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이 초고압 극한환경에서 물이 어는 21번째 결정상 ‘얼음 XXI(Ice XXI)’를 세계 최초로 발견했다.
얼음 XXI 결정구조는 목성의 유로파나 토성의 타이탄 등 위성의 얼음층과 유사할 것으로 추정, 우주생명체 연구에 새로운 단서를 제공할 전망이다.
KRISS 우주극한측정그룹은 상온 2만 기압(2㎬) 이상의 환경에서 물이 얼음으로 변하는 과정을 마이크로초(㎲) 단위로 관측하는 데 성공했다.
상온 2만 기압 새로운 얼음결정
상온에서 형성된 얼음 XXI는 기존 알려진 얼음상에 비해 결정구조의 최소 반복 단위인 단위포가 압도적으로 크고, 바닥면 두 변의 길이가 같으면서 납작한 직육면체 형상의 결정구조를 보였다.
0℃ 이하에서 물이 결정화되는 얼음은 상온이나 심지어 물이 끓는 고온에서도 생길 수 있다.
이는 액체가 고체로 변하는 결정화 현상은 온도뿐 아니라 압력의 영향도 받기 때문이다.
상온의 물은 결정화 압력 9600기압(0.96㎬) 이상의 압력을 받으면 얼음으로 상이 변한다.
물이 얼음으로 변할 때 물 분자 간 수소결합 네트워크가 온도와 압력에 따라 복잡하게 왜곡, 재배열되면서 다양한 얼음상을 동반하는 결정화 과정이 나타난다.
물과 얼음의 복잡한 상전이 및 구조형성 과정을 이해하고, 그 과정을 극한 수준의 압력과 온도로 제어하면 지구상에 없던 신소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세계 연구자들은 한 세기 이상 온도와 압력 조건을 조절하여 20가지의 결정질 얼음상을 발견하며, 온도와 압력 범위를 2000K 이상, 100만 기압(100㎬) 이상으로 넓혔다.
특히 대기압(0㎬)부터 2만 기압 사이는 물의 상전이가 가장 복잡하게 생기는 핵심 영역으로, 10개 이상의 얼음상이 밀집한다.
목성·토성 얼음위성 유사 추정
KRISS 우주극한측정그룹은 자체 개발한 ‘동적 다이아몬드앤빌셀(dDAC)’을 이용해 상온에서 2만 기압 이상까지 물이 액체로 존재하는 결정화 압력의 200%가 넘는 초과압 상태를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
dDAC는 머리카락 굵기의 미세한 구멍이 뚫린 금속 개스킷에 시료(물)를 넣고 한 쌍의 다이아몬드로 막은 후 미세 변위제어장치를 이용해 구멍 내 초고압을 발생시키며, 연속적인 압력 증감과 압력의 원격제어, 시료의 광학적·분광학적 동시 관측이 가능하다.
기존 다이아몬드앤빌셀(DAC) 장치는 연구자가 수동으로 DAC 조립볼트의 체결정도를 달리하며 압력을 증가시키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결정화가 순식간에 이뤄져 결정화 압력을 크게 뛰어넘는 과압을 형성하기 어려웠다.
반면 dDAC은 가압 시 충격을 최소화하는 미세 변위제어 장치를 적용하고, 기존 수십 초의 압축 시간을 10밀리초(㎳)까지 단축했다.
이로써 물이 얼음으로 바뀌어야 하는 결정화 압력을 크게 넘어선 2만 기압 이상에서도 액체 물이 준안정 상태로 유지되는 초과압수를 형성했다.
KRISS 연구팀은 세계 최대 규모의 X선 레이저 시설인 ‘유로피언 XFEL’로 초과압 상태의 물이 결정화되는 과정을 마이크로초 시간분해로 관측했다.
그 결과 상온에서 지금까지는 알려지지 않았던 5가지 이상의 결정화 경로를 발견하고, 해당 경로를 분석해 21번째 결정상인 얼음 XXI를 확인했다.
연구진은 얼음 XXI 단위포 내의 물 분자 위치정보를 분석해 구조를 규명했다.
이윤희 KRISS 우주극한측정그룹 책임연구원은 “얼음 XXI의 밀도는 목성과 토성의 얼음 위성 내부에 존재하는 초고압 얼음층과 비슷한 수준”이라며 “이번 발견이 극한 환경에서 우주 생명체의 근원을 탐색하는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또 이근우 책임연구원은 “자체 개발한 dDAC 기술과 XFEL을 융합해 기존 장비로는 접근 불가능했던 찰나의 순간을 포착했다”며 “초고압 같은 미지의 극한환경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 노력이 과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번 연구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 4000K급 로켓엔진용 초고온 소재 및 물성측정기술 개발사업의 지원을 받았고, 연구성과는 국제학술지 ‘Nature Materials(IF: 38.5)’ 10월호에 게재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