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외교 수장인 최선희 외무상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러시아와 벨라루스를 방문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간 ‘깜짝 회동’ 가능성이 제기된 가운데 북한이 ‘거부 신호’를 보낸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조선중앙통신은 26일 “러시아 연방 외무성과 벨라루스 공화국 외무성의 초청에 따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상인 최선희 동지가 러시아와 벨라루스를 방문한다”고 밝혔다. 구체적 일정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두 나라를 연이어 찾으려면 수일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최 외무상의 러시아 방문은 1년 만으로, 지난해 10월 푸틴 대통령을 예방하고 ‘1차 조·러 전략대화’를 진행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29~30일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한다. 그는 24일(현지시간) 아시아 순방길에 오르며 “김정은과의 만남에 100% 열려 있다”고 밝혀 북미 정상 간 회동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 방한 시점에 북한 외교의 핵심으로 꼽히는 최 외무상이 한반도에 없을 가능성이 커지면서 회동 성사 전망에는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최 외무상은 북한의 대표적 대미 협상통으로, 2018년 싱가포르와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2019년 6월 판문점 회동 등 굵직한 협상에 모두 관여했다. 판문점 회동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를 통해 ‘번개 회동’을 시사했고, 최 외무상(당시 제1부상)이 “매우 흥미로운 제안”이라고 화답하며 정상 간 만남이 급물살을 탔다. 이번에는 호응 대신 모스크바행을 택했다는 점에서 대조적이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의 제안에 대해 직접적 반응을 자제하고 최 외무상의 방러 일정을 공개한 것을 두고 사실상 간접적 거부 신호로 풀이하고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북한이 공개적으로 방러 계획을 알린 것은 미국보다 러시아와 중국을 우선시한다는 메시지”라며 “현재 북한의 대외정책 중심축이 중·러에 있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보여주는 행보”라고 전했다. 두진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유라시아센터장도 “북미 정상회담을 사실상 보이콧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북한이 회동을 미루는 배경에는 ‘핵보유국 인정’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4일 기자들과 만나 “나는 그들(북한)을 일종의 뉴클리어 파워(핵보유국)라고 생각한다”며 “그들이 핵무기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고 말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여전히 ‘북한 비핵화’다. 북한이 원하는 ‘제재 해제를 수반한 정치적 핵보유국 인정’과는 거리가 있다.
다만 회동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개인적 친분을 과시해왔으며, 형식보다 상징성에 방점을 찍을 경우 최 외무상 부재 속에서도 만남이 성사될 여지는 남아 있다. 북한으로서도 김 위원장이 최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이어 트럼프 대통령까지 연쇄 회동하는 모습을 대내외에 과시할 경우, 내년 9차 당 대회를 앞두고 최고지도자의 위상을 높이는 선전 효과를 얻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