 ‘N’을 통해 레이스 등 국제 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현대차 제공  

전동화 시대에도 레이싱은 여전히 유효하다. 극한의 속도와 온도, 반복되는 가속과 제동은 배터리 효율, 열 관리, 안정성을 시험하는 최적의 실험실이다. 포르쉐는 전기차 레이스 ‘포뮬러 E’에서 축적한 기술을 양산 모델에 반영하고 있고, 현대차도 전기 레이스카 ‘N Vision 74’로 미래 고성능 전기차 개발에 레이싱 경험을 접목하고 있다.

이처럼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들의 최종 무대는 단연 F1이다. 메르세데스-벤츠는 ‘AMG 페트로나스’ 팀을 통해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발전시켰고, 레드불 레이싱은 혁신적 공기역학 설계로 챔피언십을 석권하며 브랜드 이미지를 굳혔다. 페라리는 ‘레이싱 DNA’를 핵심 정체성으로 내세우고 있다. 

서킷에서 검증되는 기술과 이미지

토요타는 ‘가주 레이싱’을 통해 철학을 실천하고 있다. 김형준 한국토요타자동차 이사는 최근 열린 ‘가주 레이싱 모터스포츠 클래스’에서 “토요타는 창업주 시절부터 지금까지 ‘모터스포츠를 통해 더 좋은 차를 만든다’는 철학을 지켜왔다”며 “서킷은 좋은 차를 가장 빠르게 시험하고, 인재를 키우며, 미래를 준비하는 무대”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모터스포츠는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브랜드가 기술력과 안전성을 동시에 단련하는 과정”이라고 덧붙였다.

현대차의 고성능 브랜드 N의 차량들이 전시돼 있는 ‘N 아카이브’. 김수지 기자 

국내 완성차도 레이싱을 미래 전략의 한 축으로 삼고 있다. 현대차는 고성능 브랜드 ‘N’을 앞세워 레이싱 경험을 양산차에 반영하는 철학을 구체화하고 있다. 지난 18일에 열린 현대차 N 출범 10주년 행사에서는 레이싱 대회에 참가했던 차량들이 전시되고, 아이오닉 6 N을 비롯한 전동화 모델에 ‘퍼포먼스 파츠’를 적용한 신규 패키지와 멤버십 서비스가 공개됐다.

현대차 관계자는 “극한의 주행 환경에서 쌓은 데이터를 통해 새로운 기술을 시험하고, 이를 양산차에도 도입할 수 있다”며 “소비자들이 일상 주행에서도 안정성과 안전을 체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N은 뉘르부르크링 24시 내구 레이스 등 국제 대회 경험을 토대로 전동화 모델에서도 주행 재미와 신뢰성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전문가들도 모터스포츠 투자의 의미를 강조한다. 김필수 한국자동차튜닝산업협회 협회장은 “우리나라는 튜닝을 제도적으로 제한된 부분이 많아 모터스포츠 문화가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했다”며 “기업들이 해외 무대에서 기술력을 입증하고, 융합 모델을 선보이며 프리미엄 이미지를 쌓아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전동화 시대 모터스포츠는 기존 내연기관 레이스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영역”이라며 “현대차가 미래 모빌리티 선두권을 유지하기 위해선 전동화 레이스가 핵심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수지 기자
sage@kukinews.com
김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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