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교육위원회를 공화형 협치모델로 다시 세우자 [조희연의 공존사다리]

국가교육위원회를 공화형 협치모델로 다시 세우자 [조희연의 공존사다리]

한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백년지대계를 위하여
글‧조희연 전 서울특별시교육감

기사승인 2025-05-12 18:00:04
조희연 전 서울특별시교육감. 사진=쿠키뉴스DB

2022년, 교육 문제 해결을 위한 국가적, 사회적 협의·합의기구가 되겠다는 큰 포부와 함께 ‘국가교육위원회(이하 국교위)’가 닻을 올렸다. 그러나 설립 3년차를 맞이한 국교위를 향해 “교육부의 거수기로 전락했다”거나 “대통령실과 교육부의 하청업체가 되었다”는 등의 날 선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위원 수(數)의 다수 논리’만 작동하는 또 하나의 관료 기관이라는 탄식과 심지어는 폐지론까지도 제기된다.

차기 정부가 들어서면 여러 개혁 요구가 봇물 터지듯 이어질 것이다. (결과는 국민의 최종적 선택에 의해 가려지겠지만) 만약 민주당이 집권하여 다수 위원을 차지하게 된다면, 국교위는 새로운 교육부의 ‘거수기’가 될 수도, 정부 의제를 다수의 힘으로 밀어 붙이는 장(場)이 될 수도 있는 기로에 선다. 현행 21석의 국가교육위원직 중,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이 5석, 국회가 임명하는 것이 9석에 당연직 교육부 차관 1석까지 합이 15석이다. 집권세력이 마음만 먹으면 다수 지배구조를 언제든 재연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가 그러했듯 다수결 독주도 가능하다.

국민참여재판과 같은 배심원제의 도입

나는 이러한 악순환을 끊기 위해 국회 교육위원장인 김영호 국회의원과 함께 ‘한국형 숙의민주주의’ 모델로서의 배심원 제도를 구상하였다. 일종의 공화주의적 국교위 개편모델인 셈이다. 난마(亂麻)처럼 얽힌 교육 현안을 열린 숙의로 풀어내고, 학부모를 포함한 시민의 눈높이에서 결론을 도출하자는 것이다. 판사에게 판단을 일임하지 않는 국민참여재판처럼 교육정책 결정 과정에도 ‘시민의 평균적 판단’을 투영해 보자는 발상이다. 영국이나 미국의 배심원제, 독일이나 프랑스의 참심제처럼 말이다.

교육 문제는 우수한 정책 수립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구조적인 난제들이 많다. 모든 가정이 자녀의 교육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 오늘날, 거대한 풍랑 속에서 자녀에게 구명조끼를 쥐어주고 싶은 부모의 절박함이 사교육 시장을 거대한 공룡으로 키웠다. ‘7세 고시반’을 넘어 ‘4세 고시반’ 까지 등장할 정도로 치열해진 교육경쟁은 이미 아동학대로 다루어야 할 정도이다. 모두가 경쟁의 종식을 바라지만 누구도 먼저 멈추지 않는 치킨게임이다. 모두가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되어버린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협치를 통한 접근이 절실하다.

협치 시스템의 작동 원리...구성·정족수·배심원제

협치를 어떻게 이끌어낼 수 있을까. 협치의 핵심은 의사결정자의 구성과 균형, 의결 장치와 국민의 참여에서 찾을 수 있다.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은 국교위 위원 구성의 균형을 찾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여야가 번갈아 집권하는 한국 정치의 현실을 직시하고, ‘여당 프리미엄’을 과감하게 덜어내자. 예컨대 대통령이 3인을 추천할 시, 여당 추천 3인 중 1인을 야당에 내어주는 것이다. 집권세력에게 기득권을 포기하는 결단을 요구하고, 야당에는 책임을 분담하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의결정족수의 강화도 필요하다. ‘국가교육과정’, ‘국가교육발전계획’처럼 중차대한 안건에 대하여 3분의 2이상의 출석과 재적 인원의 3분의 2이상 찬성으로 의결토록 한다. 다양한 관점이 충돌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이를 통해 실질적 합의를 강제하는 장치로 삼자는 것이다. 만약 위원회가 합의에 이르지 못한다면, 재적 과반의 요구로 해당 의제를 국민참여배심위원회에 회부하자. 전문위원회는 쟁점을 정돈하여 복수의 정책 선택지를 제시하고, 배심위의 최종 판단을 국교위가 수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국가적 위기의 심각성 앞에서, 다수로 밀어붙이는 ‘수(數)의 전체주의’는 답이 될 수 없다. 위원 구성 시 여야 균형을 맞추고, 국민참여위원회를 국민참여배심위원회로 바꾸어 위원 간의 협의와 합의를 촉진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만약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국민이 배심원이 되고, 의사결정 주체가 되는 것이다. 국교위의 역할은 정권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교육정책의 실태를 극복하고, 교육이 ‘백년을 바라보는 큰 계획(百年之大計)’이라는 모두의 문제의식에 부합하는 ‘제대로 된’ 교육 정책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것이다. 그 역할에 충실해보자.


‘투쟁 모델’과 ‘협치 모델’의 실험

민주주의 사회의 정치에는 두 얼굴이 공존한다. 하나는 갈등을 드러내며 승부를 겨루는 ‘투쟁의 정치(정쟁)’와 차이를 인정하되 공통선을 찾아가는 ‘협의의 정치(협치)’가 그것이다. 우리는 민주화를 이룩하기 위한 험난한 여정을 통해 투쟁의 정치에 익숙해졌지만, 그 과정에서 반복된 정권교체와 상호 비난 속에 해결되지 않는 난제들을 낳았다. 그 중에는 사회경제적 개혁과 같이 첨예한 대립이 불가피한 경우도 있지만, 협치와 숙의 민주주의적 공론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공통의 주제도 적지 않다. 교육이 대표적이다. 대부분의 국민이 이해 당사자가 되는 ‘범국민적 슈퍼 이슈’이자, 경쟁 구조가 문제를 재생산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투쟁과 협치를 병행한 새로운 정치 실험으로 해결해보자.

국교위는 기계적인 승자독식이 아니라, 숙의와 공론을 통해 ‘백년지대계’를 바로 세우자는 꿈에서 태어났다. 3년이면, 갓난아이도 걸음마를 뗄 시간이다. 각기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주체들이 외부의 강압 없이 한 자리에 모여, 장기적인 비전을 공유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있을 때, 우리 사회가 그리도 목말라 하는 민주‘공화’국의 실험이 시작될 것이다. 좁지만 분명한 길이다. 교육이라는, 국민 모두가 중히 여기는 의제에서부터 ‘공화형 협치’의 새 지평을 함께 열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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