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심·진토제 뜻 아시나요?…‘건강 문맹’ 만드는 어려운 의학용어

오심·진토제 뜻 아시나요?…‘건강 문맹’ 만드는 어려운 의학용어

고령층 10명 중 7명, 건강정보 이해능력 부족
‘소양증→가려움증, 천명→쌕쌕거림’ 우리말로 바꿔 설명해야
건강문해력 증진, 생존율에도 기여…“교육센터 지원 필요”

기사승인 2025-10-09 06:05:04
게티이미지뱅크

“항암 치료 중에는 ‘오심(메스꺼움)’이 나타날 수 있고요. 너무 안 좋으실 때 드실 수 있게 ‘진토제(구토와 오심을 완화하는 약)’를 처방해드릴게요.” 

항암 치료 중인 환자들이 병원에서 의료진으로부터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이지만, 정작 환자의 절반 이상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 현장에서 외래어나 한자어 사용이 많다 보니, 의사와 환자 간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의료진에게 대체어 사용을 권장하고, 환자도 치료에 필요한 교육을 받아 ‘건강문해력’을 높일 수 있도록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암 환자 54% “치료 용어 이해 못해”…쉬운 우리말로 대체해야

한글날인 9일 건강 정보를 찾고 이해하는 데 필요한 ‘건강문해력’이 고령층을 중심으로 부족한 것으로 조사됐다. 질병관리청이 성인 590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3년 건강정보 이해능력 조사’에 따르면 성인의 60.4%가 적절한 수준의 건강정보 이해능력을 가진 것으로 집계됐다. 연령대별로 70대 이상은 36%만이 적절한 건강정보 이해능력을 갖춘 것으로 조사됐다. 교육 수준이 낮고 가구 소득이 적을수록 이해능력도 낮은 경향을 보였다.

실제 암 환자 2명 중 1명은 의료진이 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치료를 받고 있었다. 삼성서울병원 암병원 암교육센터의 조주희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암 환자 181명과 보호자 119명 등 총 300명을 대상으로 항암치료 관련 의학 용어 56개에 관한 문해력을 조사한 결과 54%(162명)이 항암 치료 용어를 이해하지 못했다. 

의학용어들이 대부분 영어나 한자어라 환자들에게 낯설기 때문이다. △오심(속이 울렁거리고 구역질이 나는 증상) △진토제(토하는 걸 진정시키는 약제) △체액저류(체내 수분이 신체 조직이나 관절에 비정상적으로 축적돼 부종으로 나타나는 증상) △점막(입안부터 항문까지 이어지는 안쪽의 부드러운 막) 등이 이해하기 어려운 의학 용어로 꼽혔다. 

연구를 주도한 조주희 삼성서울병원 암병원 암교육센터장은 쿠키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최근에 만성 폐쇄성 폐질환(COPD) 환자를 만났는데, 만성 폐쇄성 폐질환이라는 본인의 질환명을 들어본 적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갑상선 항진증과 저하증이라는 말도 어렵다 보니, 환자들도 구분을 어려워한다”면서 “병원 공간이나 검사에 대한 용어도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어려운 의학용어들은 의료진과 환자의 소통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된다. 조 센터장은 “환자에게 ‘주사 맞고 계시면 모니터링하겠다’고 안내를 했는데, 환자가 ‘약을 준다면서 왜 안 주냐’고 물어본 적도 있었다”며 “의료 현장에서는 외래어와 한자어를 많이 사용하다 보니,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환자들과 눈높이에 맞게 소통을 하기 위해선 쉬운 우리말로 바꿔 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면 소양증을 가려움으로, 천명을 쌕쌕거림으로 풀어서 설명하는 식이다. 그는 “의료진도 ‘오한이 있냐’고 묻기 보단, ‘춥고 떨리는 증상이 있냐’고 물으면 환자도 이해하기 편하다”며 “대체적인 표현이 가능한 것은 대체어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건강정보 이해능력의 건강 영향. 한국건강증진개발원 제공

암 환자 생존율 향상에도 기여건강문해력 증진 교육 필요

하지만 모든 한자어나 외래어를 한글로 바꾸는 것은 한계가 있다. 무리하게 대체어를 사용한다면 의료진 사이에 소통의 벽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환자와 보호자도 교육을 받아야 하는 이유다. 조 센터장은 “환자들이 ‘감염’이라는 개념을 모른다면, 항암 치료를 받기 어렵다”며 “모든 용어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최소한 환자나 보호자가 치료를 받는 동안 필요한 부분은 교육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암교육센터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전했다.

특히 체계적인 암 교육이 암 환자 생존율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조 교수와 강단비 임상역학연구센터 교수 공동연구팀은 암 진단 시 ‘디스트레스(나쁜 스트레스, 우울·불안 외에 암 환자의 정서적 어려움)’를 호소하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체계적인 교육과 지지를 제공한 결과 암 환자의 초기 사망 위험을 27% 낮출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문해력은 국민의 건강 수준과 건강형평성과도 연관되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도 정책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도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 2030’에 ‘건강정보 이해력 제고’를 포함하며 논의의 첫걸음을 뗐다. 최슬기 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보고서를 통해 “헬스리터러시(건강문해력)가 낮은 집단은 건강관리를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건강생활 실천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며 “헬스리터러시 증진은 국민의 건강 수준 제고와 건강형평성 달성을 위해 필수적이다. 헬스리터러시를 건강정책의 주요 의제로 설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조 센터장도 “뉴스위크 선정 암 분야 상위 병원인 미국 텍사스대 MD앤더슨 암센터는 교육센터에 소속된 사회복지사만 60명 정도다. 교육을 잘 받으면 부작용 관리가 용이하다는 점 등 장점이 있기 때문에 투자하는 것”이라며 “현재 한국의 암교육센터는 정부 지원이 없다. 이를 테면 ‘교육 수가’ 신설을 통해 지원해야 운영이 지속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김은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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