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존 운송 항로 대비 각국으로의 거리를 대폭 축소할 수 있는 북극항로가 기후변화에 따라 점차 개방되면서 차세대 쇄빙연구선에 대한 글로벌 경쟁이 심화하고 있다. 중국, 러시아로 대표되는 관련 시장 선점을 위해 정부 차원의 선박 개발 지원이 더욱 확대돼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최수범 사단법인 한국북극항로협회 사무총장은 5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차세대 쇄빙연구선 건조사업 정책 간담회’에서 “북극항로 운송 화물량이 점차 증가하는 가운데 이용 선박의 99%가 중국으로 들어가거나, 중국에서 나오고 있다”며 “이는 글로벌 물류 인프라 경쟁에 있어 앞으로 굉장히 위협적인 수치”라고 강조했다.
2030년쯤 연중 일반 항해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되는 북극항로를 이용할 경우, 부산-로테르담의 거리는 1만5000km로 32%가량 짧아지고, 운항일수도 40일에서 30일로 단축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특히 후티 반군의 상선 공격이 빈번한 수에즈 운하와, 가뭄 등으로 인해 일일 통과 선박 수가 감소하는 파나마 운하의 우회 항로(대체재)로 거론되며 글로벌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글로벌 북극항로 연간 물동량은 3790만톤이었으나, 오는 2035년에는 2억7000만톤으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극항로는 남극 대비 척박한 환경에 있어 고도화한 차세대 쇄빙연구선 개발 및 생산이 필수다. 북극의 환경도 보존해야 하는 만큼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 연료 기술도 필요하다.
현재 글로벌 차세대 쇄빙연구선 시장은 중국과 러시아가 점유하고 있는 형태다. 이날 최수범 사무총장은 “러시아는 북극 쇄빙선 8척을 포함해 여타 소형쇄빙선 등 50여 척 이상을 보유하고 있고, 중국 역시 2000년 전후부터 Xue Long 모델로 대표되는 강력한 라인업을 보유하고 있다”며 “특히 중국은 지난 2018년 핵추진(원자력) 쇄빙선을 추진한다고 밝힌 바 있는 만큼, 현재는 친환경 측면에서도 상당 부분 진보했을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중국, 러시아 대비 북극 전략을 최근에야 재정립한 미국은 지난해 7월 캐나다·핀란드와 체결한 ‘ICE Pact(쇄빙선 협력)’를 토대로 연구개발을 지속 중이나, 아직까진 중고 선박을 개조해 사용해야 하는 실정이다. 최 사무총장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향후 북극 쇄빙선 40척 정도가 필요하다고 언급한 만큼 시장 경쟁은 심화할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9년 건조된 한국 최초 극지 쇄빙선 ‘아라온호’ 1기가 남·북극 탐사 업무를 수행 중이다. 다만 이미 활로가 다수 열려있는 남극 대비 북극의 환경을 개척하려면, 강화된 능력과 친환경 연료 활용이 가능한 선박 개발이 시급한 실정이다.

주형민 극지연구소 차세대 쇄빙연구선 건조사업단장은 “북극해 고위도 연구가 가능하려면 1.5m 두께의 평탄방을 3노트 속력으로 연속 쇄빙할 수 있어야 하고, 액화천연가스(LNG) 등 친환경 연료를 토대로 더 많은 항속거리, 더 긴 운항지속시간을 보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도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극지연구소 등이 2015년 전후로 세 차례 기획연구 및 예비타당성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토대로, 정부는 지난 2022년부터 오는 2029년까지 사업비 3361억원을 들여 ‘차세대 쇄빙연구선 건조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더 강력한 쇄빙능력을 토대로 LNG-저유황유 이중연료를 사용해 75일가량의 무보급항해가 가능한 1만6560톤급 선박 개발이 목표다. 이를 위해 최근 해양수산부가 한화오션과 차세대 쇄빙연구선 건조 계약을 체결하며 민관 협력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다만 당초 2026년 12월까지였던 사업기간은 2029년 12월로 3년 늘어난 상황이다. 주형민 단장은 “관련 사업이 생소한 데다 사업비 자체도 부족하다 보니 여러 차례 입찰에도 불구하고 지속 유찰돼 왔다”며 “최근 재입찰 추진을 위해 사업비를 증액해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차세대 쇄빙연구선이 개발되면 아라온호 1기가 수행했던 남·북극 연구를 배분함에 따라 연구항해 일수가 기존 85일 대비 192일 증가한 277일로 대폭 늘어날 전망이다. 이를 토대로 북극항로 데이터 확보, 차세대 쇄빙연구선 장비 실증을 통한 기술 고도화 등 이점을 취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최수범 사무총장은 “(차세대 쇄빙연구선 시장 선점은) 현재 러시아 등 다른 나라에 의존 중인 북극항로 데이터 주권을 확보해 플랫폼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술 실증 플랫폼으로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며 “또, 북극항로 선박의 블랙카본 배출량이 지난 10년간 2배 이상 증가한 점을 고려하면, 관련 기술 선점이 곧 환경 외교 선도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허영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정책 토론회를 공동 개최한 정일영 민주당 의원은 “극지를 서점하고 기후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며 “차세대 쇄빙연구선은 단순한 선박이 아니라 과학, 외교, 산업이 집약된 전략자산인 만큼, 사업이 차질 없이 추진되도록 국회도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