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원형탈모를 호소하는 20~40대 젊은 직장인들이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원형탈모를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경구용 약이 승인되면서 환자들의 치료 선택 폭이 커졌다. 원형탈모는 우울증과 불안장애 등 여러 정신적 질환을 동반할 수 있어 사회 활동이 활발한 젊은층에선 꾸준한 치료가 필요하지만, 치료제 가격 부담이 만만치 않다. 나이, 심리적 영향 등을 고려한 선별적 급여 적용 확대를 고려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11일 의료계에 따르면 스테로이드, 면역억제제 등으로 염증을 완화하는 데 그쳤던 기존 원형탈모 치료 방식이 질환의 원인을 직접 겨냥한 경구용 JAK(야누스 키나아제) 억제제까지 나오는 등 보폭을 넓히고 있다. 현재 국내에 승인된 경구용 JAK 억제제는 미국 일라이릴리의 ‘올루미언트’(성분명 바리시티닙)와 미국 화이자의 ‘리트풀로’(리트레시티닙토실산염)가 있다.
원형탈모증은 면역계가 자기 모발의 일부를 외부 물질로 인식하는 비정상적 면역반응으로 인해 머리카락이 빠지는 자가면역질환이다. 감염, 스트레스 등의 원인 인자들이 몸속 염증 반응을 일으키고, 모낭을 세균으로 잘못 인식한 면역세포가 머리털의 뿌리 부분을 공격하면서 동전 모양으로 머리카락이 빠져 원형탈모가 된다.
염증 반응 신호의 통로 역할을 하는 JAK은 면역세포의 활성화와 생존을 촉진하고, 모낭 손상을 더 빠르게 일으킨다. 기존 원형탈모 치료가 염증을 완화하거나 모발 성장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면 JAK 억제제는 원형탈모의 발병 기전에 보다 직접적으로 작용해 면역반응을 저지하고, 정상적으로 발모가 가능하도록 돕는다.
원형탈모는 일반적인 탈모로 알려진 남성형·여성형 탈모와 달리 자가면역질환인 만큼 주로 젊은층에 발병하며 재발 위험이 크다. 최근 10년간 원형탈모 환자는 증가 추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3년 15만4380명이었던 원형탈모 환자는 2023년 17만8009명으로 10년간 약 15% 증가했다. 원형탈모가 발병하는 연령대를 보면 20~40대에 집중돼 있다. 2023년 기준 원형탈모 환자는 20대가 3만879명, 30대가 4만546명, 40대가 4만1320명이다. 탈모 치료 환자 집계는 건강보험 급여로 청구된 경우에만 해당돼 비급여로 치료받은 환자들은 집계가 이뤄지지 않아 실제 더 많은 환자가 있을 수 있다.
원형탈모증은 이른 나이에 생길수록 더 심해지거나 재발할 가능성이 높다. 증상이 심하지 않으면 자연 회복되는 경우도 있지만, 약 40~80% 환자가 1년 이내에 재발을 경험하고 방치하면 탈모의 범위가 넓어지며 두피의 모든 머리카락이 빠지는 전두탈모로 악화될 수 있다. 원형탈모는 우울증, 대인기피증, 자존감 저하 등 심리적 부담을 유발하고, 정신 건강이 악화되는 등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 때문에 JAK 억제제는 원형탈모증으로 고생하고 있는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다. 대한모발학회가 2022년 발표한 원형탈모 치료 가이드라인에서도 모발이 50% 이상 소실된 성인 원형탈모 환자의 치료에서 경구용 JAK 억제제를 전신 면역억제제 또는 접촉 면역요법과 함께 1차 치료 약제로 권고하고 있다.
올루미언트와 리트풀로는 서로 다른 JAK 효소의 활성을 선택적으로 억제한다. 올루미언트는 JAK1과 JAK2를 차단하며, 리트풀로는 JAK3와 간세포 암종(TEC) 계열 키나아제에서 발현되는 티로신 키나아제를 저지한다. 올루미언트는 지난 2023년 3월 국내에서 18세 이상 성인의 중증 원형탈모증 치료제로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았다. 리트풀로는 2024년 9월 12세 이상 18세 미만 청소년을 대상으로 허가받았다.
허창훈 분당서울대병원 피부과 교수는 “중증 원형탈모 환자의 경우 실제 사용할 수 있는 약이 많지 않다. 스테로이드가 효과는 좋지만 위염, 체중 증가, 부종, 생리 변화, 여드름 발생 등의 부작용이 많아서 장기간 사용하기엔 문제가 있다. 사이클로스포린 같은 면역억제제는 단독 사용으로는 효과가 조금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며 “반면 경구용 JAK 억제제는 부작용 없이 스테로이드 이상의 좋은 효과를 확보할 수 있어 최근 많이 사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비용이다. 올루미언트와 리트풀로는 모두 비급여 약제다. 원형탈모 환자가 올루미언트를 1개월간 복용한다면 약 60만원을 부담해야 한다. 검사 비용까지 고려하면 한 달에 약 70~80만이 지출된다. JAK 억제제 치료를 중단하면 8주 안에 탈모가 다시 시작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 복용 중단도 쉽지 않다. 환자가 비용 부담 때문에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으로 눈을 돌리고 상태가 악화돼 다시 병원을 찾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중증 원형탈모 환자의 산정특례 등록과 치료제의 급여 적용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허 교수는 “원형탈모증 진료비는 급여 적용을 받고 있는데 치료약제들은 급여가 인정되지 않아 금전적 부담이 따르고 많은 환자가 지속적 치료제 사용을 어려워하고 있다”면서 “환자 연령이나 탈모로 인한 심리적 영향 등을 고려해 선별적으로 급여를 적용해 확대하는 방법이 현명하다”고 짚었다.
탈모 치료제 급여화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대선에서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적용 공약을 검토 중이라고 밝혀 관심을 모은 바 있다. 다만 최종적으로 민주당 공약집에서 탈모 치료 건보 적용 확대는 포함되지 않았다.
이은혜 순천향대부천병원 영상의학과 교수는 “탈모 치료 급여화 주장은 ‘피부미용을 급여화해 달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건강’ 목적 치료는 기본 의료이지만, 미용 목적 치료는 상품 의료이므로 비급여가 맞다. (탈모 치료 건보 적용 확대는)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