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회사의 사외이사추천위원회(사추위) 구성을 두고 논란이 발생하고 있다. 현직 회장이나 행장 등 최고경영자(CEO)의 과도한 사추위 영향력에 대한 지적이 커지는 가운데 금융회사 CEO를 사추위에서 제외하는 문제를 두고 노사가 팽팽한 의견대립에 나선 상황이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금융·신한금융·하나금융·농협금융 등 국내 4대 금융지주는 모두 사추위에 현직 회장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은행과 기업은행 역시 현직 행장을 포함해 사추위를 구성하고 있다.
금융회사 CEO의 사추위 참여는 ‘회전문식 인사’, ‘셀프 연임’ 등의 문제를 낳으며 노조는 물론 정부까지 나서 개선을 요구하고 있는 사항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5일 금융회사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사추위에서 CEO의 영향력을 제외하는 방향으로 ‘금융회사 지배구조 선진화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회전문식 인사, 셀프 연임 지적은 현직 CEO가 사외이사를 친경영진 위주로 추천하고, 이렇게 한번 선임된 사외이사들이 현직 CEO의 연임을 보장하는 한편 계속해서 친경영진 위주의 사외이사를 추천하는 문제를 말한다. 결국 경영진을 견제해야 하는 사외이사의 역할 수행이 불가능해 지는 상황까지 이르는 것.
이러한 문제는 지난해 11월 KB금융 윤종규 회장의 연임과 현재 진행중인 하나금융 김정태 회장의 3연임을 두고 부각되기 시작했다. 결국 KB금융과 하나금융은 지난해 11월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사외이사를 평가할 때 현직 회장을 제외하고, 명확한 추천 기준을 마련하는 등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제고하라는 경영유의 권고를 받게 된다.
◇노조, 사추위에서 현직 회장 배제하라
금융권 노조들은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대해 계속해서 문제를 제기해 왔다. 또한 사외이사의 독립성 제고를 위해 사취위에서 현직 CEO를 배제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주주제안을 통해 사추위에서 현직 CEO를 제외하는 방안을 정관에 담기 위한 행동도 이같은 일련의 과정이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KB국민은행 지부는 지난 21일 주주제안을 통해 대표이사인 회장이 사추위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사추위를 사외이사로만 구성하는 정관 개정의 건을 오는 3월 정기주총에 발의한다고 밝혔다.
KB금융의 경우 현재 총 3단계를 거쳐 사외이사를 추천하고 있다. 먼저 주주 또는 외부기관으로부터 사외이사 후보군을 추천받고, 후보군에 대한 별도의 외부인선자문위원회의 검증을 거쳐 최종적으로 사추위에서 사외이사를 추천하는 시스템이다. 여타 금융회사 보다 외부인선자문위원회라는 검증 단계를 보강한 상태다.
그러나 KB국민은행 지부는 현직 CEO를 포함한 4인의 사추위원들이 인선자문위원단 위촉을 독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현직 CEO는 사외이사 후보 추천 프로세스의 각 단계를 담당하는 실무인력에 대한 인사권, 업무지휘명령권, 결재권, 고과권을 가진자로서 사외이사 후보 선정 과정에서 사실상 세부 의사결정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진행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NYSE(뉴욕증권거래소)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에서와 같이 사추위에 현직 CEO를 배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사측, 회사 입장 대변할 회장 배제 불가
사측은 노조의 주장과 달리 현실적으로 사추위에서 현직 CEO를 배제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사외이사의 권한이 막중한 만큼 사외이사 추천 시 회사의 입장을 대변할 인물이 사추위에 한명은 포함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KB금융 관계자는 “사추위에서 현직 회장이 배제될 경우 회사의 방향과 맞지 않게 정치색을 띄거나 비전문적인 인물이 사외이사로 추천될 수 있다”며 “이는 결국 경영진과 사외이사의 충돌을 통해 기업의 가치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사추위에 최소 한명 이상의 회사 임원이 포함돼야 하며 현직 CEO가 회사의 입장을 대변할 최적의 인물이라는 주장이다. 특히 사측은 금융위도 이러한 사측의 입장에 동조하고 있는 것으로 주장했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위가 제시한 지배구조 선진화 방향에서 ‘회장 배제’가 명문화 되지 않고, ‘회장 영향력 제외’로 명문화된 것은 사추위에 사측의 인물이 포함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금융위도 고려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사추위에서 사측 임원이 배제될 경우 사추위가 사외이사들의 권력집단으로 변질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사추위가 권력집단화 될 경우 주주나 근로자의 이익은 고려하지 않고 사외이사의 이익을 위해 기업이 운영될 수 있다”며 “이는 경영진의 전횡보다 더 심각한 상황을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금융권 노사가 사추위 구성을 두고 갈등을 보이면서 금융권의 이목은 금융당국으로 쏠리고 있다. 사외이사의 독립성과 기업 경영권 보장의 갈림길에서 금융당국의 결정에 따라 문제가 봉합될 가능성이 높아서다. 금융권 관계자는 “노사의 주장을 놓고 금융당국이 중재안을 내놓게 될 것”이라며 “지배구조에 정답이 없는 만큼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