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시한 염혜란, 알고 보니 내 옷장에 있던 옷이더라” [쿠키인터뷰]

“섹시한 염혜란, 알고 보니 내 옷장에 있던 옷이더라” [쿠키인터뷰]

영화 ‘어쩔수가없다’ 주연 염혜란 인터뷰

기사승인 2025-10-08 06:00:14
배우 염혜란. CJ ENM 제공


배우 염혜란(48)의 재발견이다. 영화 ‘어쩔수가없다’(감독 박찬욱)에서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관능미로 스크린을 압도했다. 자신도 놀랐다. 최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섹시함은 저한테 없는 거라고 생각했었다”고 돌아봤다.

‘어쩔수가없다’는 다 이뤘다고 느낄 만큼 삶이 만족스러웠던 회사원 만수(이병헌)가 해고된 후 아내 미리(손예진)와 두 자식을 지키기 위해, 어렵게 장만한 집을 지켜내기 위해, 재취업을 향한 자신만의 전쟁을 준비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지난달 24일 개봉했다.

염혜란이 박찬욱 감독과 호흡을 맞춘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굉장히 귀한 작업”이었다고 밝히며, 자연히 따르는 부담은 현장을 빈번히 찾으면서 덜어냈다고 덧붙였다. “저는 감독님의 결과물만 보던 사람이잖아요. 한 번도 참여한 적이 없으니까 류성희 미술감독님께 떨리고 걱정된다고 말씀드렸죠. 그랬더니 ‘현장에 자주 와라. 몇 번 안 만나고 연기하는 것보다 익숙해지고 하면 좋겠다’고 조언을 해주셨어요. 현장을 많이 가면서 감독님이 어떤 디렉션을 주시고, 장면이 어떻게 완성되는지 볼 기회가 있었죠.”

극중 염혜란은 실업한 제지업 종사자 범모(이성민) 아내이자 배우 지망생 아라 역을 맡았다. 만수와 미리, 범모와 아라는 어쩐지 닮은 구석이 있는 부부다. 그리고 아라가 범모를 죽이면서 뱉는 대사는 만수에게도 적용된다. 아라가 작품의 메시지를 관통하는 인물인 셈이다.

“실직에 대처하는 네 방식이 문제라는 대사를 보고 ‘제가 주인공이네요’ 했었어요. ‘복수는 나의 것’이 실패하고 감독님이 좌절하셨을 때 사모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고백하시더라고요(웃음). 감독님이 ‘여자 캐릭터를 그냥 쓰시지 않았구나. 여자들을 더 유연하고 현명하게 그리셨구나’ 생각했어요. 작품은 남자 시점으로 전개되지만, 미리와 아라가 중요한 얘기를 하고 극의 중심을 가지고 가거든요. 거울 같은 미리와 아라의 관계성이 재밌었어요.”

배우 염혜란. 에이스팩토리 제공


아라는 매혹적이고 섹시하다. 뱀에게 물린 만수의 다리를 정신없이 빨 때도, 연하 내연남과 밀애를 가질 때도 그렇다. 그간 염혜란이 연기한 캐릭터들과는 확실히 거리가 멀다. 박찬욱 감독은 그가 지난해 디렉터스컷 어워즈에서 넷플릭스 시리즈 ‘마스크걸’로 수상하는 모습을 보고 캐스팅을 제안했다고 한다.

“처음 제안받았을 때 ‘저한테 왜 주셨지’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마스크걸’을 보시고 주셨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고요. 그때만 해도 안 보신 줄 알았어요. 꾸미고 가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하지만 막상 연기를 해보니까 없던 게 아니더라고요. ‘나한테도 욕망이 있었잖아?’ 했죠. 언젠가 입으려고 사놓은, 야한 옷을 꺼낸 느낌이었어요. 한 번도 꺼내 입을 일이 없었지만 제 옷장에 있던 옷인 거죠.”

‘어쩔수가없다’의 백미인 ‘고추잠자리’ 시퀀스는 3일 동안 치열하게 촬영하면서 탄생했다. “촬영하면서도 아이디어가 막 나왔어요. 원래는 엎어져서 몸싸움하다가 결국 총을 잡는 건데, 서랍장 밑으로 들어가서 다리만 까딱거리거나 하는 부분은 추가됐어요. 놀라운 건 현장에서 바뀌었다는 거예요. 감독님이 콘티가 중요한 사람이라 다 준비된 상태였어요. 스태프들이 그렇게 기민하게 움직일 수 없었어요. 카메라 워킹, 조명 위치 다 바뀌고, 그래서 그 장면이 더 소중해요. 모든 스태프 역량의 총 집합체예요. 기가 막히죠.”

연극 무대에서 시작해 차근차근 배우로서 입지를 다져온 염혜란의 전성기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역대급 호연을 펼친 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가 정점인 줄 알았더니, 거장 박찬욱 감독의 신작에 합류해 거침없이 캐릭터 스펙트럼을 확장해냈다. 그럼에도 그는 겸손했다. 오히려 지금의 입지가 최고점이 아닐 것이란 확신이 드는 대목이다.

“행복한데 행복한 것을 모르는 게 행복한 시간이라고 하더라고요. 지금이 그 시기인 것 같아요. 진짜로 행복했었다는 걸 깨닫는 건 몇 년 후 아닐까 해요. 그제야 ‘그때였네’라고 하는 거죠. ‘대세’라는 말은 결국 유행이라는 뜻이고, 유행은 없어지는 거예요. 유행이 20년 갈 순 없어요. 돌아올 순 있지만요. 그저 생계 걱정 없이 연기만 하고 싶었던 때가 있었는데요. 책이 들어오면 일단 망설임 없이 무슨 역할이든 하고 싶어요. 

심언경 기자
notglasses@kukinews.com
심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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