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석 연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인 2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출국장은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공항철도 객차에는 28인치 캐리어 등 다양한 크키의 여행용 가방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고, 장기주차장까지 만차를 기록했다. 고향길 대신 해외로 향하는 발걸음이 공항 곳곳을 가득 메웠다.
이날 인천공항 1터미널에서 만난 임순자(72·경기도 안성)씨는 남편과 아들·딸 부부, 손주들까지 무려 18명이 함께 하는 대가족 여행을 떠난다. 오사카행 비행기 탑승을 앞둔 그는 “자녀들이 이번엔 제사보단 같이 여행을 가자고 설득했다”며 “올해는 전 부치며 기름 냄새 맡지 않아도 돼 속이 다 시원하다. 대신 일본 노천탕에서 유황 냄새를 맡을 생각”이라며 웃었다.
인천에 거주하는 배금석(29·가명)씨는 생애 첫 해외여행길에 올랐다. 배씨는 “원래 여행을 좋아하지 않아 해외를 나가본 적이 없었다”며 “긴 연휴에 연차를 보태 2주 일정으로 미국을 다녀올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부모님도 이번 연휴에 동남아 여행을 가셔서 굳이 본가에 갈 일도 없었다”고 했다.
김은희(47·서울)씨는 이번 연휴, 고향에 내려가는 대신 아이들과 특별한 경험을 하기로 했다. 두 자녀와 함께 태국행 비행기에 오른 김씨는 “지역에 내려가는 시간보다 해외로 가는 (이동) 시간이 더 짧을 것 같았다”며 “연휴가 길어 4박6일 떠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날 공항 풍경은 수치에서도 확인된다. 이번 연휴 동안 전국 15개 공항 이용객은 약 526만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역대 명절 연휴 가운데 가장 많은 규모다. 인천공항만 245만명이 오가고, 김포·김해·제주 등 14개 공항에서도 281만명(국내선 206만명, 국제선 75만명)이 이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행 수요 증가는 조사에서도 드러난다. 종합 여행·여가 플랫폼 여기어때에 따르면 앱 이용자 642명 중 72.3%가 연차를 붙여 최장 10일 연휴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지난해 같은 조사보다 9.2%포인트(p) 늘어난 수치다.

항공업계, 모처럼 호황에 ‘방긋’
귀성 대신 여행을 택하는 인파가 늘면서 항공업계도 모처럼의 호황을 기대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물론, 저비용항공사(LCC)들도 일본·동남아 인기 노선을 중심으로 국제선을 대거 증편했다.
제주항공은 국제선 234편을 추가 투입해 4만2000여석을 늘렸다. LCC 중 가장 큰 규모다. 이스타항공은 다낭·삿포로·타이베이 노선을 중심으로 126편을 증편, 공급 좌석을 기존 2만5000석에서 4만9000여석으로 확대했다. 티웨이항공도 약 1만7000석을 추가했고, 에어부산·진에어 등 다른 LCC도 증편에 나섰다. 코로나19 이후 수요 부진으로 적자를 기록해온 항공사들은 이번 연휴를 실적 개선의 계기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명절 풍속도 변화가 항공 수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LCC를 포함한 모든 항공사가 이번 연휴 실적만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훈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코로나 이후 해외여행 욕구가 여전히 강한 데다, 명절을 소비하는 문화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며 “제사를 미리 지내고 연휴에는 여행·취미 활동을 즐기는 방식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앞으로 이런 흐름은 더 확대될 것이며, 가족·친척이 모이는 명절이 즐겁고 의미 있는 시간으로 변하지 않는다면 여행이 곧 명절의 선택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파업 속에서도 공항은 ‘이상 무’
한편, 추석 연휴를 앞두고 공항 노조 파업으로 혼란이 빚어질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인천공항은 예상보다 차분하게 운영됐다. 이날 공항노동자연대 소속 1만5000여명이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지만, 공항 운영에 큰 차질은 없었다.
인천국제공항공사와 한국공항공사가 대체인력과 안내요원을 배치한 덕분에, 오전 10시 기준 제1터미널 5개 게이트는 모두 8~20분 내로 입장이 가능했다.
미국에서 온 여행객 제이스(Jace·23)는 “머리띠를 두른 사람들이 많아 위험해보였지만, 파업인 걸 알고는 놀랐다”며 “한국은 시위를 비폭력적으로 해서 좋은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제이스 씨는 “인천공항을 지난번에도 한 번 이용했었는데, 파업으로 인한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